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목판은 조선 후기 부휴계(浮休系)의 조사(祖師)인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15) 스님의 시문집을 1920년에 중간(重刊)한 것이다. 목판은 앞뒤로 판각되어 있으나 일부는 뒷면을 새기지 않은 판도 있다. 목판의 구성은 서(序), 권1에서 권4까지 시(詩), 권5는 문(文), 후(後)로 구성되어 있다. 유실된 일부 판을 제외하고 현재 총 36판이 남아 있다. 마구리는 따로 제작하여 장부가 보이게 결구한 후 못으로 고정시킨 형태이다. 목판의 전체 크기는 세로 20.2㎝, 가로 54.1㎝이다.
판면의 형태사항으로 전곽 크기는 세로 19.4㎝, 가로 31.4㎝이고,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며, 행과 행 사이에는 계선이 있다. 반엽(半葉)의 행수는 10행이며, 각 행의 글자수는 20자이다. 판심부에 어미는 상하향1엽화문어미(上下向一葉花紋魚尾)이며, 판심제는 ‘부휴집(浮休集)’이다.
1619년(광해 11) 7월 풍성후인(豊城後人) 반환자(盤桓子)가 쓴 서문과 1920년 7월 5일에 쓴 ‘제중간부휴집후(題重刊浮休集後)’에 의하면, 1615년 부휴 스님이 입적하자 문인인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과 희옥(熙玉) 스님이 태안사(泰安寺)에서 『부휴당대사집』 간행하였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부휴당대사집』의 목판이 없어지거나 마멸되고 남은 목판도 좀이 쓸어 성한 것이 없었다.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1) 스님이 남원(南原) 사람에게서 태안사 판본을 얻었는데, 이를 포월 영신(抱月永信, 생몰년 미상) 스님이 목판에 다시 새겨 간행한 것이다. 1920년 판각 당시 간행질을 새긴 목판은 유실되어 현재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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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휴당대사집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15)스님의 문집 『부휴당집(浮休堂集)』은 5권 1책으로 시, 소(疏), 축원문, 기(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당시의 승려나 유학자들과 주고받은 시, 왜란과 관련된 시, 임종게 등으로 분류된다. 『부휴당집』은 선수 스님의 제자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과 희옥(熙玉) 스님이 편찬하여 1619년에 태안(泰安)에서 처음 간행되었다. 부휴당집 목판 현재 화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 중인 『부휴당집』 목판은 1920년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1) 스님이 수집... -
진응 혜찬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은 법호가 진응, 법명이 혜찬, 속성이 진씨(陳氏)이다. 15세에 화엄사로 출가하였다. 이후 화엄사, 선암사 등지에서 경론을 수학하다가 24세에 응암 치영(應庵致永) 스님의 법맥을 이었다. 스님은 1910년 박한영(朴漢永)·한용운(韓龍雲) 등과 함께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 종정(宗正) 회광(晦光)의 일본 조동종(曹洞宗) 연합 맹약 체결에 반대해 이를 저지하였다. 1913년 2월 쌍계사에서 호은 문성(虎隱文性) 스님에게 구족계와 대승계를 받았다. 이를 인연으로 진응 스님은 화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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