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필종(朴弼鍾)은 사과(司果) 벼슬을 지낸 20세기 전후의 인물이다. 사과는 정6품으로 실제 업무가 없는 무관직이다. 남해 용문사 천왕각 앞에 세워진 사시비(捨施碑)에 ‘대대로 벼슬한 집안의 후예(簪纓世裔)’라는 표현을 고려하면, 박필종은 관료를 배출한 집안 출신일 것이다. 그는 불심이 깊어 여러 사찰에 재산을 희사하였다. 특히 호은 문성(虎隱文性, 1850~1918) 스님의 권선으로 중국 상해에서 대장경을 구입해 화엄사로 보냈으며,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에게 6천 원을 희사해 대웅전, 각황전, 사리탑의 복전으로 각 10마지기를 구입하게 하고, 20마지기는 자신이 생전에 쓰다 사후 명복을 구하고자 하였다. 이 공덕으로 1930년 5월 ‘사과박공필종희사공덕비(司果朴公弼鍾喜捨功德碑)’가 화엄사에 건립되었다.
그의 공덕비는 화엄사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용문사에 재산을 희사한 공덕으로 1929년 2월 2일 ‘전사과박공필종사시비(前司果朴公弼鍾捨施碑)’가 건립되어 있다. 또 하동군 북천면 옥정리 마을 앞에도 있다. 그는 백성을 살피고 어려운 이를 도울 줄 알았는데, 소작인들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하고 수확의 절반씩을 나누고 세금은 모두 본인이 부담하였다. 이에 소작인들이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1933년 5월 ‘박필종시혜불망비(朴弼鍾施惠不忘碑)’를 건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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