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은 법호가 진응, 법명이 혜찬, 속성이 진씨(陳氏)이다. 15세에 화엄사로 출가하였다. 이후 화엄사, 선암사 등지에서 경론을 수학하다가 24세에 응암 치영(應庵致永) 스님의 법맥을 이었다. 스님은 1910년 박한영(朴漢永)·한용운(韓龍雲) 등과 함께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 종정(宗正) 회광(晦光)의 일본 조동종(曹洞宗) 연합 맹약 체결에 반대해 이를 저지하였다. 1913년 2월 쌍계사에서 호은 문성(虎隱文性) 스님에게 구족계와 대승계를 받았다. 이를 인연으로 진응 스님은 화엄사에 호은대율사비(虎隱大律師碑)를 건립하였다. 진응 스님은 화엄사, 천은사, 범어사, 심원사 등지에서 강설하였으며, 당대 강백으로 이름이 높았다. 금명 보정(錦溟寶鼎, 1861~1930) 스님의 「화엄사 진응(震應) 화상을 청하는 글(請華嚴寺震應和尙書)」에서도 진응 스님께 강연을 청하는 일이 확인된다.
스님은 1917~1919년, 1928~1932년에 화엄사 주지로 재임하였다. 1915년(대정 4) 7월 1일 대웅전 중수기를 찬술하였으며, 저서로 『지리산지(智異山誌)』가 있다. 스님은 1941년 9월 일주문 수습 상량문에는 노덕(老德)으로, 1941년 9월 「지리산 대화엄사 적묵당 남별당 개건 상량문」 문서에는 대선사(大禪師)로 명단에 기재되어 있다. 스님은 1942년 1월 31일 화엄사에서 세수 68세, 법랍 53세로 입적하였다. 화엄사 입구 승탑군에 진응 스님의 승탑이 있다.
진응 스님의 유품으로는 화엄사 화산학림(華山學林)의 강사로 있을 때 발급한 사교과와 대교과 수업 증서와 스님이 모은 서간문 등이 있다. 수업 증서는 1932년에서 1934년 사이에 백양사(白羊寺) 봉암(峰庵) 변월주(邊月舟) 스님에게 발급한 것이다. 서간문은 진응 스님이 왕수환에게 보낸 것 1통, 1912년 만해 한용운 스님이 보내온 것 1통, 1930년과 1933년 경운 스님이 보내온 것 2통, 금명 보정 스님이 보내온 것 1통, 한암 스님이 보내온 것 1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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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통사-화엄사 석벽에 화엄경을 새긴 일은 교가의 사업이다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편, 화엄벽경교가사업(華嚴壁經敎家事業) 조에 수록되어 있다. 화엄사 석벽에 화엄경을 새긴 일은 교가(敎家)의 사업임을 밝히고 있다. 본문에 인용된 두 편의 시는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의 『대각국사문집』에 수록된 것이다. 이네다 순스이(稻田春水)는 일제강점기 불교 및 고고학자로 1915년 지리산 화엄사의 화엄석벽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全羅南道智異山華嚴寺華嚴石壁經に就て」, 『朝鮮及滿洲』 98, 京城: 朝鮮及滿洲社,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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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이 보내온 편지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스님이 1912년 12월 17일 부산 범어사에서 구례 화엄사의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께 보낸 편지이다. 편지 속에는 지난 7월 만주에서 육혈포(즉 권총)를 맞아 구사일생으로 귀환한 일과 진진응 스님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있다. 편지의 크기는 가로 8.9㎝, 세로 14.2㎝이다.(※출처: 칸옥션) 봉투에는 왼쪽 상단에 우표와 대정(大正) 1년(1912) 12월 10일자의 날짜도장, 하단에는 대정 1년 12월 22일자의 날짜도장이 찍혀 있다. 이 편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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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스님이 보내 온 편지경운 원기(擎雲元奇, 1852~1936) 스님이 1930년 음력 8월 9일에 화엄사의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께 보낸 편지이다. 편지에는 먼저 계절인사를 적고, 이어서 진응 화상에 대한 찬탄을 기술하였다. 그 내용은 진응 화상은 덕이 넘치며 법을 섭렵하였으므로 스승으로 모실 법하다는 것, 박한영(朴漢永, 1870~1948) 스님과 연대하여 불교계를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능엄경(楞嚴經)』의 조목에 대한 자신의 견해 등이 적혀있다. 