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은 법명이 각성(覺性), 호가 벽암(碧巖), 속성이 김씨(金氏)이다. 스님의 일생은 화엄사에 건립된 국일도대선사비명(國一都大禪師碑銘)과 백곡 처능(白谷處能, 1617~1680) 스님의 『대각등계집(大覺登階集)』에 기재된 행장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각성 스님은 1575년(선조 8) 12월 정해(23일)에 출생하고, 10세에 설묵(雪默) 스님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15세에 보정(寶晶) 스님께 구족계를 받았다.
스님은 임진왜란 때 해전(海戰)에 참전하였고, 병자호란 때에는 항마군(降魔軍)을 조직하여 북상하는 등 승군(僧軍)으로 활약하였다. 아울러 1624년 남한산성 축조시에도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으로서 승군을 이끌었다. 각성 스님은 이 공적으로 ‘보은천교원조국일도대선사(報恩闡敎圓照國一都大禪師)’의 칭호를 하사받았다.
스님은 사찰의 중수 사업에도 활발하게 활동하여 1632년 구례 화엄사(華嚴寺)를, 1640년 쌍계사를 중수하였다. 각성 스님은 1646년 속리산으로 들어가 고한 희언(孤閑熙彦) 스님과 생활하다가 희언 스님이 입적한 뒤 화엄사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고, 1660년 1월 세수 86세로 입적하였다. 저서로 『도중결의(圖中決疑)』, 『간화결의(看話決疑)』, 『석문상의초(釋門喪儀抄)』가 있다.
국일도대선사비가 화엄사 금강문 앞에, 벽암당 승탑이 화엄사 입구 승탑군에 있는 것 이외에도 화엄사에는 국일도대선사비 목판, 스님에게 내려진 관문서 「겸팔도도총섭첩(兼八道都摠攝帖)」(1650) 및 「교지(敎旨)」(1626), 스님의 가사(袈裟)와 진영이 전해지고 있다. 스님의 진영은 가야산 국일암에도 있는데, 호은 유기(好隱有璣, 1707~1785) 스님의 『호은집(好隱集)』에 국일암에 봉안된 벽암 각성 스님의 진영을 보고 지은 영찬과 영감기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 만해기념관에는 스님이 하사받은 교지가 함께 기록되어 있는 진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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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악집-희안 상인의 운을 써서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수초 상인에게 주다「희안 상인의 운을 써서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수초 상인에게 주다」 시는 칠언율시로 이안눌(李安訥, 1571~1637)의 『동악집(東岳集)』 권23, 습유록 하편에 수록되어 있다. 습유록 하편은 1615년부터 찬술된 것이다. 수초 상인은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의 제자이다. ‘방장산은 지금 각성의 행적을 따르네(方丈今從覺性行)’라는 구절에서 각성 스님의 행적을 대략이나마 알 수 있다. 원문 用希安上人韻 贈別守初上人入智異山 希安曾說守初名 方丈今從覺性行 如爾詩僧那易得 使余秋日不勝情 三神洞僻霜楓晩 七佛庵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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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당집-속리산「속리산」은 오언율시로 김택영(金澤榮, 1850~1927)의 『소호당집(韶濩堂集)』 권2, 무인고 편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1878년에 찬술되었다. 시의 내용은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과 법주사에 대해 읊은 것이다. 각성 스님이 속리산 법주사에 주석했음은 신유(申濡, 1610~1665)의 「처능 상인에게 주다. 아울러 벽암 장로에게 부칩니다」 오언율시에서도 확인된다. 원문 俗離山 入山楓正熟 蘭若午時鐘 悄悄僧驚客 皚皚雪變峯 禪林曾伏虎 【원주: 碧岩大師住此山嘗夜歸有虎隨行弟子甚怖師笑曰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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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집-각성 상인의 시에 차운하다「각성 상인의 시에 차운하다」는 칠언절구로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어우집(於于集)』 권2, 두류록(頭流錄) 편에 수록되어 있다. 『어우집 후집』 권6, 「두류산을 유람한 기록(遊頭流山錄)」에 따르면, 유몽인은 1611년 두류산을 유람하였는데, 4월 5일 태승암(太乘菴)에서 온 각성(覺性) 스님을 의신사(義神寺)에서 만났다고 한다. 