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황전은 왕실의 지원으로 1702년(숙종 28)에 계파성능(桂波性能)스님이 재건한 불전이다. 이 자리에는 장륙전이라는 이름의 불전이 있었고, 내부에 화엄석경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 건물은 소실되고 화엄석경은 파괴되어 만여 점이 넘는 조각으로만 남아 있다. 전란 이후 벽암 각성스님의 중창 당시 대웅전만 재건되고 장육전은 재건하지 못하였는데, 1699년에 홍각, 등계, 성능스님이 영남 예천 학가산에서 와서 재건의 업적을 이어 2층 7간의 대전을 원통전과 함께 재건하였다. 공사는 1699년(기묘) 봄부터 1702년(임오) 겨울까지 4년에 걸쳐 진행되었고, 1701년에 진행된 상량식에는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이 상량문을 지었다. 상량문에는 1699년에 임금(숙종)이 장육전을 중창할 비용 십만 냥(十萬 兩)을 하사하였다는 내용과 원당(願堂) 대시주로 연잉군(훗날 영조)과 그의 모친인 숙종의 후궁(後宮) 숙빈최씨(淑嬪崔氏)가 기록되어 있다. 건물의 단청과 불상 조성은 이듬해인 1703년에 이뤄졌다. 이때 화공과 승려 화원 등 장인 32명이 참여했다. 현재 전각의 이름은 공사가 끝난 뒤 숙종이 친히 지어 하사한 것으로 ‘각황전’이라는 이름은 ‘깨달은 왕(부처)이 계신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 편액은 당대의 명필이었던 이진휴(李震休, 1657~1710)가 썼다. 이후 1768년(영조 44), 1847년(헌종 13), 1851년(철종 2), 1885년(고종 22)에 중수하였다.
관리 보수 기록
1936년부터 41년까지 해체보수가 진행되었으며, 그 일환으로 1939년에 임천선생이 각황전의 벽화와 단청을 모사하였다. 1961년 10월에 각황전 지붕에 대한 부분적인 해체보수 진행되고, 1966년 12월에 대웅전과 각황전의 실측조사와 각황전 수리가 진행되었다. 1968년에 각황전 수리용 기와제작을 시작하여 1969년 6월 3일 지붕을 수리하였고, 1971년 각황전과 대웅전의 석축 수리, 1983년 지붕 보수, 1984년 불단 보수, 1997년 불단 해체보수 및 마루공사, 1999년 탑형 불등단 설치가 이뤄졌다.
2000년에 각황전 계단보수가 진행되었으며, 2006년 불단 후면에 아미타불 입상과 영가단을 설치하였고, 2014년에는 탑형 불등단을 닫집형 불등단으로 교체하였다. 2016년에 활주보수가 진행되는데 기존 활주의 교체 대신 철재 기둥으로 보강하였다. 2017년에 진영단이 설치되고 불단 앞에 경상을 새로 설치하였다. 2018년에는 처마에 달려 있던 일본식 풍경을 제거하고 전통식 풍경으로 교체하였다.
보수공사와 별개로 1989년에 화엄사 일원에 대한 실측조사가 진행되었으며, 2009년에는 3D스캔조사를 통한 정밀실측조사가 시행되었다. 2021년에는 문화재청 산하기관 전통건축수리기술재단의 발주로 HBIM(Historic 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구축이 진행되었다.
