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 후에 혜암 화상에게 부쳐 드림」은 경암 응윤(鏡巖應允, 1743~1804) 스님이 혜암 스님께 보낸 칠언사운(七言四韵) 시로 『경암집(鏡巖集)』 권상에 수록되어 있다. 혜암 스님은 1785년 전라도 관찰사로부터 『정감록(鄭鑑錄)』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무고를 받아 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다. 경암 스님의 시는 이 사건 이후에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원문
赦后寄呈惠庵和尙
覔道安禪是化城
歸家須上白牛程
風濤險域挺身入
雨露恩天信步行
老病已催餘一事
慈悲倘許濟羣生
深心報佛窮塵刹
時論無端責利名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번역문
赦后寄呈惠庵和尙 사면 후에 혜암 화상에게 부쳐 드림
覔道安禪是化城 도 찾고 안선하는 것도 화성이니
歸家須上白牛程 집에 돌아갈 땐 백우를 타야 하네
風濤險域挺身入 바람과 파도 험한 곳도 몸을 세워 들어가고
雨露恩天信步行 비와 이슬 은혜로운 하늘에 발 따라 걷기를
老病已催餘一事 늙음과 병이 재촉하여 한 가지만 남았으니
慈悲倘許濟羣生 자비로 혹여 여러 중생을 제도하길 허락한다면
深心報佛窮塵刹 깊은 마음으로 세상 다하도록 부처님께 보답하리니
時論無端責利名 세상 의론은 무단히 명리만을 추구하는구나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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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통사-혜암윤장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편, 선원소류번안호단(禪源溯流飜案護短) 조에 수록된 ‘상현왈(尙玄曰)’의 일부이다. 내용은 혜암 윤장(惠庵允藏, 생몰년 미상) 스님이 화엄사에서 강단을 열자 40리 근방의 대중 1,500명이 그를 따랐는데, 전라도 관찰사의 무고로 제주도에 유배를 가게 되었다가 문도들의 상소로 풀려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정조실록』 9년(1785) 3월 16일 을축일 첫 번째 기사에서는 스님이 일찍이 『정감록』 사건에 연루되어 흑산도로 유배를 간 일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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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정조 9년 3월 16일원문 問曰: "汝與金履容酬酢之說, 直告。" 供曰: “金履容果來見, 而蓋年前冷井洞 鄭來謙家, 屢次相逢者也。 金履容問於臣曰: ‘求禮花嚴寺僧允藏, 曾以其寺藏置《鄭鑑錄》之罪, 配黑山島, 而吾素知其人, 能文善誦經矣。’ 臣曰: ‘《鄭鑑錄》, 吾雖未目見, 而聞香嶽之言洋海者, 則其中有曰: 「我國歷六百年後, 有百年干戈之說, 而《眞凈秘訣》, 與《鄭鑑錄》相符云。 所謂三家, 卽鄭、金、劉三姓, 而百年干戈, 吾輩生前, 似無此慮」 云。’ 則金履容亦聞而喜之矣。 至於坤帝玄神等說, 臣果有酬酢, 而洪福榮, 以其妻之沮戲下鄕, 故有此祈禱之事矣。” ※출처: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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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파집-혜암 스님께 드리는 편지혜암 스님께 드리는 편지는 추파 홍유(秋波泓宥, 1718~1774) 스님이 혜암 스님께 보낸 편지로 『추파집(秋波集)』 권2에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입실(入室)하였는데 법반(法伴)이 많지 않은 일, 법석을 열었는데 대중이 많이 모이지 않은 일 등을 위로하는 것으로 혜암 스님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이다. 원문 與惠庵丈兄書 公竗年自立。拈我和尙鈯斧于唱法黃嶺道場。知吾東方宗旨。從此重振也。公之名。早著於世。恐或朝華之易凋而所可恃者。其向法之誠。專工之勤。卓出乎人。則其何有始而無終也。聞開法之言然後。尤覺有志者事竟成耳。頃有人來言。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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