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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현(惠現)

활동왕조백제
활동시기6~7세기
생년573년
몰년630년
법화경 독송으로 영험을 얻다
혜현(惠現, 570~627년)은 570년에 백제에서 출생하였다. 스님은 대승불교의 대표 경전인 『법화경』을 항상 지극한 마음으로 외우고 염송하였다. 『법화경』 독송 기도로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빌었는데, 여러 가지 영험한 감응이 많았다. 또한 삼론종(三論宗)의 주요 경전인 『중관론(中觀論)』과 『십이문론(十二門論)』, 『백론(百論)』을 공부하고 도를 닦아 신통한 경지에 이르렀다.
가르침을 구하는 이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다
스님은 601년에 충남 예산 덕숭산 수덕사에 머물면서 대중들에게 불교 경전을 강론하였다. 대중에게 강설하지 않을 때는 불경을 염송하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이러한 스님의 수행과 덕행이 소문이 나서 사방의 먼 곳에서도 그의 교화와 학풍을 흠모하여 가르침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와 문전성시를 이루니, 그의 방문 밖에는 항상 신발이 가득하였다. 스님은 불교 경전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짧고 간결하게 이야기해 주었고, 흐르는 물처럼 질서정연하게 그 뜻을 풀어서 설명해 줄 정도로 가르침의 깊이가 있었다.
수덕사 대웅전(출처 : 수덕사 홈페이지)
그러나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시끄럽고 번잡한 것이 싫어서 마침내 전남 영암의 달나산(達拏山, 또는 단나산旦那山, 월출산) 깊은 숲속으로 가서 숨어 살았다. 그 산이 매우 깊고 가파르며, 바위가 험준하여 사람들이 오고 가기 힘들어서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었다.
스님의 혀를 봉안한 석탑
스님은 달나산에 거처를 마련한 뒤 그곳에서 세상에 대한 번뇌를 잊고 고요히 앉아 정진하였다. 그는 그곳으로 들어간 후에 한 번도 산문 밖을 나오지 않았고, 수도(修道)하다가 일생을 마쳤다. 이때가 627년이니, 스님은 세속 나이로 58세에 세상을 여의고 열반에 들었다.
영암 월출산 (출처 : 국가유산청)
함께 수행했던 스님들이 그의 시신을 옮겨 임시로 마련한 석실(石室)에 안치해 두었는데, 어느 날 호랑이가 나타나 두개골과 혀만 남기고 모두 먹어 버렸다. 그런데 그 혀는 추위와 더위가 세 번이 지나도록 상하지 않고 오히려 빛이 뿜어져 나왔다. 또한 수년이 흘러도 썩지 않은 채 연꽃처럼 더욱 붉고 부드러웠다. 후에는 차차 혀의 색깔이 변하여 자줏빛이 감돌고 돌과 같이 단단해졌다. 이를 본 스님들과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기이하게 여기고, 이를 사리처럼 공경하여 석탑을 조성해서 그 안에 봉안하였다.
당나라까지 명성을 날리다
속고승전 백제국달나산사석혜현전(출처 : 동국대학교불교학술원)
스님은 중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적도 없거니와 오히려 산속에서 조용히 은거하며 수행하다가 입적하였는데, 그 이름이 중국에까지 알려져 전기(傳記)로 기록되었다. 당나라의 도선(道宣) 스님이 『속고승전』을 지으면서 「백제국달나산사석혜현전(伯濟國達拏山寺釋慧顯傳)」이라고 하여, 혜현 스님이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고, 언어를 넘어 침묵으로 실천했음을 높이 평가하였다.
· 집필자 : 이미숙(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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