문화재 훼손사건으로 2012년 10월 5일 새벽 방화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방염(防炎)처리와 조기 발견으로 후면 출입문 일부만 피해를 입었다. 2013년 2월에 해당 문짝은 교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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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석경화엄석경은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경이다. 석경의 모서리에 고정과 연결을 위한 홈이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벽처럼 세워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판의 크기는 세로 52㎝, 가로 65㎝, 두께 2.7~6.4㎝, 폭 3.1~34㎝이다. 글씨 위쪽과 아래쪽에 가로로 그은 선과 세로로 행간을 구분하는 계선을 긋고, 그 안에 경전의 내용을 새겼다. 파편 석경에는 적게는 몇 자에서 많게는 50여 자의 글자가 있으며, 해서체로 쓰였다. 석경은 경문, 변상도, 범어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은 품(品)으로 구분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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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음집-화엄사에서 옛 일을 생각하고, 여응에게 보여주다「화엄사에서 옛 일을 생각하고, 여응에게 보여주다」는 칠언율시로 신즙(申楫, 1580~1639)의 『하음집(河陰集)』 권2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왜란으로 소실된 화엄사를 보고 느낀 정취를 읊은 것이다. 파손된 석경, 천년 고찰의 황폐한 풍경과 승려들이 이를 중신(重新)하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는 안타까움이 담겨있다. 화엄사는 1636년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대사가 중창하였다. 『하음집』 권2에는 저자 신즙이 지리산 일대를 유람하며 쓴 시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최륵(崔泐)은 자가 여응, 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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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눌선생문집-화엄사「화엄사」는 노상직(盧相稷, 1855~1931)이 구례 오미리(五美里)에 머물던 김서중(金瑞仲)에게 지어 보낸 「봉성팔절(鳳城八絶)」 중의 다섯 번째 시이며, 『소눌선생문집(小訥先生文集)』 권4에 수록되어 있다. 시의 내용은 화엄사가 연기조사 창건 이래의 천년 고찰이며, 푸른 벽에 새겨진 화엄석경이 훼손되어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안타까운 심경을 담고 있다. 원문 華嚴寺 【원주: 在智異山麓。僧烟氣建此寺。中有一庵。四壁不加土塗。皆用靑壁。刻華嚴經。歲久壁壞。文字湮沒不可讀。東有日留峯。西有月留峯。】 華嚴烟氣已千秋。 靑壁經文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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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문고-화엄종「화엄종」은 위암 장지연(張志淵, 1864~1921)의 문집 『위암문고(韋庵文稿)』 권9, 「조선불교관(朝鮮佛敎觀)」 에 수록된 글의 일부이다. 의천(義天, 1055~1101)의 「화엄사 연기조사의 진영에 참배하고(華嚴寺禮緣起朝師影)」 시와 『호남도 구례현 지리산 대화엄사 사적(湖南道求禮縣智異山大華嚴寺事蹟)』 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화엄종의 초조(初祖)에 관하여 연기조사(煙起祖師)를 언급하였다. 또한 신라 헌강왕 사후 서발한 김임보 등으로 하여금 60권본 『화엄경』 (진본)과 40권본 『화엄경』(정원본)을 자주색과 푸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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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육전 중건 상량문「조선국 전라도 구례현 지리산 대화엄사 장육전 중건 상량문」은 현 각황전의 1701년 중건에 대한 상량문으로 1936~1940년 사이 각황전 해체 중건 공사 시에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장은 1701년(숙종 27) 9월에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이 찬술하였고, 실제 상량일은 1701년 11월 2일이다. 내용은 화엄사의 경관,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이후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의 중창, 장육전(丈六殿)의 내력과 중건 동기, 계파 성능(桂坡聖能, 생몰년 미상) 스님의 장육전 중건 경위... -
각황전 봉향각 상량문「각황전 봉향각 상량문」은 1872년(동치 11) 6월 19일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 서산(西山) 대사의 후인(後人) 등계 지원(登階智圓) 스님이 글을 썼다. 앞면에는 법운(法雲) 스님이 향각을 창건하였고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중창하게 되었다는 봉향각의 내력을 밝혔고, 이어서 육위송, 축원문이 적혀있다. 뒷면에는 여러 관계자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데 첫 부분에는 사찰의 승려명단을 신분에 따라 산중대덕(山中大德), 선덕(禪德), 전함(前啣), 중청(中廳), 사미(沙彌)로 구분하여 적었다. 이어서 공사... -
