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묵당은 승당(僧堂)으로 화엄사 승당 중에서 가장 오래된 내력을 가진 곳이다. 적묵이란 당호는 글자 그대로 보면 ‘고요하게 앉아 깊이 생각하고 말이 없음’이라고 해석되는데 부처님의 깨달음을 표현하기도 하며,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많은 사찰에서 승당의 당호로 ‘적묵’을 사용하였다. 현재는 화엄사승가대학 학인스님이 교리를 배우며 수행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적묵당의 중앙에 마련한 대규모 온돌방은 대방(大房) 또는 대중방(大衆房)이라 부르던 곳으로 스님들의 대중공양(供養)과 집회 등이 이뤄진던 곳이다. 지금은 사교반 강의실로 사용하고 있다.
1632년(인조 10) 벽암 각성스님이 재건하실 때 같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795년(정조 19)에 행원(幸元)스님이 중수하였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1941년에 동월 병선(東月秉善)스님이 중수하였고, 1978년에 명선(明煽)스님이 보수하였다. 1979년에 북쪽 2칸의 벽을 헐고 벽장을 구성하였는데, 1998년에 이를 다시 헐고 벽으로 복구하였다. 2010년에 기와 번와를 하고,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창호와 내부 설비를 개선하는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외곽의 옛 죽담을 헐고 새롭게 단장하였다.
건물은 대웅전 마당을 향한 쪽을 전면으로 하여 어칸에 ‘적묵당’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자연석 외벌대 기단위에 자연석 초석과 원기둥을 올렸고, 이익공으로 처마를 받치고 있다. 겹처마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다른 사찰의 승당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지속적인 증축을 통해 ‘一’자형 건물이 ‘ㅁ’자형 건물로 변화하는 모습인데 화엄사 적묵당 역시 동일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 마당을 향한 쪽의 적묵당이 가장 먼저 세워졌고 이후 마당 뒤쪽으로 날개채가 증축되어 현재의 화산학림이 생겨났다. 여기에 적묵당과 대칭으로 혜원당(전 총원소)을 세워 전체적으로 트인 ‘ㅁ’자형 승당이 형성되었다.
관련기사
-
승당 중창 상량문「호좌 구례현 화엄사 승당 중창 상량문」은 1798년(가경 3) 3월에 용암 윤성(龍庵胤成, 생몰년 미상) 스님이 작성하였다. 윤성 스님은 행주대첩 당시의 승병장이었던 뇌묵 처영(雷黙處英, 생몰년 미상) 스님의 7대손이다. 내용을 보면 승당은 516년(양 무제 대동12)에 사찰의 창건과 함께 세워졌지만, 이후의 일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이후 1634년(숭정 7, 인조 12) 갑술년에 언신(彦信) 비구가 중창하였지만, 163년이 지난 지금 많이 쇄락하여 다시 중창하게 되었다는 내력과 육위송, 축원문으로... -
적묵당 남별실 개건 상량문「지리산 대화엄사 적묵당 남별당 개건 상량문」은 1941년(소화 16) 9월 27일 해운 성조(海雲性照, 생몰년 미상) 스님이 찬술한 것으로, 화엄사의 내력, 육위송, 기원문, 연화질로 구성되어 있다. 적묵당은 대웅전 앞마당 동쪽편에 일원을 이루고 있는 승당의 명칭이자 마당과 마주하고 있는 서쪽 변 건물의 당호이다. 남별당은 적묵당 영역의 남쪽 변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연화질은 별지에 적혀 있는데, 소임자와 목수 명당이 기재되어 있다. 상량문의 형태 문서는 총 2장으로 앞장은 가로 151.2㎝, 세로 55.7㎝이고,... -
춘추유고-남유기「남유기(南遊記)」는 김도수(金道洙, 1699~1733)의 『춘주유고(春洲遺稿)』 권2에 수록된 기행 일기이다. 그는 자가 사원(士源), 호가 춘주(春洲), 본관이 청풍(淸風)이다. 저서로 『춘주유고』가 있다. 『춘주유고』는 2권 1책으로 1권은 시이고, 2권은 서(序), 기(記), 서(書), 애사(哀辭), 명(銘) 등 여러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남유기」는 1727년 정미년 9월 12일부터 10월 5일까지 김도수가 김옥성, 양경조, 김준필 등과 함께 지리산 등지를 유람하며 쓴 기행문이다. 구례 일대의 여행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