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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전 진영

영전(靈殿)에는 역대 조사 19분의 진영(眞影)이 봉안되어 있다. 본래 봉안되어 있던 옛 진영이 훼손되거나 사라져, 남덕 영관(南德靈觀) 스님의 주지 재임 시기(2013.5.8.~2017.5.8.)에 영전을 해체 보수하면서 진영과 고승단(高僧檀)을 새로 조성하였다. 진영 조성 불사도감은 성보박물관 관장이자 연곡사 주지 원묵 스님이 맡고, 제작은 박물관 부관장 승천 스님과 해동불교미술원장 정경문이 담당하였다. 2015년 정월에 시작하여, 2017년 정월에 마쳤다. 제작 기간은 총 2년 2개월이고, 제작 금액은 총 5억 원이다. 봉안은 2016년 9월 4일, 2017년 1월 7일,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2017년 2월 12일 점안 법회를 봉행하고 회향하였다. 영전 내 봉안된 진영은 아래와 같이 배치되어 있다.
도천동헌계파성능설홍부휴선수부용영관홍경관혜원효연기자장의상도선대각서산벽암각성백암성총용성도광
연기 조사 화엄사 창건주로 전해지는 연기 조사(緣起, 생몰년 미상)의 초상화(眞影)이다. 크기는 세로 157㎝, 가로 94㎝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화엄사 창건공덕주 연기 조사(華嚴寺創建功德主緣起祖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기록하고, 왼쪽에는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義天)이 지은 찬문을 기록하였다. 그림 속 연기 존자는 발 받침대 위에 신발을 벗어 놓고, 의자 위에서 정면을 향해 가부좌로 앉은 모습이다. 어두운 회색 장삼에 황색 가사를 걸치고, 두 손은 가슴 앞에서 모아 합장하였다. 의자에는 붉은색 법피(法被)를 둘렀다. 자장 율사 신라의 고승, 자장 율사(慈藏, 590~658)의 초상화이다. 자장 율사는 화엄사를 중창했다고 전해지는 여러 고승 가운데 한 분이다. 크기는 세로 144㎝, 가로 85㎝이다. 화면 왼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대승율조 자장 율사(大乘律祖慈藏律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자장 율사는 발 받침대 위에 신발을 벗어 놓고, 의자 위에서 오른쪽을 향해 가부좌를 하고 앉은 모습이다. 연녹색 장삼에 연분홍색 가사를 걸쳤다. 왼손에 긴 술이 달린 불자(拂子)를 들고, 오른손으로 술의 끝부분을 받쳐 들었다. 의자에는 붉은색 법피를 둘렀다. 1804년에 제작된 〈양산 통도사 자장율사 진영〉과 도상(圖像)이 흡사하여, 모본을 삼은 것으로 보인다. 원효 대사 신라의 고승, 원효 대사(元曉, 617~686)의 초상화이다. 원효 대사는 화엄사를 중창했다고 전해지는 여러 고승 가운데 한 분이다. 크기는 세로 144㎝, 가로 85㎝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대성화쟁국사 원효 대사(大聖和諍國師元曉大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원효 대사는 발 받침대 위에 신발을 벗어 놓고, 의자 위에서 왼쪽을 향해 가부좌를 하고 앉은 모습이다. 어두운 녹색 장삼에 연한 노란색 가사를 걸치고, 두 손은 배 앞으로 모아 포개어 잡았다. 의자에는 검붉은색 법피(法被)를 둘렀다. 일본 교토 고산사(高山寺)에 전하는 〈원효 대사 진영〉과 도상이 흡사하여, 모본을 삼은 것으로 보인다. 의상 대사 신라의 고승, 의상 대사(義相, 625~702)의 초상화이다. 의상 대사는 화엄사 장육전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진영의 크기는 세로 144㎝, 가로 85㎝이다. 화면 왼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화엄원교국사 의상 대사(華嚴圓敎國師義湘大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의상 대사는 발 받침대 위에 신발을 벗어 놓고, 의자 위에서 오른쪽을 향해 가부좌를 하고 앉은 모습이다. 황색 장삼에 밤색 가사를 걸치고, 손에 부채 형식의 불자를 들었다. 의자에는 푸른색 법피를 둘렀다. 일본 교토 고산사(高山寺)에 전하는 〈의상 대사 진영〉과 도상이 흡사하여, 모본을 삼은 것으로 보인다. 관혜 대사 신라 말의 고승, 관혜 대사(觀惠, 생몰년 미상)의 초상화이다. 관혜 대사는 10세기 초 해인사에서 남악파를 이끌었던 화엄학승이며, 남악파는 화엄사 학풍을 계승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진영의 크기는 세로 144㎝, 가로 85㎝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남악화엄종주 관혜 대사(南嶽華嚴宗主觀惠大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관혜 대사는 발 받침대 위에 신발을 벗어 놓고, 의자 위에서 왼쪽을 향해 가부좌를 하고 앉은 모습이다. 연분홍색 장삼에 연녹색 가사를 걸치고, 오른손에 염주를 쥐었다. 왼손은 아래로 길게 늘어진 염주를 받쳐 들었다. 의자에는 푸른색 법피를 둘렀다. 도선 국사 신라 말, 고려 초의 선승 도선 국사(道詵, 827~898)의 초상화이다. 