각황전 중건 상량문 현판「지리산 대화엄사 각황전 중건 상량문」은 1938년(불기 2965) 5월 구산(龜山) 사문 영호 정호(映湖鼎鎬, 1870~1948)스님이 지었다. 내용은 화엄사의 연혁과 연기조사, 의상대사 이후 조선시대까지의 창건 및 중수와 관련된 인물, 각황전의 연혁, 당시 각황전 중수의 내력과 과정, 육위송, 기원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만 현판으로 전하고 있어 관계자 명단은 확인되지 않으며, 글 끝에 12월 14일에 상량하였다는 기록이 추가되어 있다. 실제 상량문은 현 각황전 마루도리에 수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가... -
무용당유고-장육전 중수 경찬소「경상도 양산 통도사 성골령탑 급 호남 구례 화엄사 장육 중수 경찬소」는 무용 수연(無用秀演, 1651~1719)스님이 양산 통도사의 성골 영탑과 구례 화엄사의 장륙전 중수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글이다. ‘경찬소’란 공덕을 찬탄하는 글로, 불사 참여와 성취는 매우 복된 일이라고 치하했던 것이다. 이 글은 수연스님의 문집인 『무용당유고』(1724년 간행) 하권에 수록되어 있다. 장륙전 중수는 1699년에 시작하여 1702년에 완공되었고, 통도사 영탑은 1704년에 중수를 시작하여 1706년에 완공되었는데 두 불사 모두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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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전 창건 중수기「호좌 구례현 대화엄사 각황전 창건 중수기」는 1885년(광서 11) 5월 15일 원화 덕주(圓華德柱, 1839~1893) 스님이 찬술하였다. 내용은 연기조사 창건을 시작으로 역대 중창 연혁 등 내력을 적고, 문서의 끝에 화주(化主), 도감(都監), 패장(牌將), 지전(持殿), 별좌(別座), 삼강(三綱) 등 관계자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화주스님으로 호봉 두원(虎峰杜源), 설암 회성(雪岩會性), 우담 순선(優曇淳善)이 기록되어 있다. 문서는 『구례 화엄사 실측조사 보고서』(문화공보부, 1986) 204쪽에 수록된... -
각황전 중수 기념비「각황전 중수 기념비」는 1943년(소화 18) 1월 각황전 중수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글은 엄창섭(嚴昌燮, 1891~?)이 지었다. 비문의 글씨는 김태랑(金太郞, 요시무라 긴타로)이 쓰고, 비액의 전서는 위창 오세창(葦滄吳世昌, 1864~1953)이 썼다. 내용은 각황전의 창건과 중창 내력, 1930년대 조선총독부의 현황 조사와 12만여 원의 지원, 1936년부터 1941년까지 6년의 공사 기간 등을 전하고 있다. 글을 쓴 엄창섭은 당시 전라남도지사였고, 일본식 이름은 다카나 가노리키(武永憲樹)이다. 이 비는 ... -
조선불교통사-계파 성능 스님의 통도사 사바교주석가여래영골사리부도비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편, 사바교주석가여래영골사리부도비(娑婆敎主釋迦如來靈骨舍利浮圖碑) 조에 수록되어 있다. 통도사 사리탑의 내력을 기록한 비문이다. 1705년(숙종 31) 계파 성능(桂坡性能, 생몰년 미상) 스님이 지리산에서 통도사로 오게 되어 금강계단을 중수하고,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의 글을 받아 1706년(숙종 32) 2월에 석가여래영골사리부도비를 건립하였다. 자장율사가 당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임란 때 사명대사가 왜적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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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석경 유리건판 사진화엄석경 유리건판 사진으로는 화엄석경 파편(소장품번호 건판 35057), 화엄사 석경 탁본(소장품번호 건판017076, 소장품번호 건판024563) 등 3점이 찾아진다. 일제강점기 화엄사 사진은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라는 사진자료집과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공개하고 있는 유리건판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고적도보』는 우리나라 고적의 도판을 모은 책이다. 이 가운데 화엄사 관련 사진은 1933년에 간행된 『조선고적도보』 제13책(조선시대 불사건축 2)에 수록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 -
각황전 중창 이야기각황전 중창 설화는 숙종(肅宗, 재위 1674~1720)대 왕실의 지원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다양한 유형으로 전승되고 있다. 기본적인 서사는 각황전 중창 배경, 신이한 화주자 선발, 화주자의 신분, 시주자 선발 조건, 시주자의 신분, 사망과 환생, 환생국의 후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황전 중창 설화는 화엄사 인근의 지리적 요소를 활용하여 사실성을 더한 점이나 공주나 왕자, 황제 등 신분이 높은 사람의 불치병을 고친다는 ‘금척설화’의 소재를 차용한 점, 신이한 현상, 환생 등 불교적 색채가 어우러져 민간으로 ... -
