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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 정기 진영

〈응봉당 대화상 정기의 진영〉은 응봉 정기(應峰正基, 1853~1919) 스님의 진영으로 1931년 4월에 상좌인 해운당 영렬(海雲堂榮烈) 스님 등이 봉안한 것이다. 진영의 화면 크기는 세로 85㎝, 가로 55.5㎝이며, 바탕 재질은 비단이다. 짙은 감색에 무늬가 있는 족자로 표구되어 있다. 의자에 정면으로 앉은 채 감색 장삼에 흰 동정 깃, 붉은색 가사를 입고 양손에는 흑색 염주를 쥐고 있는 스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스님 앞쪽에 무릎 높이의 경상(經床)에는 촛대와 향로, 다기, 서책 등이 놓여 있다. 진영의 앞면 왼쪽 상단에는 영렬 스님이 1941년 윤6월 20일에 쓴 ‘응봉당 대화상 정기지영(應峰堂大和尙正基之影)’의 제목(影題)과 영찬(影讚)이 묵서로 적혀있다. 진영의 뒷면 상단에는 1931년 4월 봉안일과 세 분의 봉안 상좌 명단이 기록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영렬 스님이 1941년 윤6월 20일에 쓴 응봉 스님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묵서 기록을 통해 응봉 스님이 입적하고 12년이 지난 1931년에 상좌 스님들이 먼저 진영을 봉안하였고, 그 후 10년이 지난 1941년에 영렬 스님이 스승의 진영에 영제와 영찬 그리고 행적을 기록해 둔 것임을 알 수 있다. 진영은 현재 화엄사 성보박물관에 봉안되어 있다.
원문
(前面) 應峰堂大和尙正基之影 非禪非敎 世誰爲之 惟吾師 有時長坐不臥 有時誦經不掇 敎耶禪耶 禪與敎吾不及 而以形傳形 形有時盡 以道傳形 道無時泯 呵呵 古殿風淸 東峰月白 佛二九六八年辛巳閏六月念日 上佐榮烈再拜謹題 (後面) 佛紀二千九百五拾八年辛未四月 日 奉安 上佐 溪峰堂戒文 海雲堂榮烈 萬坡堂永安 師諱正基 應峰法號也 哲宗四年癸卯正月二十七日 生於光陽邑 而世居全州 俗姓全州李氏 父閏聖 母崔氏 十八歲依於燕谷寺月函長老祝髮 受戒于翠峰禪師 經學於德松禪師 中年移于華嚴寺 常讀法華經 長坐不臥 不入俗家 又不見是非 住世七十七 大正八年己未十一月十六日 入涅槃 師之生平 大略如上 而記之 佛二九六八年閏六月念日 上佐榮烈焚香謹署 ※출처: 『한국의 사찰 문화재-2021 한국의 고승 진영 정밀 학술조사』1
번역문
(앞면) 응봉당 대화상 정기의 진영 선도 아니요 교도 아니라 세상에서 누가 그렇게 하리오 오직 우리 대사 뿐 때론 길이 눕지 않고 앉아 지내고 때론 경전 외우기 그치지 않네 교인가 선인가 선과 교 내 이를 바 아니나 형상으로 형상을 전하는 것은 형상은 다할 때가 있지만 도로서 형상을 전하는 것은 도는 없어질 때가 없나니 하하. 옛 전각에 바람 맑은데 동쪽 봉우리에 달이 밝구나 불기 2968년(1941) 신사년 윤6월 20일 상좌 영렬은 두 번 절하고 삼가 제한다 (뒷면) 불기 2958년(1931) 신미년 4월 일 봉안 상좌 계봉당 계문 해운당 영렬 만파당 영안 대사의 이름은 정기이고 응봉은 법호이다. 철종 4년(1853) 계묘년 정월 27일에 광양읍에서 태어났다. 전주에 대대로 살아 속성은 전주 이씨이다. 부친은 윤성이고 모친은 최씨이다. 18세에 연곡사 월함 장로에게 의지하여 머리를 깎았고, 취봉 선사에게 계를 받고 덕송 선사에게 경학을 배웠다. 중년에 화엄사로 옮겨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며 오래도록 눕지 않고 앉아 수행했다. 속가에 드나들지 않고 또 시빗거리를 보지 않았다. 세상에 머물기 77년 만인 대정 8년(1919) 기미년 11월 16일에 열반에 들었다. 대사의 평생은 대략 위와 같아, 이에 기록해 둔다. 불기 2968년(1941) 윤6월 20일 상좌 영렬은 향 사르고 삼가 쓴다. ※출처: 『한국의 사찰 문화재-2021 한국의 고승 진영 정밀 학술조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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