말미에는 안부인사와 앞으로의 왕래를 바라는 마음을 적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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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진응선사 회갑연 축하송경운 원기(擎雲元奇, 1852~1936) 스님이 1933년 음력 8월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께 회갑연 축하송을 적어 보낸 편지이다. ‘해동의 강사엔 다시 짝하리 없네’라는 표현에서 진진응 스님이 당시 강백으로 명성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 편지는 한정섭 편저 『近代高僧名人書翰集』(佛敎通信敎育院, 2000)에 수록되어 있다. 번역문 頌陳震應禪師回甲慶醼 진진응 선사 회갑연 축하송 堪駕當年露地牛 당년에 노지(露地) 소수레를 탈만하니 海東講席更無俊 해동의 강백으로도 비길이 없네 龍藏八萬濃皮裏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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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송문고-화엄사 진응 화상을 청하는 글화엄사 진응 화상을 청하는 글(請華嚴寺震應和尙書)은 『다송문고(茶松文稿)』 권2에 수록되어 있다. 편지의 내용은 조계산 송광사에 있던 금명 보정 스님이 화엄사의 진진응 스님을 초청하여 송광사에서 법회를 열어달라고 청한 것이다.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은 당대 유명한 강백이다. 1887년 봉천암에서 응암 학성(應庵學性, 1830~1866)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896년 응암 학성 스님에게 전강(傳講)을 받아 법맥을 이었고, 1897년 화엄사에서 대교사(大敎師) 법계를 받았다. 화산학림에서도 서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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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응종사탑진응종사탑은 2단으로 조성된 승탑원의 북쪽 구역 아랫줄에 위치한다. 탑의 주인공인 진응 종사는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1)스님이다. 스님은 1873년 12월 24일 출생하고, 1941년 법랍 54세, 세수 69세로 입적하셨다. 진응종사탑은 전체 높이 115㎝, 탑신 높이 94㎝, 상륜 높이 14㎝, 기단 폭 75㎝, 탑신 폭 70㎝의 석종형 승탑(石鍾形僧塔)이다. 같은 승탑원에 있는 1660년경 조성된 벽암각성탑 계열을 잇는 종 모양에 충실한 탑이다. 탑은 둥근 기단에 종 모양 탑신과 연화문이 새겨진 둥근 ... -
호은 율사 비호은율사비는 2단으로 조성된 승탑원의 북쪽 구역 아랫줄에 위치한다. 비의 주인공인 호은 율사는 호은 문성(虎隱文性, 1850~1918) 스님이다. 비는 1919년 기미년 2월 21일 당시 화엄사 주지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1) 스님이 건립하였다. 호은율사비는 사각형의 비좌(碑座) 위에 몸돌인 비신(碑身)과 지붕 모양 돌인 옥개석(屋蓋石)을 얹은 구성이다. 비의 전체 높이는 224㎝, 비신 너비는 63㎝, 비신 두께는 37㎝, 옥개 높이는 50㎝이다. 비신 전면 상단에 ‘호은대율사비(虎隱大律師碑)’라고 새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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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 성우(1849~1912)경허 성우(鏡虛惺牛) 스님은 근대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서 중생 교화와 불교 중흥에 이바지한 위대한 선승(禪僧)이다.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중흥조로 출현하여 무애자재로운 생활 속에서 전등(傳燈)의 법맥을 이으며, 선불교(禪佛敎)를 진작시킨 혁명가이자 대승(大乘)의 실천자였다. 스님의 속명은 송동욱(宋東旭), 법명은 성우(惺牛), 법호는 경허(鏡虛)이다. 본관은 여산(廬山)으로 1846년 전주 자동리에서 부친 송두옥 모친 밀양 박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9세에 경기도 과천 청계사(淸溪寺)로 출가하여 계허(桂虛, 생몰년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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