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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층암

구층암은 구층대(九層臺)라고도 기록되어 있는데, 1647년(인조 25) 중창, 1766년(영조 42)과 1897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다. 1935년에는 비구니 덕선(德善)스님의 상좌 창근(昌根)스님 주선으로 칠성각(七星閣)을 중건하였고, 1936년 여름부터 1937년 3월까지 구층암 법당과 요사전부를 중건하였다. 현대에 들어 1998년에 인법당을 해체수리하였다. 구층암에는 주불전인 천불보전과 인법당(선방), 요사, 수세전(전 칠성각), 감로당이 있다. 암자 진입로 초입에 있는 인법당에는 ’구층암‘편액이 걸려 있다. 마당에는 석탑과 석등, 배례석 등의 석조물이 남아 있다. 관련 기록으로 「지리산화엄사구층암연두장등공덕기(智異山華嚴寺九層庵蓮社長燈功德記)」(1897), 「중수구층암기(重修九層庵記)」(1898), 「구층암서유록(九層庵叙遊錄)」(1918), 「호좌봉성현지리산화엄사구층대상량문(湖左鳳城懸智異山華嚴寺九層臺上樑文)」(1937)이 남아 있다. 인법당(선방) 구층암 인법당은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의 출목 익공에 겹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암자로 진입하면 처음 마주하는 건물로 이때 보이는 전면에 구층암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그 앞에 석탑이 서있다. 선실(禪室)이라고도 하고, 요사를 겸해 사용하고 있다. 자연석 기단과 초석위에 위에 원기둥을 올렸고, 공포는 출목 익공을 사용하였다. 편액이 걸린 전면은 가운데 5칸에 툇마루를 구성하였고, 후면에는 3칸만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후면 퇴칸의 두 기둥은 모과나무를 기둥으로 사용하여 나무의 자연스런 형상 그대로를 남겨 두었다. 천불보전 천불보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를 올린 겹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공포의 형식은 외3출목 내4출목이다. 자연석 두벌대 기단에 자연석 초석을 두고 원기둥을 올렸다. 전면에만 문을 달았는데 어칸에는 4짝의 꽃살문을 달았고, 양협칸에는 빗살청판분합문을 2짝씩 달았다. 건물의 규모에 비하여 공포를 과대하게 만든 모습과 용두 형상의 안초공, 창발뺄목의 연봉조각 등에서 19세기말 20세기초 불전 건축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내부에는 목조여래좌상과 천불상, 신중도가 봉안되어 있고, 옹정6년(1728)명 범종이 있다. 이 종은 명문에 의하면 화엄사 내원암에서 조성한 것이다. 수세전 수세전은 전면 2칸, 측면 1칸의 이익공 겹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건물의 좌측칸에 ‘수세전(壽世殿)’편액이 걸려있다. 내부에는 칠성도와 산신도가 봉안되어 있다. 요사 천불보전 앞마당 오른편에 위치하며 인법당 후면과 마주하고 있다. 전면 6칸, 측면 4칸의 소로수장 굴도리집으로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올렸다. 사면으로 퇴칸을 두고 있으며, 전면 어칸의 기둥은 인법당 후면의 기둥처럼 모과나무를 사용하였다. 감로당 요사 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근래 새로 신축한 건물로 지대방과 공양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면 3칸, 측면 3칸의 ‘ㄱ’자 집으로 세벌대의 기단위에 자연석으로 초석을 사용하였고, 원기둥에 초익공을 올렸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다.
