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층암 중수기(九層菴重修記)는 『매천집(梅泉集)』 권6에 수록되어 있다. 『매천집(梅泉集)』 권6은 서(書), 서(序), 기(記), 발(跋), 논(論), 설(說)로 구성되어 있다. 구층암 중수기는 1899년(광무3, 기해년) 7월 보름에 작성된 것이다. 중수기의 내용은 황현이 지리산에 있는 절을 왕래하며 독서할 적에 구층암 주지 전강 영신(田岡永信, 1898~1975) 스님을 만난 일, 구층암의 기와와 서까래를 일신한 일 등 구층암에서 머물며 느낀 개인적인 감상과 불교에 대한 유학자의 소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문
九層菴重修記
外儒家以爲敎者。釋氏最後出。而其相抗也殆有角立之勢。至六朝隋唐之君。往往稱制臨决。等其品第以尊奉之。則其塔廟鈴鐸香火之盛。雖靡前史所載。可懸想以覆也。及程朱氏作。斯道大明。人知吾儒以外。無可以敎名者。則不待乎斥而彼自莫敢抗。盖非惟陰陽勝負之理久而後定。抑亦極盛而衰。勢使然爾。在我東則勝國之尊之也。過於隋唐六朝。本朝之斥之也。視宋儒又過之。幷卑其品以輿儓之。故其從日踽凉畏約。僅守其窟广而已。况敢張皇震耀以奔走一世之人。而能侈談性命。傑然與學士大夫頡頏乎。雖然。今之髡而緇者。鶉衣草食。直一丐耳。而其堅力廣願之所就。往往募厚貲創宏宇。能辦立談之頃。以處其衆而壽其傳。所在有人。而至若誦法孔子者。凡係俎豆弦誦之事。邈乎若忘。駸駸有馬隊講肆之歎而莫之恤。嗟乎。彼髡而丐者。寧可以外敎小之耶。余少時往來智異山中。讀書僧舍。與沙彌之曰永信者相識。日者避暑至九層菴。菴主卽信也。驩然道舊。要余信宿。因歷示其重修之蹟。而願得一言記之。余之遊斯菴。中間倐已二紀。昔者之見。已岌乎難支。則及夫重修之際。其危可知也。而乃椽桶瓦磚。鮮楚一新。又復廣延其徒。設其所謂萬日會者。而資用無缺。凡此皆可書也。而顧余竊有媿焉。余所處山中。甞欲搆環堵之宮。以待四方游學之士。如古人之義塾者。而心力蹇拙。汔未能焉。嗟乎。使自命以儒而皆如余。則吾黨之衰。詎止余憂已哉。若信者。稍可以不憂其衰矣。己亥七月之望。
※출처: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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