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三殿)은 대웅전의 북동쪽 후면, 명부전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명부전을 관리하는 소임자가 기거하는 곳으로 향로전(香爐殿) 또는 노전(爐殿)이라 불리는 곳이다. 사역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노전(東爐殿)이라고 부른 기록도 확인된다. 처음 세워진 시기는 확인되지 않지만 1836년(헌종 2)에 선일(善馹)스님이 보수한 기록이 있다. 현재는 화엄사의 주지 스님 거처로 쓰이고 있다. 1997년에 대웅전 서편의 영전에 설치되어 있던 성보전시보관장의 성보를 이곳으로 옮겨 2014년 성보관 개장 때까지 보관하였다. 삼전 주변으로는 돌담이 둘려 있고 남쪽에 광조문(光照門)이 있다.
건물은 전면 3칸 측면 3칸의 ‘ㄱ’자 집으로 규모는 총 15칸이다. 지붕은 이익공에 겹처마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기단은 화강석을 가공하여 가구식 기단처럼 조성하였고, 윗면에도 화강석 판석을 깔았다. 전면과 우측면 전체에 화강석 계단 2단을 두었다. 초석은 화강석을 높게 가공한 원형초석이며, 기둥은 툇칸을 따라 배치한 바깥의 것은 둥근기둥을 사용하였고, 안쪽에 벽과 방을 구성하는 기둥은 각기둥을 사용하였다.
관리 보수 기록
1970년에 한 차례 수리하였고, 1983년에는 아궁이에서 화재가 있었으나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1996년에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증개축 하였다. 이때 광조문도 지금처럼 새롭게 세웠다.
광조문(光照門)
광조문은 1996년에 삼전을 증개축하면서 담장과 함께 세운 삼전의 출입문이다. 문의 형태는 전면 1칸 규모의 일각문으로 지붕은 둥근 도리를 사용한 굴도리집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문의 이름인 ‘광조(光照)’는 무명 속에 있는 중생을 부처님이 자비광명을 놓아 비추어 모든 업장을 깨끗이 제거하고, 모든 마(魔)의 업을 남김없이 떠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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