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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송문고-화엄사 원화 함장께 올리는 글

화엄사 원화 함장께 올리는 글(上大華嚴寺圓華凾丈文)은 『다송문고(茶松文稿)』 권2에 수록되어 있다. 글은 1887년 원화 덕주(圓華德柱, 1839~1893) 스님께 올린 글로, 원화 덕주 스님의 법맥과 행적, 저자의 발원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화 덕주 스님은 임제종 36세손으로 화엄사에서 1866년 건당하였다.
원문
上大華嚴寺圓華凾丈文(丁亥春) 夫諸佛列祖之傳禪傳敎。若義天之慈雲法雨。菩薩群生之得髓得皮。如福地之種瓜耕稻。盡開方便門而逗機。悉從眞如海而流出。唯我大宗匠。德雲潤身。法雨沃心。仰觀宗脉之源源。浮休碧嵓爲遠世祖。俯考法波之滔滔。影海楓嵓爲近世師。皆是當代龍象。叔世樞機。十載經營。爲法亡躬。咀嚼優曇之花。半世云爲。濟衆爲業。呑吐菡溟之海。出山并海。幾見福城之兒。拔草櫛風。多聞羅刹之說。心花露結。行葉風揚。所以之南之北。自擧結社之讓。自西自東。每住法施之位。思唯諸佛大願。本乎利他。奈若今日經綸。只求自利。於是建法幢於般若峰下。以根本智爲體。揭經牓於華嚴海中。以萬行華爲用。卽用之體。旣有天地之徵祥。卽體之用。那無海會之放光。三世佛作證明。十方衆爲主伴。卽佛之伴衆。其機則無多無少。卽衆之證佛。其法則不空不有。然則華嚴海中。常說徧說。雖不說而說。堪忍界裡。音聞聲聞。唯無聞而聞。開廣長之舌相。闢無盡之法藏。聲聞八垓。嘉風益熾。名高五岳。令譽尤多。猶如羊藏丘垤。難防蠅蟻之鼓動。虎隱平原。誰禁烏雀之喧噪。飮蛇者瓦解。狐疑者冰析。禪之傳。敎之傳。何專美於如來三傳之處。髓也得。皮也得。猶端的於惠可三拜之風。嗚呼。山何蘊玉以前閠。水亦藏珠然後長。方丈榮光。從此大。華嚴佳號。自今揚。唯凾丈之風。山高水長。余唯曹溪殘流。松林病葉。聞高風而叅末。仰令譽而禮足。針芥之緣孰大焉。說其未曾說。淸凉之謂五地聖人。起世俗心聞所未嘗聞。道安之謂他方殊俗。無不通之之言。卽驗於此矣。所謂逐機漸說方便妙門。有緣住。離緣去。不勝法恩之重。槩書臨行之感。願我此身。能發菩提心。一堂善友。頓開解脫門。生生承事諸佛。在在親近善友。恒作佛事於幻花空裡。常談妙法於實際理邊。出沒爲九品之主。往來作三界之賓。抑願九族亡靈。俱生淨土。六親含識。悉超苦輪。三途四生。八難九有。咸證眞如之理。八部天龍。滿堂聖賢。共作良緣之證。至於最後身。常弘大敎。稱可佛心建大法幢。續佛慧命。然則傳禪敎得皮髓。於是乎盡之矣。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번역문
화엄사 원화(圓華) 함장(凾丈, 스승)께 올리는 글(정해년(1887) 봄) 제불(諸佛)과 조사들(列祖)께서 선(禪)을 전하고 교(敎)를 전함은 의천(義天, 이치의 하늘)의 자비 구름과 법우(法雨) 같고, 보살과 중생(群生)이 골수를 얻고 거죽을 얻음은 복된 땅에 오이를 심고 벼를 경작함과 같습니다. 모두 방편의 문을 열어 근기에 맞추고, 다 진여의 바다를 따라 흘러나오게 합니다. 우리 대종장(大宗匠)께서는 덕운(德雲)으로 몸을 윤택하게 하고 법우(法雨)로 마음을 비옥하게 하십니다. 면면히 흐르는 종맥(宗脉)을 우러러 보노라면 부휴(浮休)와 벽암(碧嵓)이 먼 조상이 되고 도도한 법의 물결을 굽어보면 영해(影海)와 풍암(楓嵓)이 근세의 스승이 되니, 모두 당대 용상(龍象)이요 말세의 중추(樞機)이십니다. 10년을 경영함에 법을 위해 몸을 잊어 우담(優曇) 꽃을 맛보았고, 반세기 언행은 중생 제도를 업으로 삼아 함명(涵溟) 바다를 삼켰습니다. 산을 나와 바다를 아우르니 복성(福城)의 아이를 보는 듯하고, 풀을 헤치고 나아가며 바람에 머리 감으니 나찰의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마음의 꽃에 이슬이 맺히고 행위의 잎이 바람에 흩날립니다. 그렇게 남으로 가고 북으로 가서 결사(結社)의 의례를 스스로 거행하고, 서쪽으로 동쪽으로 매번 법을 베푸는 지위에 머물렀습니다. 