일기에서 각성 스님이 시와 서체로 명성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문 次覺性上人韻 玉笛聲殘千尺壁 小堂金碧亂峯前 春風一杖白雲衲 手把淸詩來洞天 ※출처: 단국대학교 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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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집-못가에서 차운하여 각성 상인에게 주다「못가에서 차운하여 각성 상인에게 주다」는 칠언절구로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어우집(於于集)』 권2, 두류록(頭流錄) 편에 수록되어 있다. 유몽인은 1611년 두류산을 유람하였다. 원문 潭上次贈性上人 君住何方雲複複 君心何有水空空 他年洞裏鹿車至 知我尋君雲水中 ※출처: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장유승 최예심 (공역), 2018 ※출처: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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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당집-각성 상인이 영은사에 머물렀는데 비에 막혀 만나지 못하니, 부쳐 보냅니다「각성 상인이 영은사에 머물렀는데 비에 막혀 만나지 못하니, 부쳐 보냅니다」는 칠언절구 2수로 신유(申濡, 1610~1665)의 『죽당집(竹堂集)』 권4, 금강록(錦江錄) 편에 수록되어 있다. 시에서는 ‘멀리 있는 산 중턱(翠微)’, ‘중천(中天, 半霄)’ 등의 거리적 표현을 담아 각성 스님을 만나고자 하였으나 날씨로 인해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금강록은 신유가 1647년 8월에서 1648년 10월까지 공주 목사(公州牧使)로 재직할 당시에 지은 것이다. 원공(遠公)은 동진(東晉) 시기의 혜원(慧遠,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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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당집-처능 상인에게 주다. 아울러 벽암 장로에게 부칩니다「처능 상인에게 주다. 아울러 벽암 장로에게 부칩니다」는 오언율시로 신유(申濡, 1610~1665)의 『죽당집(竹堂集)』 권6, 연대록(燕臺錄) 편에 수록되어 있다. 연대록은 1652년 6월 4일 사은부사(謝恩副使)에 발탁되고부터 7월 1일 연경에서 서울로 돌아와 머물던 약 2개월간의 기록이다. 당시에 각성 스님은 속리산에 머물고 있었다. 원문 贈處能上人 兼寄碧巖長老 【원주: 處僧經師覺性之高弟 兼工草隷善賦詩 聞余有遠役 來別于錦江 覺師時住俗離 舊爲余談經於公山東軒】 覺師久不見 雲卧定難尋 客裡逢衣鉢 猶聞住故林 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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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곡집-자발의 각성 상인에게 주다 시에 차운하다「자발의 〈각성 상인에게 주다〉 시에 차운하다」는 오언율시로 조위한(趙緯韓, 1567~1649)의 『현곡집(玄谷集)』 권3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1613년 이후 지리산 일대를 유람하며 지은 시이다. 자발(子發) 양형우(梁享遇, 1570~1623)는 자가 자발, 호가 동애(東崖)이다. 그의 형 양경우(梁慶遇, 1568~1638)도 〈각성 상인에게 주다〉 시를 차운하였다. 원문 次子發韻 贈覺性上人 大道本無象 眞禪安有門 羨渠心似月 憐我跡如雲 握手慙知晩 談經惜日昏 相逢卽相別 回首更殷勤 ※출처: ‘한국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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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집-각성대사가 나에게 이별할 때 증시를 요구하였다. 그래서 앞운을 거듭하여 시를 지었는데, 첫 구에는 올 때 마상에서 본 것을 아울러 적는다「각성대사가 나에게 이별할 때 증시를 요구하였다. 그래서 앞운을 거듭하여 시를 지었는데, 첫 구에는 올 때 마상에서 본 것을 아울러 적는다」는 칠언율시로 이소한(李昭漢, 1598~1645)의 『현주집(玄洲集)』 권2, 진양록(晉陽錄) 편에 수록되어 있다. 진양록은 1639년 이소한이 진주 목사(晉州牧使)로 재임할 당시에 찬술한 것이다. 첫 구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유람하며 말 위에서 본 두류산(지리산)의 빼어난 경치를 찬미하였다. 원문 覺性大師要我別有贈 仍疊前韻 首句 幷紀來時馬上所見 牽帥兒曹作勝遊 天邊秀色認頭流 淸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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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집-화엄사 장육전 중수 시「화엄사 장육전 중수 시」는 칠언율시로 홍세태(洪世泰, 1653~1725)의 『유하집(柳下集)』 권3, 시(詩) 편과 『속수구례지』 하, 제영 편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계파 성능(桂坡聖能, 생몰년 미상) 스님이 장육전을 중수할 때 홍세태에게 시를 부탁한 것이다. 