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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휴 선수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15) 스님은 법명이 선수, 법호가 부휴, 속성이 김씨(金氏)이다. 석불에 서원한 인연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고기나 생선 등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20세에 지리산에 들어가 신명(信明) 스님의 제자가 되었고, 이후 부용(芙蓉) 선사의 휘하에서 수도하였다. 왕희지체를 익혀 서법으로 유명하였으며, 사명당(四溟堂) 송운 유정(松雲惟政, 1544~1610) 스님과 함께 ‘이난(二難)’으로 불렸다. 선수 스님은 지리산 일대에서 제자 양성에 힘썼는데, 이는 1611년 유몽인(柳夢寅)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지은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에 ‘제자를 거느리고 불경을 공부하여 사방의 승려들이 많이 모여든다.’는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1615년 7월 제자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스님에게 법을 전하고, 11월 1일 세수 72세, 법랍 57세로 입적하였다. 저서로 『부휴당집(浮休堂集)』이 있다. 스님의 행적은 금명 보정(錦溟寶鼎, 1861~1930)스님의 『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 「조계종사부휴등계존자전(曹溪宗師浮休登階尊者傳)」에 자세히 드러나 있다. 선수스님과 관련된 자료에 스님이 화엄사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스님이 지리산 일대에서 제자를 양성한 일과 제자 벽암 각성스님이 화엄사 중창주임을 고려하면, 선수스님이 화엄사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화엄사에서 매년 3월 3일인 삼짇날마다 역대 조사(祖師)에게 꽃을 갖추고 헌다(獻茶)하는 의식을 위해 편찬한 『조사례(祖師禮)』에서 스님에 대하여 ‘부휴 대사는 하늘이 내린 총명함으로 진공에 합치하여 집안을 구체화하니 세상 대중이 광명을 입었네(浮休大士 聰明天縱 道洽眞空 具體作家 海內蒙光).’라고 예를 올린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일 것이다. 화엄사 영전에 봉안된 선수스님 진영의 제목(影題)은 ‘전등홍법 부휴당 선수대선사(傳燈弘法浮休堂善修大禪師)’이다. 화엄사 성보박물관 수장고에는 『부휴당대사집』 목판과 1622년(광해군 14) 3월 예조에서 발행한 법호 추증 문서가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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