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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암

화엄사의 산내암자, 봉천암(鳳泉庵)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당우 1동으로 구층암 위쪽에 자리한다. 전란으로 소실된 후, 1846년(헌종 12)에 후봉선사(嗅峰禪師)가 옛 터에 본존요사와 산왕각(1칸)을 중창하여 봉천암이라고 하였고, 운수납자가 용맹 정진하는 선원(禪院) 도량으로 삼았다. 1999년 당시 화엄사 주지 종걸 스님이 해체보수 하였다. 원래 건물 뒤편에 있던 산왕각은 멸실되었다. 봉천암 법당에는 정면의 중앙에는 ‘봉천암’ 편액이 있고, 그 옆으로 3개의 현판이 나란히 걸린다. ‘봉천암’ 편액은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처리하였으며, 형태는 모판형이다. 이외에 1941년(辛巳)에 송암(松庵)이 쓴 ‘등봉천암(登鳳泉庵)’ 현판이 있고, 다음으로 1849년(己酉)에 석잠(碩岑)이 쓴 ‘해동봉성현지리산화엄사봉천암중창기(海東鳳城縣地智異山華嚴寺鳳泉庵重刱記)’ 현판이 있다. 마지막으로 1900년(광무 4)에 조계사문(曹溪沙門) 금명 보정(錦溟寶鼎, 1861~1930) 스님이 쓴 ‘만일회중종식정석천기(萬日會中鍾食鼎石泉記)’ 현판이 있다. 기문의 말미에는 대시주(大施主) 정월혜언(靜月慧彦), 대화주(大化主) 포월영신(抱月咏信) 스님의 이름이 확인된다. 이 현판의 내용은 금명 보정 스님의 『다송문고(茶松文稿)』 권제1에 ‘종과 밥솥, 석천을 시주한 공덕에 대한 기문(中鍾食鼎石泉施主功德記)’에서 동일 내용이 보인다. 원문은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에서 원문 이미지 및 번역문, 서지 해제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봉천암 경내에는 통칭 맷돌로 불리는 석조물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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