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혜암 윤장

혜암 윤장(惠庵玧藏, 생몰년 미상) 스님은 법호가 혜암, 법명이 윤장으로 18세기에 활동하였다. 스님의 법맥은 조관 용담(慥冠龍潭, 1700~1762)→혜암 윤장→기암 이준(畸庵以懏)→제월 의경(霽月義敬)→응암 치영(應庵致永)→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1)→철운 종현(鐵雲宗玄)으로 전승되었다. 해남 대흥사에 주석하다가 화엄사로 옮겨 강단을 열었으며, 이때 40리 근방 1,500명의 대중이 스님을 따랐다고 한다. 스님은 추파 홍유(秋波 泓宥, 1718~1774)스님과 교유하며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이는 『추파집(秋波集)』에 수록된 「혜암 스님께 드리는 편지(與惠庵丈兄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혜암 스님의 찬술에는 1768년 8월에 지은 「용담대사행장(龍潭大師行狀)」이 있다. 『용담집(龍潭集)』 「후록(後錄)」에 혜암 스님이 산재된 용담 대사의 시와 게송 백여 수를 한 권으로 모았다는 서술을 고려하면, 『용담집』 편찬에 혜암 스님의 역할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정감록(鄭鑑錄)』 사건으로 스님이 무고를 받은 기록은 『정조실록』 정조 9년(1785) 3월 16일 을축 첫 번째 기사와 『조선불교통사』 두 곳에 보인다. 『정감록』은 ‘이씨가 망하고 정씨가 일어난다(李亡鄭興)’의 도참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홍복영(洪福營, ?~1785), 이율(李瑮) 등은 하동 일대에서 조선이 정씨, 유씨, 김씨로 삼분되었다가 정씨가 다시 통일할 것이라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이들은 1785년 3월에 잡혀 공초를 받았고, 화엄사의 혜암 윤장 스님은 절에 『정감록』을 숨겨둔 죄로 유배되었다. 한편, 『정조실록』에서는 흑산도에, 『조선불교통사』에서는 전라도 관찰사의 무고를 받아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고 하는 차이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불교통사』에서 혜암 스님의 무고 사건과 함께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4~1729) 스님을 언급한 것이다. 환성 스님은 1729년 법회를 연 일로 무고를 받아 제주도로 유배되어 입적하였다. 법회를 연 일과 무고를 받아 유배된 적이 있다는 두 스님의 공통점을 고려하면, 혜암 스님이 화엄사에서 강단을 열자 여러 사람이 모여들었고, 당시 『정감록』에 대한 유언비어가 퍼져있는 상황에서 이와 연루되어 전라도 관찰사의 모함을 받아 흑산도로 유배를 다녀온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역모 사건에 연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도들의 요청으로 스님이 풀려난 것을 보면, 18세기 후반 화엄사 대중의 저력을 가늠할 수 있다.

관련기사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