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부전 시왕상 일괄은 명부전 내부에 봉안된 도명존자상(道明尊者像)과 무독귀왕상(無毒鬼王像), 시왕상(十王像), 판관상(判官像), 사자상(使者像), 귀왕상(鬼王像), 장군상(將軍像), 동자상(童子像)을 말한다. 모두 30구의 상들이 불단 중앙 지장보살좌상 좌우에 대칭을 이루며 나누어 배치되어 있다. 이 일괄의 상들은 나무로 형상을 만들고 채색한 목조상으로 명부전이 건립된 1636년경 조성·봉안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명존자상과 무독귀왕상
도명존자상과 무독귀왕상은 내부 불단 중앙의 지장보살좌상 양옆에 세워져 있는 입상 형식의 상이다. 도명존자상은 지장보살좌상 왼쪽에서 합장하고 있는 젊은 스님 모습의 상으로 파란색 장삼 위에 녹색 조선(條線)이 있는 적색 가사를 착용하였다. 반대쪽의 무독귀왕상도 합장한 자세로 머리에 원류관(遠遊冠)을 쓰고 소매가 넓은 중국식 도포를 입고 있는데, 복식과 전체적인 모습이 옆의 시왕상과 거의 같다. 두 상 모두 조선 후기 명부전 지장삼존상의 전형적인 도상을 따르고 있다. 도명존자상은 높이 164.5㎝, 어깨 폭 55㎝이고, 무독귀왕상은 높이 190.5㎝, 어깨 폭 55㎝이다.
시왕상
시왕상은 지장보살상, 도명존자상, 무독귀왕상으로 구성된 지장삼존상 양옆에 5존상씩 10구가 봉안되어 있다. 전각 내부 오른쪽에는 제1 진광대왕·제3 송제대왕·제5 염라대왕·제7 태산대왕·제9 도시대왕 상이 배치되었고, 왼쪽에는 제2 초강대왕·제4 오관대왕·제6 변성대왕·제8 평등대왕· 제10 오도전륜대왕 상이 배치되었다. 시왕은 저승 세계에서 있는 10명의 왕으로, 죽은 사람이 생전에 저지른 죄를 심판하는 역할을 한다. 이 상들은 모두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 손에는 홀(笏)이나 책, 붓 등을 들었다. 복식은 서로 비슷하여 양어깨와 가슴, 무릎 부분에 능화형 장식이 있는 옷을 입었다. 다만 정강이 부분에서 장식적인 안쪽 옷이 노출된 상들과 그렇지 않은 상들로 나뉠 수 있다. 눈에 잘 띄진 않지만 개별적인 특징도 표현되었는데, 제3 송제대왕상은 다른 상들과 달리 살구색 얼굴에 흰 수염을 늘어뜨린 노년의 모습이고, 제7 태산대왕상은 두 다리를 내린 의자좌(倚子坐) 대신 오른 다리를 왼 무릎에 올린 반가좌(半跏坐)를 취하고 있다. 또 제8 평등대왕은 손에 든 지물(持物) 없이 두 손을 무릎 위에 두었다. 제10 오도전륜대왕상은 불화에서 투구와 갑옷을 입은 무관의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여기서는 문관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단, 보관 양측에 착용한 깃털 달린 투구형은 무장형임을 나타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명부전의 시왕상은 『예수시왕생칠경(預修十王生七經)』류에 의한 도상으로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하였는데, 무시무시한 얼굴을 한 동시대 중국 시왕상과 달리 조선 시왕상은 미소를 띠거나 대체로 온화한 인상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상의 크기는 높이 184.5~198.5㎝, 어깨 폭 55~64㎝이다.
판관상, 사자상, 귀왕상
판관상과 사자상은 불단 좌우 양쪽 끝에 1존상씩 4구가 봉안되어 있다. 이 상들은 모두 정면을 향해 선 입상 형식으로, 머리에는 복두(幞頭)를 착용하고 두 손을 모아 두루마리를 받쳐 들었다. 다만 판관상의 옷은 소매가 길고 발등까지 내려오는 긴 도포형임에 비해, 사자상은 하급 관리의 복식인 통이 좁은 옷소매와 기장이 짧은 치마를 입고 있다. 서로 다른 복식은 이들 간의 위계의 차이를 암시한다.
