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진응 화상을 청하는 글(請華嚴寺震應和尙書)은 『다송문고(茶松文稿)』 권2에 수록되어 있다. 편지의 내용은 조계산 송광사에 있던 금명 보정 스님이 화엄사의 진진응 스님을 초청하여 송광사에서 법회를 열어달라고 청한 것이다.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은 당대 유명한 강백이다. 1887년 봉천암에서 응암 학성(應庵學性, 1830~1866)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896년 응암 학성 스님에게 전강(傳講)을 받아 법맥을 이었고, 1897년 화엄사에서 대교사(大敎師) 법계를 받았다. 화산학림에서도 서응 동호(瑞應東豪) 스님, 만우(曼宇) 스님 등에게 전강을 하였다. 호은율사의 계 제자로 화엄사 주지로 재임할 때 ‘호은대율사비(虎隱大律師碑)’도 세웠다. 스님은 화엄사에서 나이 68세, 법랍(法臘) 53세로 입적(入寂)하였다.
원문
請華嚴寺震應和尙書
盖禪門之行于世。靡不遠且大矣。禪師之鳴於世。亦靡不衆且曠也。而至若曹溪一曲。能稱禪門之朝宗。亦未爲不可也。覺老之龜翁。雖云宏闡。然而世降時遠。徒遺紙墨。活底祖意。便歸於談空之舌頭端。祖文忽埋於烏有之塵裡。其爲佛子所可寒心者。何但切腑哉。向者優曇子之證正錄。雖頒於域內。只是案上文具而已。誰有晨夕着眼膾炙心口耶。若此不擧。曹溪禪門。幾乎落地而無疑矣。現今域中諸刹。靑眼如電。揮盡敎門之葛藤。赤舌如鯨。呑盡華藏之波瀾。唯恨禪文之莫閱者。第無剏設而然之然也。伏唯和尙。運平等慈。不離華藏樓。而降臨曹溪。以不佞之發起。輪一末之尺書。招四山之同志。必有蟻慕雲圍之情景。當此時也。吾師登壇。竪拂談罷臨濟之宗旨。聽徒叅會。挾筴咸沐曹溪之禪波。如是以可報齴齲渡江之功。亦不負覺老綴葺之德也。唯和尙着眼一答也。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번역문
화엄사 진응(震應) 화상을 청하는 글
선문(禪門)이 세상에 행한 지가 멀고 크지 않음이 없고 선사(禪師)가 세상에 유명함이 또한 많고 밝지 않음이 없으니, 조계산 한 굽이에 이르러 선문의 조종(朝宗)이라 칭할 수 있음이 또한 불가함이 되지 않습니다.
각노(覺老)에 대해 구옹(龜翁)은 널리 퍼뜨렸다 하더라도 세대가 지나고 시간이 멀어지니 그저 종이와 묵만 남아서, 살아 있는 조사의 뜻이 허공을 말하는 혀끝으로 귀결될 뿐입니다. 조사의 글이 오유(烏有, 없음)의 먼지 속으로 묻히게 되니 불자(佛子)로서 한심하여 어찌 그저 애만 끊겠습니까. 지난번 우담자(優曇子)가 『선문증정록(禪門證正錄)』을 지역에 반포했으나 다만 책상 위 문구(文具)일 뿐입니다. 조석으로 눈여겨보고 마음과 입으로 회자할 게 무엇이 있습니까. 이것을 거행하지 않는다면 조계 선문은 땅에 떨어질 것임이 의심할 바 없습니다. 현재 지역 내 사찰들의 푸른 눈은 번개 같아 교문(敎門)의 갈등을 모두 쓸어버리고, 붉은 혀는 고래 같아 화장(華藏)의 파란을 모두 삼켜버립니다. 오직 안타까운 것은 선문에 볼 만한 게 없으니 다만 창설(剏設)이 없어 그렇고 그런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화상께서 평등한 자비를 운용하시어 화장루(華藏樓)를 떠나지 마시고 조계산에 강림하소서. 제(不佞)가 발기하여 일말(一末)의 편지를 보내 사방의 동지들을 부르니 필경 개미처럼 사모하여 구름처럼 모여드는 정경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를 당하여 우리 대사께서 단에 오르시어 불자를 세워 들고 임제종의 본지를 설파하면, 참석하여 듣는 무리들이 책을 들고 조계선의 물살에 함께 목욕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언우(齴齲)가 강을 건너온 공덕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니 또한 각노(覺老)가 편집한 공덕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화상께서는 눈여겨보시고 답변해주십시오.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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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응 혜찬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은 법호가 진응, 법명이 혜찬, 속성이 진씨(陳氏)이다. 15세에 화엄사로 출가하였다. 이후 화엄사, 선암사 등지에서 경론을 수학하다가 24세에 응암 치영(應庵致永) 스님의 법맥을 이었다. 스님은 1910년 박한영(朴漢永)·한용운(韓龍雲) 등과 함께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 종정(宗正) 회광(晦光)의 일본 조동종(曹洞宗) 연합 맹약 체결에 반대해 이를 저지하였다. 1913년 2월 쌍계사에서 호은 문성(虎隱文性) 스님에게 구족계와 대승계를 받았다. 이를 인연으로 진응 스님은 화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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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응종사탑진응종사탑은 2단으로 조성된 승탑원의 북쪽 구역 아랫줄에 위치한다. 탑의 주인공인 진응 종사는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1)스님이다. 스님은 1873년 12월 24일 출생하고, 1941년 법랍 54세, 세수 69세로 입적하셨다. 진응종사탑은 전체 높이 115㎝, 탑신 높이 94㎝, 상륜 높이 14㎝, 기단 폭 75㎝, 탑신 폭 70㎝의 석종형 승탑(石鍾形僧塔)이다. 같은 승탑원에 있는 1660년경 조성된 벽암각성탑 계열을 잇는 종 모양에 충실한 탑이다. 탑은 둥근 기단에 종 모양 탑신과 연화문이 새겨진 둥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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