『유하집(柳下集)』에 수록된 시의 주석에서는 도선 국사(道詵國師, 827∼898)를 연기조사라 한 점, 이에 따라 화엄사 창건주를 도선 국사로 파악한 점이 특징이다. 장육전 중건 상량문은 1701년(숙종 27) 9월에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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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일기-1686년 8월 17일 일기1686년 8월 17일 일기는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의 『산중일기(山中日記)』 권상에 수록되어 있다. 이 날 정시한은 하동 쌍계사에서 머물렀고, 날씨는 아침에 비가 조금 내리다 그쳤다. 그는 쌍계사를 둘러보고 그 연혁과 가람 배치, 훼손된 비석 등에 대해 기술하였는데, 말미에서 풍수지리를 모르는 평범한 눈으로 보기에는 언뜻 합당하지 않은 점이 있는 듯 하지만, 내가 어찌 이를 밝게 다 알겠느냐며 소회를 덧붙였다. 청룡변은 풍수지리학에서 왼쪽을 가리킨다. 벽암 각성(碧巖 覺性, 1575~1660) 스님은 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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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허재집-유두류산기「유두류산기(遊頭流山記)」는 김지백(金之白, 1623~1670)의 『담허재집(澹虛齋集)』 2책, 권5에 수록된 기행 일기이다. 그는 자가 자성(子成), 호가 담허재(澹虛齋), 이명(異名)이 김지진(金之振), 본관이 부안이다. 1648년(인조 26) 식년시(式年試)에 합격하였으나 출사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였다. 저서로 『담허재집』이 있다. 『담허재집』은 6권 3책으로 시, 소(疎), 서(書), 기(記), 서(序), 축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유두류산기」는 1655년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김지백이 서국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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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집-두류산 기행록「두류산 기행록」은 양경우(梁慶遇, 1568~1638)의 『제호집(霽湖集)』 권11에 수록된 기행 일기이다. 그는 자가 자점(子漸), 호가 제호(霽湖)·점역재(點易齋)·요정(寥汀)·태암(泰巖), 본관이 남원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고, 군량미를 모아 공급하였다. 1597년 문과 별시에 급제하였다. 시문을 잘 지어 사신 접대에 자주 차출되었다. 저서로 『제호집』이 있다. 『제호집』은 원집 11권, 속집 2권으로 시, 시화(詩話), 잡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일기는 그가 장성현감으로 재직할 때 1618년 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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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집-지리산백련대기지리산 백련대기(智異山白蓮臺記)는 『동계집(東溪集)』에 수록된 화엄사 관련 산문이다. 산문은 화엄사의 지리적 위치, 창건 시기, 임진왜란 이후 벽암 각성의 중창에 대한 내용을 기술하였다. 고려시대 도선(道詵) 국사가 화엄사를 창건하였다고 파악한 점이 특징적이다. 『동계집(東溪集)』은 동계 경일(東溪敬一, 1636~1695) 스님의 문집이다. 그는 속성이 정씨(鄭氏)이고, 지리산의 신해(信海) 스님께 의탁한 뒤 유점사에 있던 벽암(碧巖) 스님께 가르침을 받았다. 『동계집』은 4권 1책이고, 시(詩)와 서(序)·기(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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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전당집-수능상인에게 주는 서수능 상인에게 주는 서(贈守能上人序)는 『낙전당집(樂全堂集)』 권5에 수록되어 있다. 서문을 통해 신익성이 화엄사를 중창한 벽암 각성스님, 『호남도 구례현 지리산 대화엄사 사적(湖南道求禮縣智異山大華嚴寺事蹟)』을 지은 중관 해안(中觀海眼, 1567~?)스님과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음이 확인된다. 원문 贈守能上人序 山人守能訪余於淮上,一衲一錫,動止不凡,問能文字乎,曰不能。已進一部書,請余勒題,題罷願姑置之,遂忽辭歸。余發其書見之,摭華嚴要語爲一書,名之以《禮懺》。其規矩繩墨,縝密圓轉,非老於結撰者,不能爲也。且觀其所爲緖餘者,把弄三... -
