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문(記文)에서도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의 여러 행적이 기술되어 있는데, 장유(張維, 1587~1638)의 『계곡집(谿谷集)』 권8에 1624년(인조 2) 각성 스님이 승군의 최고 지위인 도총섭(都摠攝)에 임명되어 승도들을 이끌고 남한산성의 축성을 감독한 일이 보인다. 인조는 남한산성의 축성을 2년 만에 완성한 스님의 공적을 치하하며 1626년 11월 ‘보은천교원조 국일도 대선사(報恩闡敎圓照國一都大禪師)’의 직함과 함께 의발(衣鉢)을 하사한다는 내용의 교지(敎旨)를 내렸다.
원문
南漢城記
首相李元翼,延平府院君李貴建言。請修是城。初命靑原君沈器遠掌其事。請役游手。用度帖以攝僧徒。尋遭喪去。摠戎使完豐府院君李曙代其任。乃廣召諸名僧覺性,應聖等。各摠其徒。分地賦功。而牧使文希聖,別將李一元,裨將李光春等寔監董之。
※출처: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번역문
남한성기(南漢城記)
수상(首相) 이원익(李元翼, 1547~1634)과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 1557~1633)가 건의하여 이 산성의 수리를 요청하였다. 애초에 청원군(靑原君) 심기원(沈器遠, ?~1644)에게 명하여 그 일을 관장하게 하였다. (심기원은) 놀고 먹는 무리(游手)를 역(役)으로 요청하고, 도첩(度牒)으로 승도를 거느리려 하였는데, 얼마 뒤 상(喪)을 당해 (관직을) 떠났다. 총융사(摠戎使) 완풍부원군(完豐府院君) 이서(李曙)가 그 임무를 대신하였는데, 바로 명승(名僧) 각성(覺性)과 응성(應聖) 등을 널리 소집하여 각자 자신의 승도들을 총섭(摠攝)하게 하고, 지역별로 나누어 공사를 부담하게 하였다. 그리고 목사(牧使) 문희성(文希聖), 별장(別將) 이일원(李一元), 비장(裨將) 이광춘(李光春) 등이 실제로 이들을 감독하였다.
※번역: 불교학술원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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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려실기술-병자호란과 남한출성이긍익(李肯翊, 1736~1806)의 『연려실기술』 원집 제25권,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 편 1월 7일자에 수록되어 있다. 본말체는 사건의 전개과정을 중심으로 역사를 편찬한 것이다.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은 1637년 1월 병자호란 당시 승장(僧將)으로서 항마군(降魔軍) 1천 명을 이끌고 북상하였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은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이 저술한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사찬(私撰) 사서(史書)이다. 『연려실기술』은 원집(原集)과 별집(別集)으로 나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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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통사-병자호란과 각성의 항마군 조직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상편, 조선 인조 14년 조에 수록되어 있다. 1636년 12월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 1637년 1월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은 승장(僧將)으로서 항마군(降魔軍) 1천 명을 이끌고 북상하였다. 원문 (丙子)十四年(明崇禎九年) 清。舉兵來。長驅直入京城。王播遷于南漢山城。時沙門覺性。在智異山華嚴寺。聞變。即戎衣而起。檄召南僧。來赴者數千。號降魔軍。相率而北。中道。聞敵退而還。(見碑文) ※출처: ‘CBETA On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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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통사-승려들을 이끌고 남한산성을 축조한 각성대사의 공로를 왕이 치하하다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편, 동공남한성사효로(董功南漢性師效勞) 조에 수록되어 있다. 승려들을 이끌고 남한산성을 축조한 각성대사의 공로에 대하여 왕이 치하한 내용이다.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은 1624년 팔도도총섭에 임명되어 승군을 이끌고 남한산성 축조에 참여하였고, 1650년(효종 1) 화엄사를 ‘선종대가람’으로 지정할 때 함께 ‘겸팔도도총섭(兼八道都摠攝)’의 예조문첩을 받았다. 팔도도총섭은 임진왜란 때 조직된 팔도의 승군을 지휘하는 직책이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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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통사-남한산성을 지키는 치영을 유지하는 역할을 각 사찰이 맡았다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편, 남한산사수성치영(南漢山寺守城緇營) 조에 수록되어 있다. 남한산성을 지키는 치영을 유지하는 역할을 각 사찰이 맡았다는 내용이다. 치영은 승군(僧軍)의 군영(軍營)이며, 임진왜란 때 조직된 팔도의 승군은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 지휘를 하였다.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은 1624년 팔도도총섭에 임명되어 승군을 이끌고 남한산성 축조에 참여하였다. 계파 성능(桂坡聖能, 생몰년 미상) 스님은 1702년 화엄사 장륙전을 중건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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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교지(敎旨)는 조선시대 국왕의 명령이나 신하에게 관직·시호·면역·특권 등을 하사는 문서이다. 그 양식은 첫 행에 ‘교지’로 시작하여 ‘~자(者)’로 내용을 마무리하고, 마지막에 ‘연월일’을 써넣은 것이다. 고려에서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라 쓰다가 1735년(세종 17) 9월 교지로 변경되었다. 화엄사에 내려진 교지 문서는 1626년(천계 6) 11월에 인조(仁祖, 재위 1623~1649)가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에게 하사한 것이다. 그 내용은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승도를 이끌고 축성한 공이... -
사보은천교국일도대선사행장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은 법명이 각성(覺性), 호가 벽암(碧巖), 속성이 김씨(金氏)이다. 각성 스님의 행장은 백곡 처능(白谷處能, 1617~1680) 스님이 찬술하였으며, 『대각등계집(大覺登階集)』에 수록되어 있다. 스님의 몰년과 구족계를 받은 연도에 대해서는 행장과 화엄사 금강문 앞에 있는 「국일도대선사비명(國一都大禪師碑銘)」(1663)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고, 구족계를 받은 시점이 다르므로 법랍에도 차이가 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의 〈표1〉 참조. 〈표1〉 벽암 각성의 행장과 비명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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