귀왕상은 사자상 옆, 전각 입구 양쪽 마루에 1존상씩 2구가 세워져 있다. 상은 정면을 향해 공수 자세를 하고 선 입상 형식으로, 머리에는 원류관(遠遊冠)을 쓰고 소매가 긴 도포형 적색 겉옷을 입었다. 오래전 명부전 내부를 촬영한 사진에서 왼쪽에 모셔진 귀왕상의 손에 홀이 들려 있어, 본래 두 손을 모아 홀을 든 모습으로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판관상은 높이 151~152㎝, 어깨 폭 42~51.5㎝, 사자상은 높이 149~150㎝, 어깨 폭 48.5~50.5㎝, 귀왕상은 높이 157~165㎝, 어깨 폭 45.5~50㎝이다.
장군상
장군상은 귀왕상 옆, 전각 입구 양쪽 끝에 수문장처럼 세워져 있는 역사형(力士形) 인물상으로 각 1구씩 2구가 세워져 있다. 상은 틀어 올린 머리에 간략한 장식을 하고, 나신의 상체에 조백(條帛)을 비스듬하게 걸쳤다. 몸에 두른 천의(天衣)는 머리 뒤에서 역(逆)U자형으로 휘날리고, 발 밑까지 흘러내려 밟고 섰다. 두 상 모두 한쪽 손에 봉 형태의 무기를 쥐었으나, 입구를 향해 위협하는 손의 자세와 지물은 좌우 비대칭을 띠고 있다. 험상궂은 얼굴 표정과 과장된 근육 표현을 통해 강인하고 위협적인 수호신의 성격을 효과적으로 나타냈다. 이와 같은 역사형 상들은 인왕 또는 금강역사로 불리는데, 1574년 황해도 흥률사에서 개판한 『예수시왕생칠경』 변상도에는 ‘중원갈장군(中元葛將軍)’이라는 명칭이 기입되었음이 보고된 바 있다. 중원갈장군은 지옥의 장군인 삼원장군(三元將軍) 중 하나로, 금강역사와 외모가 비슷하다. 반면, 삼원장군 중 상원주장군과 하원당장군은 투구와 갑옷을 착용한 무장형의 모습이다. 실제로 조선 후기 명부전의 출입구 양쪽에 배치된 수호상 중에는 갑옷을 입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두 종류가 있는데, 어느 유형이건 삼원장군을 나타내려 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명부전의 역사형 인물상은 의미 체계상 인왕이나 금강역사보다는 장군으로 부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만 중원갈장군과 금강역사의 외모가 비슷하기 때문에 후대에 도상이 부분적으로 섞이거나, 명칭 판별에 혼동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입구 오른쪽 상은 높이 206㎝, 왼쪽 상은 높이 211㎝이다.
동자상
동자상은 불단 위 시왕상 사이사이에 놓인 높이 72.5~83.5㎝의 작은 동자 모습의 상으로, 10구가 봉안되어 있다. 본래 도명존자상과 무독귀왕상 옆에도 놓여 있어 모두 12구가 봉안되어 있었지만, 2004년 도난으로 2구를 잃어버렸다. 10구는 모두 정면을 향해 선 입상 형식이고, 손에는 판·과일·연꽃·자라·사자 등 다양한 지물을 들었다. 동자는 시왕과 마찬가지로 본래 도교에서 유래한 도상으로서 조선 후기 불화에서 선악동자(善惡童子)로 존명이 기입된 예들이 있으나, 조각상에서는 정확한 이름을 지닌 것이 거의 없다. 머리 모습을 기준으로 하면 쌍계형으로 짧게 머리를 묶어 올린 중국식과, 댕기형으로 길게 늘어뜨린 한국식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명부전 내부를 촬영한 남아 있는 사진을 통해 봉안된 상들의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와 달리, 제1 진광대왕상·제2 초강대왕상의 손에는 홀이 없고, 도명존자상과 제1 진광대왕상 사이에 놓인 동자상의 두 손에는 지물이 확인되지 않아, 이후 언젠가 제작하여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화엄사의 불교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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