설암선사난고-화엄사 장육전 시에 차운하여 짓다「화엄사 장육전 시에 차운하여 짓다」 시는 칠언율시 2수로 설암 추붕(雪巖秋鵬, 1651~1706)의 『설암선사난고(雪巖禪師亂藁)』 권2에 수록되어 있다. 장육전은 1702년 계파 성능(桂坡聖能, 생몰년 미상) 스님이 중수하였다. 원문 次題華嚴寺丈六殿 碧山重建紫微宮 繡戶瓊牕勢轉雄 巖竹和風誇晩翠 天花落地笑春紅 西來一燭傳三世 南國千年闡五宗 遊賞此增淸淨債 白雲回首與誰同(一) 八正金繩界道平 琉璃殿上少人行 牕含簇簇沙花影 風送冷冷石磬聲 松磴排鱗輝白日 烟巖展翅抱香城 他年倘得東飛錫 芝路松胎保此生(二) ※출처: ‘불교기록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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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집-화엄사 장육전 중수 시「화엄사 장육전 중수 시」는 칠언율시로 홍세태(洪世泰, 1653~1725)의 『유하집(柳下集)』 권3, 시(詩) 편과 『속수구례지』 하, 제영 편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계파 성능(桂坡聖能, 생몰년 미상) 스님이 장육전을 중수할 때 홍세태에게 시를 부탁한 것이다. 『유하집(柳下集)』에 수록된 시의 주석에서는 도선 국사(道詵國師, 827∼898)를 연기조사라 한 점, 이에 따라 화엄사 창건주를 도선 국사로 파악한 점이 특징이다. 장육전 중건 상량문은 1701년(숙종 27) 9월에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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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당시집-화엄경을 돌에 새김「화엄경을 돌에 새김」은 칠언절구로 ‘화엄사 십해(十解)’의 여섯 번째 풀이다. 이 시는 윤종균(尹鍾均, 1861~1941)의 『유당시집(酉堂詩集)』 권2, 병진고 편에 수록되어 있으며, 1916년에 찬술된 것이다. 시의 내용은 화엄석경이 봉안된 위치, 왜란으로 인한 훼손, 서체의 강건함에 대해 읊은 것이다. 화엄석경의 서체에 대해서는 박규수(朴珪壽, 1807~1877)의 「윤 침계에게 보내는 편지(上尹梣溪)」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적고 있다. 원문 華嚴石刻 六解 華嚴經石刻卽覺皇殿壁而兵火中破碎字劃蒼雅遵勁在覺皇殿佛床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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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일기-1686년 8월 21일 일기1686년 8월 21일 일기는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의 『산중일기(山中日記)』 권상에 수록되어 있다. 이 날 정시한은 화엄사 스님들과 함께 나한전, 시왕전, 장륙전, 화엄석경, 사사자 삼층 석탑 등을 보았다. 1700년 경 계파 성능(桂坡聖能, 생몰년 미상) 스님이 장육전(즉 각황전)을 중창하기 전 모습을 알 수 있다. ‘법화경판’은 화엄석경의 오기(誤記)이다. 말미에서 ‘화엄’이라는 절의 이름이 경판에서 유래했다는 기록을 고려하면, 정시한은 분명히 ‘화엄석경’이라 인지하고 있었다. 당시 화엄석경은 왜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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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유고-남유기「남유기(南遊記)」는 김도수(金道洙, 1699~1733)의 『춘주유고(春洲遺稿)』 권2에 수록된 기행 일기이다. 그는 자가 사원(士源), 호가 춘주(春洲), 본관이 청풍(淸風)이다. 저서로 『춘주유고』가 있다. 『춘주유고』는 2권 1책으로 1권은 시이고, 2권은 서(序), 기(記), 서(書), 애사(哀辭), 명(銘) 등 여러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남유기」는 1727년 정미년 9월 12일부터 10월 5일까지 김도수가 김옥성, 양경조, 김준필 등과 함께 지리산 등지를 유람하며 쓴 기행문이다. 구례 일대의 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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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재집-유방장록「유방장록(遊方丈錄)」은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의 『심석재집(心石齋集)』 권12에 수록된 기행 일기이다. 그는 자가 동옥(東玉)·구홍(九洪), 호가 심석재(心石齋), 본관이 은진(恩津)이다. 여러 차례 추천으로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고, 구국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활동하였다. 저서로 『심석재집』, 『독서만집(讀書漫錄)』, 『학문삼요(學問三要)』, 『사례축식(四禮祝式)』, 『용학보의(庸學補疑)』, 『주서선류(朱書選類)』 등이 있다. 『심석재집』은 35권 15책으로 시, 소(疏), 서(書),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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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열록-화엄사기화엄사기(華嚴寺記)는 『백열록(栢悅錄)』에 수록된 화엄사 관련 산문이다. 산문은 범해 각안(梵海覺岸, 1820~1896) 스님의 글이며, 내용은 각황전 중창 설화를 적은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당시 각황전을 3층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3층의 각황전이 왜란으로 소실된 이후는 2층인 것도 밝히고 있다. 또 산문의 말미에 3년의 중창 기간과 장육불상을 봉안 한 것, 후불단에 화엄석경 안치한 것도 확인 할 수 있다. 『백열록』은 금명 보정(錦溟寶鼎, 1861~1930) 스님이 해남 대흥사에 머물면서 추사 김정희,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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