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는 마산면 황전리 12번지 일대 25,994㎡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화엄사는 1998년 ‘사적 및 명승’으로 지정되었고, 2009년 ‘사적 및 명승’을 ‘사적’과 ‘명승’으로 재분류하는 과정에서 사적인 ‘구례 화엄사’와 명승인 ‘지리산 화엄사 일원’으로 분리되었다.
화엄사는 신라불교의 중심 사상인 화엄의 근본 도량의 하나로 544년(진흥왕 5)에 범승인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신라 문화가 꽃을 피우던 755년에 경주 황룡사에 적을 둔 연기조사의 화엄경 사경 작업에 대한 기록과 국내 유일의 화엄석경이 보존되어 있어 화엄종찰로서 화엄사의 면모를 보여준다. 화엄사의 가람배치는 대웅전과 보제루를 잇는 중심축과 각황전과 석등을 연결하는 동서축이 직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형식인데, 오랫동안 거듭된 중창 과정에서 형성된 배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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