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당은 천왕문을 지나 왼쪽 둔덕에 위치한, 사중의 법랍 40년, 세납 60세 이상 노스님들이 주석하며 수행하는 곳이다. 만월당은 보름의 만월(滿月)이 대중 스님들을 모자람이 없이 원만히 밝고 환하게 비추어 만월지상(滿月之相 : 아름다운 부처님의 모습을 말함)의 모습으로 지내는 전당이라는 뜻이다. 현재 건물 이전의 만월당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다. 1986년에 재건하여 수련장으로 사용하였고, 1996년에는 내부를 수리하고 사중의 칠직 소임을 맡은 스님 거처로 사용하였다. 1999년에는 지하시설에 보일러를 설치하였다. 2002년에는 부엌으로 사용하던 곳을 방으로 만들고, 2008년에 기와번와, 단청, 창호교체가 진행되었다. 2012년에는 만월당 편액을 새로 걸었고, 2014년에 각 실별로 난방설비를 정비하였으며, 2018년에는 욕실공사와 집기를 재구비하여 새롭게 노스님의 거처로 정비하였다.
건물은 뒤쪽에 날개 채가 붙은 ‘ㄷ’자 형태로, 본채는 전면 8칸 측면 2.5칸이며, 날개채는 전면 3칸 측면 1칸이다. 모두 26칸 규모의 대형 요사로 편액이 걸려 있는 본채의 전면에는 퇴칸을 두어 툇마루를 구성하였다. 공포는 올리지 않은 소로수장의 굴도리집으로 본채는 겹처마에 팔작지붕이고, 날개채는 겹처마에 맞배지붕으로 처리하였다. 면을 다듬은 자연석으로 기단을 쌓고 갑석을 올렸으며,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하였다. 기둥은 원기둥을 사용하였다. 건물의 각면에는 툇마루와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실생활을 목적으로 세운 건물이기에 내부에는 다수의 방과 여러 생활 시설이 갖춰져 있다.
세심각(洗心閣)
세심각은 1988년 설치한 수각으로 1989년에 편액을 달았다. 1996년에 세심각에 있는 탈의실을 해우소로 만들었고, 2018년에 만월당 내 각방에 세면설비를 구비하면서 세심각은 세탁실과 조리실로 변경하였다.
사자문(獅子門)
사자문은 만월당의 출입문으로 1986년 만월당 중창 때 담장과 함께 세웠다. 2008년에 사자문과 담장이 철거되었다가, 2018년에 다시 현재 모습으로 정비되었다.
감로문(甘露門)
감로문은 만월각과 봉향각 사이에 있는 문이다. 1986년 만월당 중창 때 함께 세웠다.
화엄약수터
감로문 바로 앞에 있으며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불보살님 전에 청정수를 올릴 때 필요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만월당해우소(滿月堂解優所)
해우소는 사찰의 화장식을 부르는 말이다. 근심을 푸는 곳 또는 번뇌가 사라지는 곳이라는 의미로 경봉 정석(鏡峰靖錫, 1892~1982)스님이 한국전쟁 이후 통도사 극락암에 화장실을 새로 만들고 붙인 이름이다. 현재는 사찰의 화장실을 뜻하는 이름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옛 문헌에서는 화장실은 동사(東舍), 서정(西淨), 정랑(淨廊) 등으로 불렀다. 만월당의 해우소는 1998년 광학장을 복원하기 위하여 부지 정비과정에서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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