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향각은 각황전의 노전으로 여러 기록에서 다양한 이름이 나타나고 있다. 1704년 상량문에서는 향화각(香火閣)으로, 1872년 상량문에는 봉향각(奉香閣)으로 부르고 있으며, 사적기에는 서노전(西爐殿)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최근까지 사중에서는 영산전(靈山殿)이라고도 불렀다. 건물의 초창은 각황전이 재건된 직후인 1704년으로 각황전을 관리하는 소임자의 거처로 세워졌다. 이후 1872년에 중수하였고, 1970년에 서까래 교체, 1998년 11월에 해체수리를 하였다. 해체수리 당시에는 영산전이라 부르고 조실스님이 기거하셨다. 2002년에는 내부수리를 하고 주지스님 거처로 잠시 사용하였고, 2005년에는 계단 옆쪽에 세면시설을 지하에 꾸몄다. 현재는 각황전 기도스님, 강주스님, 강사스님이 거주하고 있다.
봉향각은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집이다. 공포는 올리지 않고 굴도리에 소로수장으로 처리하였다. 평면의 구성은 대웅전 앞마당에서 보았을 때 좌측 2칸이 우측 2칸 보다 넓게 구성되었고, 우측면에는 기둥 밖으로 반침을 덧대 구성하였다. 건물 전면에는 폭 1.2m 정도의 쪽마루가 구성되어 있다. 내부는 스님의 거처로 쓰는 방으로 나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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