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도 구례현 지리산 대화엄사 사적』 목판은 1636년(인조 14)에 중관 해안(中觀海眼, 1567~?) 대사가 찬술한 화엄사의 사적을 1697년(숙종 23)에 판각한 것이다. 목판은 대부분 앞뒤로 판각되어 있으며, 서문 및 발문, 사적, 시주질을 새긴 총 24판이 결손 없이 모두 남아 있다. 마구리는 따로 제작하여 장부가 보이도록 결구한 후 못으로 결합한 형태이다. 전체 크기는 세로 28.6㎝, 가로 54.2㎝ 내외이다.
판면의 형태사항으로 전곽의 크기는 세로 27.0㎝, 가로 45.0㎝이며,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며 행과 행 사이에 계선이 있다. 반엽(半葉)의 행수는 11행이며, 1행에 글자수는 20자이다. 판심부에 어미는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이며, 판심제는 ‘구례화엄사적(求礼華嚴寺蹟)’, ‘화엄사적(華嚴寺迹)’ 등이다.
발미(跋尾)에 ‘강희병자중춘일 백암도인성총(康熙丙子仲春日柏庵道人性聰)’과 시주질 말미에 ‘강희36년정축3월일개간(康熙三十六年丁丑三月日開刊)’의 간기가 새겨져 있다. 1696년에 백암 성총(栢巖性聰, 1631~1700)이 발문을 쓰고, 1년이 지난 1697년에 목판에 새긴 사실을 알 수 있다. 각자(刻字)인 순학(順學)과 이인달(李仁達)이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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