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보박물관 사사자삼층석탑 모조 사자상 왼쪽에 있는 석제 헌식대(獻食臺)이다. 절에서 헌식대는 다람쥐나 산비둘기 등을 위해 음식을 올려놓는 곳을 말한다. 머리를 들고 앉아 있는 두꺼비 모양으로 등 부분은 직사각형으로 파여 있다. 크기는 가로 105.5㎝, 세로 161㎝, 높이 80㎝이며, 무게는 1t이다.
1942년 포월 스님이 주지일 때, 고려말 왜구들이 섬진강 두꺼비 떼의 울음소리를 듣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도망갔다는 이야기를 모티프로, 호국의 마음을 담아 각황전 앞에 조성하였다고 전해진다. 전통적으로 두꺼비는 일본인들에게 ‘악의 화신’으로 여겨졌고, 광양이나 하동 지역 사람들에게는 ‘왜구를 물리친 영험한 동물’로 여겨졌다고 한다.
두꺼비 헌식대는 두 차례 옮겨졌는데, 첫 번째는 2006년 3월 종상 스님이 주지일 때 도량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청풍당 담벼락 아래로, 두 번째는 2018년 12월 20일 현 주지 스님인 덕문 스님이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지금의 성보박물관 옆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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