도선 국사는 도참설을 바탕으로 화엄사를 중창한 후, 총림 대도량(叢林大道場)을 개설한 고승으로 전해진다. 진영의 크기는 세로 144㎝, 가로 85㎝이다. 화면 왼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호국왕사 도선 요공 선사(護國王師道詵了空禪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도선 국사는 발을 받침대 위에 올려놓고, 오른쪽을 향해 의자에 앉은 모습이다. 청녹색 장삼 위에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왼손에 주장자(拄杖子)를 들었다. 의자에는 양 끝에 문양대가 있는 붉은색 법피를 둘렀다. 조선후기에 제작된 〈도갑사 도선 국사 진영〉과 도상이 흡사하여, 모본을 삼은 것으로 보인다. 홍경 선사 고려 광종 대 화엄사의 퇴락한 당우와 암자를 중수한 것으로 전해지는 홍경 선사(洪慶, 생몰년 미상)의 초상화이다. 크기는 세로 144㎝, 가로 85㎝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화엄사 중창공덕주 홍경 선사(華嚴寺重創功德主洪慶禪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홍경 선사는 발을 받침대 위에 올려놓고, 왼쪽을 향해 의자에 앉은 모습이다. 황색 장삼 위에 푸른색 가사를 걸치고, 오른손에 불자를 들었다. 의자에는 양 끝에 문양대가 있는 붉은색 법피를 둘렀다. 의천 존자 고려중기에 화엄종 교단을 이끈 의천 존자(義天, 1055~1101)의 초상화이다. 크기는 세로 144㎝, 가로 85㎝이다. 화면 왼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홍진우세 대각국사 의천 존자(弘眞祐世大覺國師義天尊者)’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의천 존자는 발을 받침대 위에 올려놓고, 오른쪽을 향해 의자에 앉은 모습이다. 녹색 장삼 위에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왼손은 주장자를 잡고, 오른손은 단주(短珠)를 팔목에 낀 채 의자 손잡이를 잡았다. 1805년 승려 화가 도일이 제작한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과 도상이 흡사하여, 모본을 삼은 것으로 보인다. 부용 영관 조사 서산 대사의 전법 스승인 부용 영관 조사(芙蓉靈觀, 1485~1571)의 초상화이다. 크기는 세로 144㎝, 가로 85㎝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전등호법 부용당 영관 조사(傳燈護法芙蓉堂靈觀祖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부용 영관 조사는 발 받침대 위에 신발을 벗어 놓고, 의자 위에서 왼쪽을 향해 가부좌를 하고 앉은 모습이다. 푸른색 장삼 위에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오른손은 주장자를 잡았다. 의자에는 양 끝에 문양대가 있는 녹색 법피를 둘렀다. 청허 서산 대사 조선불교 중흥조이자, 조선중기 승병장 청허당 서산 대사(西山, 1520~1604)의 초상화이다. 크기는 세로 144㎝, 가로 85㎝이다. 화면 왼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전등호법제세 청허당 서산 대사(傳燈護法濟世淸虛堂西山大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청허 서산 대사는 발 받침대 위에 신발을 벗어 놓고, 의자 위에서 오른쪽을 향해 가부좌를 하고 앉은 모습이다. 회색 장삼 위에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두 손으로 불자를 들었다. 의자에는 양 끝에 문양대가 있는 푸른색 법피를 둘렀다. 부휴 선수 선사 벽암 각성 스님의 스승, 부휴당 선수 대선사(善修, 1543~1615)의 초상화이다. 크기는 세로 144㎝, 가로 85㎝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전등홍법 부휴당 선수 대선사(傳燈弘法浮休堂善修大禪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부휴 선수 선사는 왼쪽을 향해 의자에 앉은 모습니다. 황색 장삼 위에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오른손은 주장자를 잡았다. 의자에는 양 끝에 문양대가 있는 녹색 법피를 둘렀다. 벽암 각성 선사 조선 인조 때, 화엄사 동, 서 오층석탑을 중창, 중수한 승병장 벽암 각성 선사(覺性, 1575~1660)의 초상화이다. 크기는 세로 144㎝, 가로 85㎝이다. 화면 왼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호국홍통선교 벽암당 각성 대선사(護國弘通禪敎碧巖堂覺性大禪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벽암 각성 선사는 발을 받침대 위에 올려놓고 오른쪽을 향해 의자에 앉은 모습이다. 녹색 장삼 위에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왼손에는 불자를 들었다. 의자에는 양 끝에 문양대가 있는 붉은색 법피를 둘렀다.〈합천 해인사 국일암 벽암선사 진영〉과 도상이 흡사하여, 모본을 삼은 것으로 보인다. 