원문
옹정6년명 범종 雍正六年 七月日鑄成 求禮華□寺內院 庵中鍾□海 □主居士蓮實 別座門香 大禪師 惠淨 慧能 施主 僧智□ 僧心悟 僧□益 金澤華 姜壽奉 朴□卞 三綱 敏湜 性還 哲□ 時住持惠圭 □□嘉善 金成元 智異山華嚴寺九層蓮社長燈功德記 於戱樹三千載通遐之際立雪淚竹之信孝絶後無 再矣於近亦可予神三平者世有之予(聆者)曰誰 也湖左雲峯地百丈精舍潭大禪師性公也何則 欲薦其恩師 峯長老奉喚大和尙於彌九蓮之 丹誠捐已財一百八十紙靑銅買土于邑水寒里前 坪三斗落壞劫前長燈之意獻于院彌也 齊贊曰眞所謂蓮開波月印中天者也矣院結 杜來者中夜無燈春秋己十有餘載佛在世貧婆之 燈亦再難於鉢芥矣何幸善知識薦師之大孝哉燈 光與眞金色同照於沙界也然則푸毘嵐之風難扇此 光信爲燈炷大如須彌孝爲燈油深若香海也大抵成 佛之良因初基於信孝則關此善事不廷於世者非化門之 本願故一日化士布月永信和尙緣此良因拓序於余余以 素昧文墨亦蟄休病老再三推於高手堅拓亦初中後故 敢效西子云爾 獻畓在水寒里前坪三斗落 制字十二頁八束 光武元年(1897)丁酉十月日雪坡後人霞月?運謹誌 重修九層庵記 外儒家以爲敎者釋氏最後出而其相抗也殆有角立之勢至 六朝隋唐之君往制臨決等其品第以尊奉之則其塔 廟鈴鐸香火之盛雖靡前史所載可懸想以覆也及程朱氏 作斯道大明人知吾儒以外無可以敎名者則不待乎斥而 彼自莫敢抗盖非唯陰陽勝負之理久而後定極盛而衰抑 勢然爾在我東則勝國之尊之也過於隋唐六朝本朝之 斥之也視宋儒又過之幷卑其品以輿之故其徒曰瑀凉畏約 僅守其窟□而巳敢張皇震耀以奔走一世之人而能侈談性 命傑然與學士大夫乎夫彼之衰此之盛也卽儒固當盛 而乃今日儒與釋俱衰其故何也豈氣化□□之極人物□然 道術無所於寓互與頹委靡莫之相勝邪抑彼壁墨旣 氣焰旣吾儒可以安坐亨功遂幷其攻守之具任其弛廢以 致然耶詩曰他山之石可以攻玉豈其無石以攻則玉不能以成 哭耶然則彼之衰非自衰己也謂之移衰於儒亦可也雖然今 之髮而緇者衣草食直一耳其廣願堅力之所就募厚 刱宏宇指顧而辦以處其衆而壽其傳所在有人而至若誦 法孔子者係俎豆絃誦之事邈乎相忘有馬隊講肆之歎 而莫之恤嗟乎彼而者寧可以外敎小之耶余少來智 異山中與沙彌之曰永信者相識日者避署過九層菴菴主卽 信也然道要余信宿因指示其重修之跡而願一言記之余 之遊斯菴中間經二紀昔者之見己乎難支則及夫重修之際 其危可知也而乃椽尾塼鮮楚一新又復廣延其徒設其所 謂萬日會者而資用無缺凡此皆可書而顧余竊有焉余 所居山中賞숩 環堵之宮以待四方游學之士如古人之 義塾者而心力蹇拙未能焉嗟乎使自命以儒而皆如余乎 則吾黨之衰ㅍ止余憂己哉信也稍可以不憂其衰矣 光武三年(1899)己亥七夕後四日雨中梅泉散人黃 玹記 本菴秩 祖室 靜月慧彦 興谷海演 桂菴仁幸 性月鄕桓 都監 碧波守渙 持殿 昌昊 別座 法典 供司 處華 化主 抱月 永信 沙彌法賢 奉衍 宥文 山中老德秩 華雲性久 湛然富幻 草雲攝律 淸霞彈靜 應峰正基 院長 錦城品僔 揚攝 性云 記室 永修 都片手 李永悟 副片手 文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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