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각 산신도는 내부 오른쪽 벽에 봉안되어 있다. 세로 98㎝, 가로 137.5㎝의 면 바탕에 호랑이에 기대어 앉은 산신을 그린 불화이다.
화면 하단에 불화 제작 시기와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을 기록한 화기(畵記)가 남아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산신도는 1897년 탑전에서 칠성도, 독성도와 동시에 제작하여 원통전에 함께 봉안되었다. 밑그림은 금어로 불린 화승 문성(文性, 1867~1954)이 그리고, 제작에는 금어로 연파 화인(蓮波華印), 편수로 문형(文炯)이 참여하였다. 문성, 연파 화인, 문형 세 사람은 함께 조성된 독성도 제작에서도 동일한 역할을 맡았다.
산신도에서 산신은 폭포가 떨어지는 깊은 산 소나무 아래에 투명한 망건을 쓰고 붉은 포를 입은 채, 오른손으로 나무 지팡이 왼손으로는 깃털 부채를 쥐고 앉았다. 얼굴, 팔 등의 신체 표현, 옷주름에 보이는 음영, 투명한 망건의 필치, 주변의 암석과 아치형 소나무를 표현한 청록산수법, 호랑이의 표현과 바위를 표현하는데 사용한 먹점 등이 민화의 화풍과 유사하다. 이 산신도는 2019년 2월 현재의 삼성각으로 옮겨 봉안되었다.
※ 출처: 『화엄사의 불교미술』
원문
建陽二年陰曆丁酉二月二十日造成于塔殿仍以奉安於圓通殿
證明 綾波龍俊
誦呪 銖洪
持殿 南湖恪善 品僔
金魚出草 文性 蓮波華印
片手 文炯
鍾頭 益珣
供司 輔鎰 涇浩
化主 應龍鉷琪
獨辨大施主 乾命高鶴柱戊午生 改名璟柱 願得奇男子 坤命阿氏丙寅生 兩主保体
번역문
건양 2년 음력 정유(1897) 2월 20일 탑전에서 조성하여 원통전에 봉안하다.
증명 능파 용준
송주 수홍
지전 남호 각선/ 품준
금어 출초 문성/ 연파 화인
편수 문형
종두 익순
공사 보일/ 경호
화주 응룡 홍기
독판대시주 건명[1]부부 중 남자를 이르는 말 고학주 무오년 생 개명 경주가 훌륭한 아들을 낳고, 곤명[2]부부 중 여자를 이르는 말 하씨(河氏)[3]『한국의 불화11-화엄사본말사편』(성보문화재연구원, 1998)의 화기에는 ‘何氏’로 나온다. 병인년 생과 더불어 건강한 몸을 보존하기를 기원합니다.
관련주석
- 주석 1 부부 중 남자를 이르는 말
- 주석 2 부부 중 여자를 이르는 말
- 주석 3 『한국의 불화11-화엄사본말사편』(성보문화재연구원, 1998)의 화기에는 ‘何氏’로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