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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덕(普德)

활동왕조 고구려
활동시기 [7세기]
이칭(한자) 普依大師 / 普依聖師 / 智法
신인이 점지한 영탑사
보덕 화상은 7세기 고구려 용강현(龍岡縣) 출신으로, 자(字)는 지법(智法)이다. 평양성에 살던 보덕 화상은 산사(山寺) 노승의 강경(講經) 요청에 따라 『열반경』 40권을 강의하였다. 강의를 마치고 평양성 서쪽 대보산 동굴 아래에서 참선을 하는데 신인(神人)이 와서는, 이곳에 살라고 하며 땅속에 8면 7층석탑이 있다고 일러 주었다. 그곳을 파보니 과연 그러하기에 사찰을 세우고 영탑사(靈塔寺)라 하였다.
방장을 날려 전주로 옮기다
642년 고구려의 제28대 마지막 왕 보장왕(寶藏王)이 즉위하여 유교와 불교, 도교를 함께 흥하게 하려고 하였다. 당시 권력을 독점한 재상 연개소문(淵盖蘇文)은 왕에게,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도교를 구하여 백성들을 가르치라고 건의했다. 고구려의 요청에 따라 당 태종은 도사 8인과 『도덕경』을 보냈고, 이에 보장왕은 사찰을 취하여 도관(道觀)으로 삼았다. 불교가 탄압받게 되니, 평안남도 용강군 반룡사(盤龍寺)에 있던 보덕 화상은 여러 차례 왕에게 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화상은 650년에 신통력으로 방장(方丈)을 날려 남쪽 완산주(完山州, 전주) 고대산(孤大山, 고달산, 고덕산)으로 옮겨가서 살았다.
신통력으로 방장을 날리다(Gemini로 생성한 이미지)
전북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고달산 경복사(景福寺)에 비래방장(飛來方丈, 날아서 온 방장)이 있었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668년에 고구려가 망하였다.
이규보의 기록
고려 이규보(李奎報)의 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에 보덕 스님 이야기가 나온다. 스님이 고구려 반룡산 연복사(延福寺)에 주석하고 있었는데, 고구려가 도교만 숭상하고 불법을 숭상하지 않으므로 나라가 망하리라 예견하고 피난할 곳을 물색했다. 이에 제자 명덕(明德)이 불교를 숭배하던 백제의 전주 고달산을 권하였고, 스님이 당(堂)을 날려 옮겨왔으니, 그 시기는 667년이라고 『삼국유사』와는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최치원이 스님의 전기를 지었기 때문에 간략하게 언급한다고 하였는데, 최치원의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이규보는 비래방장을 찾아가 보덕 성인(聖人)의 진용을 뵙고 율시를 짓기도 했는데, 이인로(李仁老)의 시도 현판에 있었다고 한다.
고명한 제자들의 행적
스님에게는 11명의 고명한 제자가 있었다. 무상(無上) 화상은 제자 금취(金趣) 등과 함께 평안남도 안주군 오도산에 금동사(金洞寺)를 세웠고, 적멸(寂滅)과 의융(義融) 두 스님은 전라북도 임실군에 진구사(珍丘寺)를 세웠으며, 지수(智藪)는 대승사(大乘寺)를 세웠고, 일승(一乘)은 심정(心正)·대원(大原) 등과 함께 전라북도 전주 모악산에 대원사(大原寺)를 세웠으며, 수정(水淨)은 전라북도 정읍군 칠보산에 유마사(維摩寺)를 세웠고, 사대(四大)는 계육(契育) 등과 함께 중대사(中臺寺)를 세웠으며, 개원(開原)은 충청북도 단양군 금수산에 개원사(開原寺)를 세웠고, 명덕(明德)은 연구사(燕口寺)를 세웠다.
대각국사 의천의 찬시
1091년에 대각국사 의천이 고대산 경복사 비래방장에 이르러 보덕 성사(聖師)의 진영을 뵙고 시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열반부와 방등부 가르침은 보덕 스님으로부터 전수되었고, 원효와 의상이 보덕 스님에게서 『열반경』과 『유마경』 등을 직접 배웠다고 찬양하였다. 『열반경』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파한 법의 의의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고, 『유마경』은 유마힐 거사를 주인공으로 하여 세속에서 불도를 실천하는 모습을 기술하였다.
금강산 보덕굴
금강산 법기봉 만폭동에 있는 보덕굴은 보덕 화상이 머물렀던 곳이라고, 1631년에 신익성(申翊聖)이 금강산을 유람하고 남긴 기록에 보인다. 보덕굴에는 도자기로 만든 불상 한 구와 나한상이 있고, 깎아지른 절벽에 기대어 3층 누각을 세우고 구리기둥으로 지탱했는데 길이가 몇십 미터나 된다고 했다. 그리고 누각 위에 절의 문서[誌記]가 있는데 글자가 이지러져 알아보기 어렵고, 벽 사이에 고구려 안원왕(安原王, 재위 531~545년) 시대 보덕 화상이 머문 곳이라고 새겨져 있다고 했다. 이 기록은 보덕의 실제 행적으로 보기 어렵지만, 보덕의 명성을 전해 준다.
· 집필자 : 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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