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왕조 | 고구려 |
|---|---|
| 활동시기 | [4~5세기] |
| 이칭(한자) | 惠始 / 白足和尙 |
진흙도 묻지 않는 백족아련
담시(曇始)는 혜시(惠始)라고도 한다. 오호십육국 시대 북위(元魏) 때 관중(關中) 지역에서 태어났다. 스님은 발이 얼굴보다 하얗다고 하여 백족화상(白足和尙) 혹은 백족아련(白足阿練)이라 불리었다. ‘아련’은 승려의 애칭이다. 그는 50여 년 동안 눕지 않았고 초인간적인 능력을 보이기도 하였다.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진흙탕물을 밟고 건너가도 발이 진흙에 묻거나 젖지 않았다.
스님은 396년경에 경장과 율장 수십 부를 가지고 고구려 요동 지역으로 와서, 고구려인들에게 불법(佛法)을 전했다.
진흙탕물을 밟고 지나가도 진흙에 묻거나 젖지 않다(Gemini로 생성한 이미지)
저승에서도 알아준 백족화상
담시 스님은 고구려인들에게 수년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405년경에 관중으로 돌아가서 불교를 전파하고 사람들을 바른길로 이끌었다.
당시 장안(長安)에 왕호(王胡)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밤 꿈에 돌아가신 삼촌이 나타나 그를 데리고 지옥을 두루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과보를 보여 주었다. 그가 하직하고 집으로 돌아오려 하자 삼촌이 왕호에게 말하였다.
“이제 그 인과를 알았을 것이니, 부디 백족화상을 받들어 섬기며 착한 행위로 좋은 과보를 닦거라.”
왕호는 공손히 대답하고 잠에서 깨어난 후, 얼굴보다 하얀 발을 가진 백족화상을 찾아 뵙고 그를 받들어 섬겼다.
칼로 베도 다치지 않다
418년경 북하(北夏)의 초대 황제 혁련발발이 장안 등 관중 지역을 점령하고 무수한 사람들을 죽였다. 그는 불법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스님들을 무자비하게 해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때 담시 스님을 살해하려고 칼로 쳤으나 스님은 다치지 않았다. 이에 혁련발발이 놀라며 무서움을 느껴 스님들을 죽이지 않고 놓아주었다.
이후 담시 스님은 산속 깊은 곳으로 가서 은둔하며 의식주에 집착하는 마음을 떨쳐버리고 두타행을 닦았다.
불교를 탄압한 탁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북위의 태무제(太武帝) 탁발도(拓拔燾, 재위 424~452년)가 장안을 점령하고 관중과 낙양에서 위세를 떨쳤다. 그때 박릉(博陵, 하북성 정현 일대)에 최호(崔浩)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젊을 때부터 도교를 배우고 익혔고, 불교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었다. 최호는 탁발도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나라의 재상이 되었고, 탁발도가 믿고 기대는 인물이었다. 이에 최호는 도교 교주인 구겸지(寇謙之)와 함께 불교를 없애도록 청하였다. 탁발도는 그들의 말에 미혹되어, 자신이 통치하는 지역에서 스님들이 수행할 수 없게 하였다. 또한 440년경에는 불법을 비방하고, 사찰에 군병을 보내 사찰을 불태우고, 도망가고 숨는 스님들은 쫓아가서 잡아 죽이기까지 하였다.
호랑이도 잠자코 엎드리다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은둔하며 수행하고 있던 담시 스님은 탁발도를 교화할 때가 되었음을 알고, 450년 정월 초하루 아침에 홀연히 주장자를 짚고 궁궐 문 앞에 이르렀다. 이에 담당 관리가 탁발도에게 아뢰었다.
“발이 얼굴보다도 하얀 도인이 궁궐 문으로 막 들어왔는데 그 형상과 거동이 아주 괴이합니다.”
탁발도는 그 말을 듣자마자 군사를 시켜 스님의 목을 베게 하였는데, 스님은 다치지 않았다. 탁발도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칼로 직접 스님의 목을 베려고 하였다. 그러나 칼을 맞아도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고 칼날이 닿은 자리에 붉은 줄을 그은 듯한 흔적만 남았다.
그 당시, 탁발도는 궁전 북쪽 정원 우리에 호랑이를 기르고 있었다. 탁발도는 스님을 그쪽으로 끌고 가서 호랑이 먹이가 되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스님을 본 호랑이들은 모두 잠자코 엎드린 채 접근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시험 삼아 구겸지를 호랑이 우리에 가까이 가게 하였다. 이에 사나운 호랑이가 갑자기 으르렁거리며 마구 달려들어 물어뜯으려고 했다. 이 광경을 목격한 탁발도는 불교의 위력과 담시 스님의 신통력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스님을 공경하고 존중하며, 상전(上殿)에 오르게 하여 받들어 모시고 스님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렸다.
탁발도를 회심하게 하다
스님은 탁발도를 위하여 인과응보는 어긋남이 없음을 설명하고, 손바닥을 펴서 약간의 신이함을 나타내 보였다. 탁발도는 자신의 지난 허물과 잘못을 뉘우치고 부끄러워하면서 앞으로 착한 일을 닦으며 살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죄악의 과보로 몹시 나쁜 병에 걸렸다. 그는 자신의 허물이 최호와 구겸지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라 여기고 두 사람의 집안을 모두 멸족시켰다. 그리고 불교를 회복시키라고 선포하였다. 불법이 크게 부흥하니 사방에서 종소리와 범패 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탁발도가 죽고, 그의 손자 문성제(文成帝) 탁발준(拓跋濬)이 자리를 계승하여 지난 일들을 거울삼아 경계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번성하게 하였다.
스님은 그 후 홀연히 사라졌다가 입적한 지 10여 년이 지나서 발견되었는데, 그 형색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 집필자 : 이미숙(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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