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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 국사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는 자가 옥룡자(玉龍子), 호가 연기(烟起), 속성은 김씨, 영암 사람이다. 혹은 최씨라고도 하고, 신라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의 서얼이었다고도 한다.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華嚴寺)에서 수학해 대장경에 통달하였다. 846년 동리산(桐裏山) 개산조 혜철(惠徹, 785~861) 선사에게서 ‘말 없는 말과 법 없는 법(無說說無法法)’의 법문을 듣고 미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850년 23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이후 여러 사찰을 다니며 불법을 구하였고, 전남 광양 백계산 옥룡사(玉龍寺)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신라 말 왕실에서도 도선의 명승을 듣고는 헌강왕이 법문을 청하였다. 윤종균(尹鍾均, 1861~1941)의 『유당시집(酉堂詩集)』에 수록된 화엄사 십해(十解) 중 네 번째 시 「도선이 지리산으로 돌아오다(道詵還山)」에서는 15세에 대장경에 능통하여 헌강왕이 금중에 머물게 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방장산(즉 지리산)으로 돌아갔다는 도선국사의 행적을 읊었다. 1943년(소화 18) 1월에 건립된 각황전중수기념비(覺皇殿重修紀念碑)에 의하면, 헌강왕 때 도선국사가 화엄사에 주석하며 300여 동우(棟宇)를 증축했다고 한다. 도선국사가 세수 72세에 입적하자 신라 효공왕(孝恭王, 재위 897~912)은 시호 ‘요공선사(了空禪師)’를 하사하고, 제자들은 옥룡사에 세운 탑에 ‘증성혜등(證聖慧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화엄사 영전에 봉안된 도선국사 진영의 제목(影題) ‘호국왕사 도선 요공선사(護國王師道詵了空禪師)’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려 숙종(재위 1095~1105) 때에는 ‘대선사(大禪師)’로 추증, ‘왕사(王師)’의 지위가 더해졌고, 인종(재위 1122~1146) 때에는 ‘선각국사(先覺國師)’로 추봉되었다. 1173년 전라남도 광양군 옥룡면 추산리 옥룡사 터에 선각국사비가 건립되었다. 저서로 『도선비기(道詵秘記)』·『송악명당기(松岳明堂記)』·『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가 있다. 도선은 풍수지리(감여술), 예언으로도 유명하다. 구례 일대의 사도촌에서는 사도리 마을 명칭의 유래와 관련된 도선국사의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즉, 화엄사에 머물던 도선국사는 길에서 어떤 도사의 말을 듣고 섬진강가의 모래밭에 나가보았는데, 그곳에서 어린아이 모습을 한 이에게 우리나라의 산수 비결을 전수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조선불교통사』에서 옥룡자(玉龍子, 즉 도선국사)의 일화로 수록되었다. 기록에 따라 도선국사가 당으로 유학해 일행(一行)에게서 풍수학을 배워왔다고 하는데, 이는 『조선불교통사』 「옥룡자는 감여술에 능해 두루 지맥을 살펴 절과 탑을 세웠다」편에서 이능화도 밝혔듯이 ‘도선국사본비(道詵國師本碑)’에 당 유학 내용이 없고, 일행과 활동 연대도 맞지 않으므로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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