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송자대전(宋子大全)』 부록 권14, 어록(語錄) 편에 수록된 글과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의 대화를 우암의 문인 이희조(李喜朝, 1655~1724)가 이를 기록한 것이다.
당나라 때 한유(韓愈, 768~824)는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재직할 당시 태전(太顚) 스님과 친하게 지냈는데, 작별하면서 자신의 의복을 스님에게 주었다. 송시열은 이 일화를 인용해 이후 승가에서 한유가 태전 스님의 도통을 이었다는 인식을 지적하는 한편, 유학자와 승려의 교류를 경계한 것이다. 문공은 한유의 시호이다. 동일한 내용이 이희조의 『지촌집(芝村集)』 권30에도 수록되어 있다.
원문
李喜朝錄
我嘗謂覺性曰。吾輩與禪師相交。甚可畏。昔韓文公平生闢佛。而後來僧家以文公續太顚道統。此可畏云。則覺性曰。今世雖有文公。而無太顚。公無畏云。是隱然譏我言也云。
※출처: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번역문
이희조(李喜朝)의 기록[1]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어록을 이희조(李喜朝, 1655~1724)가 기록한 것이다. 동일한 내용이 이희조의 『지촌집(芝村集)』 권30에도 수록되어 있다.
내(즉 송시열)가 일찍이 각성(覺性) 스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유학자들)이 선사(禪師)와 교류하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라 할 만하다. 옛날 한 문공(韓文公)은 평생 불교를 배척하였는데, 이후 승가(僧家)에서는 ‘문공이 태전(太顚)의 도통(道統)을 계승하였다.’고 여기니, 이것이 두렵다할 만한 것이다.” 그러자 각성 스님은 “지금 세상에는 비록 문공은 있지만, 태전이 없으니, 공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라고 말하였다. 이는 은근히 내 말을 기롱한 것이다.
※번역: 불교학술원
관련주석
- 주석 1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어록을 이희조(李喜朝, 1655~1724)가 기록한 것이다. 동일한 내용이 이희조의 『지촌집(芝村集)』 권30에도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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