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은율사비는 2단으로 조성된 승탑원의 북쪽 구역 아랫줄에 위치한다. 비의 주인공인 호은 율사는 호은 문성(虎隱文性, 1850~1918) 스님이다. 비는 1919년 기미년 2월 21일 당시 화엄사 주지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1) 스님이 건립하였다.
호은율사비는 사각형의 비좌(碑座) 위에 몸돌인 비신(碑身)과 지붕 모양 돌인 옥개석(屋蓋石)을 얹은 구성이다. 비의 전체 높이는 224㎝, 비신 너비는 63㎝, 비신 두께는 37㎝, 옥개 높이는 50㎝이다. 비신 전면 상단에 ‘호은대율사비(虎隱大律師碑)’라고 새겼다.
비문은 장지연(張志淵, 1864~1921)이 1918년 8월에 지었는데, 호은 문성의 출신과 행적을 담은 서(序)와 스님을 기리는 본문인 명(銘)으로 구성하였다. 서(序)에 따르면, 스님은 1850년 8월 24일 출생하였다. 10세에 조실부모하고, 16세에 남해 용문사에서 출가하여 금우 필기 화상께 계를 받았다. 이후 범어사, 송광사, 태안사, 쌍계사, 해인사, 화엄사 등에서 수행하였다. 1881년 4월 8일에는 용문사에서 수륙대회를 베풀고, 1908년 7월 15일에는 해인사 상선원에 금강계단을 설치하였다. 스님은 1918년 정월 초사흘 오후 2시 법랍 54세, 세수 69세로 입적하였다. 비문의 말미에 화엄사, 천은사, 쌍계사 등 비 건립에 참여한 사람들의 소속 사찰과 명단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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