설홍 대사 정유재란 때 승병장으로 화엄사 주지를 지냈던 설홍 대사(雪泓, 생몰년 미상)의 초상화이다. 크기는 세로 144㎝, 가로 85㎝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호국제세 설홍 대사(護國濟世雪泓大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설홍 대사는 발을 받침대 위에 올려놓고, 왼쪽을 향해 의자에 앉은 모습이다. 푸른색 장삼 위에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두 손은 의자 위에 올리고 있다. 백암 성총 대사 벽암 각성 스님의 제자, 백암 성총 대사(性聰, 1631~1700)의 초상화이다. 크기는 세로 144cm, 가로 85cm이다. 화면 왼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화엄종주 백암당 성총 대사(華嚴宗主柏庵堂性聰大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백암 성총 대사는 등받이가 없는 짧은 다리의 의자 위에서 오른쪽을 향해 가부좌로 앉은 모습니다. 푸른색 장삼 위에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왼손에 불자, 오른손에는 염주를 들었다. 계파 성능 대사 조선 숙종 때, 화엄사 각황전을 중창한 계파 성능 대사(性能, 1575~1660)의 초상화이다. 계파 성능 대사의 중창 후, 화엄사는 선교 양종 대가람(禪敎兩宗大伽藍)으로 승격되었다. 진영의 크기는 세로 144cm, 가로 85cm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각황전 중건공덕주 계파당 성능 대사(覺皇殿重建功德主桂坡堂性能大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계파 성능 대사는 화문석(花紋席) 위에서 왼쪽을 향해 가부좌로 앉은 모습이다. 어두운 갈색 장삼에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왼손에는 염주, 오른손에는 주장자를 잡았다. 용성 진종 조사 3. 1. 운동 당시 민족대표로 참여한 용성 진종 조사(震鐘, 1864~1940)의 초상화이다. 크기는 세로 144cm, 가로 85cm이다. 화면 왼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회통선율 용성당 진종 조사(會通禪律龍城堂震鐘祖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용성 진종 조사는 회색 장삼에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손에는 불자를 들었다. 태현 대종사 용성 진종 스님의 제자이자, 이산 도광 스님의 은사인 태현 대종사(1896~1918)의 초상화이다. 태현 대종사의 승탑과 비는 화엄사 승탑원에 봉안되어 있고, 진영은 각황전과 영전 두 곳에 봉안되어 있다. 영전에 봉안된 이 진영의 크기는 세로 144cm, 가로 85cm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용성사법 동헌당 태현 대선사(龍城嗣法東軒堂太玄大禪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태현 대종사는 정면을 향해 의자에 앉은 모습이다. 회색 장삼에 괴색(壞色) 가사를 걸치고, 오른손에 단주를 쥐었다. 의자의 등받이에는 법피를 둘렀다. 도광 대종사 화엄사 산문의 중흥조로 추앙받고 있는 도광 대종사(導光, 1922~1984)의 초상화이다. 승탑과 비는 화엄사 승탑원에 봉안되어 있고, 진영은 각황전과 영전 두 곳에 봉안되어 있다. 영전에 봉안된 이 진영의 크기는 세로 144cm, 가로 85cm이다. 화면 왼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호지삼보 이산당 도광 대종사(護持三寶离山堂導光大宗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도광 대종사는 정면을 향해 의자에 앉은 모습이다. 회색 장삼에 갈색에 가까운 괴색 가사를 걸치고, 오른손에는 주장자를 잡았다. 각황전에 모셔진 진영과 도상이 흡사하여, 모본을 삼은 것으로 보인다. 도천 대종사 도광 대종사와 함께 화엄사 산문의 중흥조로 추앙받고 있는 도천 대종사(道川, 1922~2011)의 초상화이다. 화엄사 양대 문중인 도광, 도천 문도회에서 도천 스님 열반 후 평생 도반이었던 두 스님의 유지를 받들고, 문도의 화합을 위해 승탑은 하나로 비는 별도로 제작하기로 결정하여, 현재 승탑 1기, 부도비 2기가 승탑원에 봉안되어 있다. 진영은 각황전과 영전 두 곳에 봉안되어 있는데, 영전에 봉안된 이 진영의 크기는 세로 144cm, 가로 85cm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선농겸수 도천당 도천 대종사(禪農兼修道天堂道川大宗師)’라는 진영의 제목을 먹으로 기록하였다. 그림 속 도천 대종사는 정면을 향해 의자에 앉은 모습이다. 회색 장삼에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오른손에 주장자를 잡았다. 각황전에 모셔진 진영과 도상이 흡사하여 모본을 삼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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