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화엄사 신라불교조 연기대사갈은 김택영(金澤榮, 1850~1927)이 찬술한 것으로 『소호당집(韶濩堂集)』 권5에 수록되어 있다. 1924년 정월 화엄사 만우 병헌(曼宇秉憲, 1891~1969) 스님이 화엄사 창건주이자 신라불교의 조사이신 연기조사를 기리기 위해 비를 건립하려 했음이 확인된다.
원문
智異山華嚴寺。新羅佛敎祖緣起大師碣。甲子
韓亡之十四年正月。智異山華嚴寺住持釋秉憲。自號滄海居士。俗姓鄭氏者。走一錄言曰。吾先師新羅緣起公英慧天縱。生好如來之道。因其書獨覺妙旨。撰華嚴經起信疏一篇。以授其徒。徒之歸者三千人。眞興王五年甲子。勑國中興寺院。公聞之。帥其徒營造本寺。智異山之有寺。自此始焉。其後元曉,義相,道詵,正行,朗圓,賢俊。及高麗之義天,洪慶,定仁,祖衡。韓之善修,潤訥,覺性諸名流。或以居住。或以遊歷。或以善緣。或以修役。相繼至于本寺。紹述宗風。迭起讚歎。公之道於是乎益尊。而今年適當創寺之期。故憲等有感于中。購一美石。欲刻右蹟。請子文之。余甞讀金文烈公三國史。見新羅訥祗王時。有高句麗僧墨胡子者來客于一善郡。鳴其學。於是新羅人始知慕佛法。至眞興王時。有覺德者入唐求法。屆王之十年。與唐使偕還。以爲覺德當爲新羅佛敎之初祖矣。今以憲之所錄觀之。緣起公之創寺。在於覺性東還之前五年。則其聞法之先於覺德者。又當爲幾年。然則緣公豈惟爲本寺開山之初祖也。實爲新羅佛敎之初祖。而千餘年之間。未有說及乎此者。以其未列於文烈之史也。何其慨矣。然天下之所謂緣者。或伏於冥冥之難測。或現於昭昭之正感。冥冥難測者。天之未定。而昭昭正感者。天之定也。夫以緣公之苦行絶識。而前日之未盡發露者。豈非天之未定乎。今日之出憲手而入吾目者。豈非天之定乎。不惟是也。余近修高麗史。倣北魏史例。補撰釋志。方且博採三國時名釋。而一朝之間。忽不勞而得緣公。則竊自不勝大喜。急急濡筆以書于志。是尤非緣之昭昭者乎。佛氏之書。多說因緣。余故爲此說。使憲參以觀之。仍繫以頌。其詞曰。
千江之水千明月。仰而四顧月只一。云誰此月抱懷中。新羅慧者緣起公。聞公昔講華嚴經。三千大衆涕泣聽。如飮河水各充量。下屆曉詵派流放。雖然公亦何所講。是唇是吻都不動。經亦只是一白紙。視睫視之不見字。六通一時發霹靂。天上天下隻影立。是以精神動君王。九天勑下托佛場。金砂玉流南岳南。始有精舍出穹林。旃檀之香長不灺。朝鐘暮鼔開聾啞。史家掛漏亦何傷。種瓜得瓜終允臧。堂堂新羅佛敎祖。天王峰共尊萬古。
『韶濩堂集』 借樹亭雜收卷二, 甲子文錄, 智異山華嚴寺。新羅佛敎祖緣起大師碣。【원주: 他本以釋秉憲爲住持者悞也。】
※출처: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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