낙전당집-의현에게 주는 서의현에게 주는 서(贈義賢序)는 『낙전당집(樂全堂集)』 권5에 수록되어 있다. 글 속에서 서술된 당시 불교계의 법맥, 출가자와 유자의 교유에 대한 견해,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스님에 대한 칭송 등을 보면, 신익성은 불교에 상당히 조예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 의현스님은 벽암 대사의 상족제자(上足弟子)이다. 원문 贈義賢序 大雄氏之敎,遍於天下,殆與儒道行,而其言似是而非,其行似高而卑。似是故亂眞,似高故自尊,自尊故驕而無上。亂眞故混而難辨,驟而觀之,令人可喜,徐而究之,卒無實也。下士然之,中士疑之,上士闢之。世無上士,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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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상의초『석문상의초(釋門喪儀抄)』는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이 화엄사에서 1636년에 찬술한 승가(僧家)의 상례집(喪禮集)이다. 서문에서는 우리나라에 『석씨상의(釋氏喪儀)』와 같은 책이 없어 『선원청규(禪院淸規)』, 『오삼집(五杉集)』, 『석씨요람(釋氏要覽)』의 요점을 간추려 조선의 실정에 맞게 재편하여 초학자들을 위해 남긴다고 찬술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구성은 상・하 두편으로 상편에서는 승가의 오복제(五服制)를 밝히고, 이어서 장지(葬地)에 이르는 행렬 절차와 기물 배치, 제전(祭奠) 절차 등을 소개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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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유고-취미당집 서문『취미당집』은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의 제자인 취미 수초(翠微守初, 1590~1668) 스님의 문집이다. 서문은 이기발(李起浡, 1602~1662)이 작성하였으며, 그의 문집 『서귀유고(西歸遺藁)』 권6에 수록되어 있다. 「취미당집 서문」에는 각성 스님의 행적이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병자호란에 참전한 일과 그의 의발을 수초 스님에게 전한 일 등이 보인다. 원문 翠微堂集序 聖人者必欲贒吾人。凡可力於賢者。靡不用極。至於鄭衛詩。其陋甚矣。聖人猶此不刪。此非誨人以淫。蓋欲其有所懲創以就賢也。則於此有文字。之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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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대전-이희조의 기록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송자대전(宋子大全)』 부록 권14, 어록(語錄) 편에 수록된 글과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의 대화를 우암의 문인 이희조(李喜朝, 1655~1724)가 이를 기록한 것이다. 당나라 때 한유(韓愈, 768~824)는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재직할 당시 태전(太顚) 스님과 친하게 지냈는데, 작별하면서 자신의 의복을 스님에게 주었다. 송시열은 이 일화를 인용해 이후 승가에서 한유가 태전 스님의 도통을 이었다는 인식을 지적하는 한편, 유학자와 승려의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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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당탑벽암당탑은 2단으로 조성된 승탑원의 북쪽 구역에 윗줄에 위치하는 벽암 각성(碧岩覺性, 1575~1660)대사의 사리탑이다. 벽암 각성대사는 1630년(인조 8)부터 1636년(인조 14)까지 화엄사 중창 불사를 주도한 인물로 만년을 화엄사에서 보내다가 1660년(현종 1) 1월 법랍 72세, 세수 86세로 입적하였데, 다비 후 백색의 사리 3립(粒)이 나왔다고 한다. 벽암당탑은 실제 범종 모양과 매우 흡사한 석종형 승탑(石鍾形僧塔)으로 전체 높이 198㎝, 탑신 높이 131㎝, 상륜 높이 26㎝, 기단부 폭 130㎝, ... -
벽암 각성 비벽암 국일도 대선사 비명은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의 입적 3년 후인 1663년(현종 4) 계묘년 8월에 건립된 벽암 각성의 비로 화엄사 금강문과 성보박물관 앞에 있다. 스님은 법명이 각성(覺性), 법호가 벽암(碧巖), 속성이 김씨(金氏), 충북 보은 사람이다. 비신의 전면에는 전액(篆額), 제명(題名)과 서(序)가 적혀 있고, 후면에는 건립일, 제작에 참여한 재가자와 문도의 명단이 적혀 있다. 전액은 ‘국일도대선사비명(國一都大禪師碑銘)’이고, 예문관직제학 조계원(趙啟遠)이 썼으며, 비신 상단에 가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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