제불(諸佛)의 대원(大願)을 생각해 보면 본래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이니, 오늘날 경륜(經綸)이 다만 자신을 이롭게 하고자 함과 어찌 같겠습니까. 이에 반야봉 아래에 법당(法幢)을 세워 근본지(根本智)로 본체를 삼고, 화엄바다에 경방(經牓)을 내걸어 만행화(萬行華)를 활용으로 삼았습니다. 활용 그대로 본체이니 천지의 상징이 있고, 본체 그대로 활용이니 어찌 해회(海會)의 빛남이 없겠습니까. 삼세제불이 증명하고 시방중생이 주반(主伴, 주·객체)이 됩니다. 제불이 그대로 반(伴)인 중생이니 근기에 많고 적음이 없고, 중생이 그대로 증명하는 제불이니 법이 공(空)하지 않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화엄바다에서 항상 설하고 두루 설하니 설하지 않더라도 설함이요, 감인계(堪忍界)에서 음을 듣고 소리를 들으니 들림이 없어도 듣습니다. 장광설을 열어 무진법장(無盡法藏)을 펼치니 소리가 팔해(八垓)에 들리고, 아름다운 바람이 더욱 불어오며 명성이 오악(五岳)보다 높아 명예가 더욱 많아집니다. 양고기 숨겨놓은 언덕에 파리와 개미가 몰려드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범 있는 평원에 까마귀와 참새가 시끄러이 우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뱀을 마신 것이 산산이 흩어져 의심하는 것이 얼음처럼 녹습니다. 선(禪)을 전하고 교(敎)를 전함에 여래의 삼전(三傳)한 곳이 어찌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겠습니까, 골수를 얻고 거죽을 얻음에 혜가(惠可)가 삼배(三拜)한 풍모보다 명확합니다. 아아, 산이 어찌 옥을 품기 이전에 윤택하겠습니까. 물 또한 구슬을 품은 연후에 길어집니다. 방장산의 영광은 이로부터 커지고, 화엄사의 아름다운 칭호는 지금부터 드날릴 것입니다. 함장(凾丈, 스승)의 풍모는 산처럼 높고 물처럼 깁니다. 저는 조계의 잔류(殘流)요 솔숲의 병든 잎으로, 높은 풍모를 듣고 말단에 참여하여 아름다운 명성을 우러러 예를 올립니다. 침개(針芥)의 인연이 어찌 그리 큰가요. 일찍이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하니 청량(淸凉)의 ‘오지성인(五地聖人)으로 세속의 마음을 일으킴’이요, 일찍이 듣지 못한 것을 들으니 도안(道安)의 ‘풍속이 다른 타지에도 통하지 않음이 없다는 말’이 여기서 바로 증험이 됩니다. 이른바 근기에 따른 점설(漸說)이요 방편의 묘문(妙門)이니, 인연 있으면 머무르고 인연이 떨어지면 가는 것이지만, 막중한 법은(法恩)을 이기지 못해, 헤어지는 느낌을 대략 적습니다. 바라건대 이 몸으로 보리심을 발하여 당(堂)의 모든 선우(善友)들이 단박에 해탈문을 열어, 세세생생에 제불을 받들고 곳곳에서 선우를 친근하게 하소서. 환화(幻花)의 허공 속에서 항상 불사(佛事)를 짓고 실제 이치 옆에서 항상 묘법을 말하며, 출몰함에 구품(九品, 정토)의 주인이 되고 왕래함에 삼계(三界)의 객이 되도록 하소서. 또한 바라건대 구족(九族)의 죽은 영이 모두 정토에 태어나고, 육친(六親) 중생(含識)이 모두 고통의 윤회를 벗어나게 하소서. 삼도사생(三途四生)과 팔난구유(八難九有)에 모두 진여의 이치를 증명하고, 팔부천룡(八部天龍)과 당(堂)에 가득한 성현들이 함께 좋은 인연의 증거를 지으소서. 최후의 몸에 이르러서는 항상 큰 가르침을 넓히어 불심에 가합하다 일컫고 큰 법당(法幢)을 세워 부처의 혜명(慧命)을 이으소서. 그러한즉 선과 교를 전하고 피부와 골수를 얻음이 여기서 다될 것입니다.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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