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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송문고-원군 탱화 서문

원군 탱화 서문은 『다송문고(茶松文稿)』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원군은 북두칠성을 신격화 한 것으로, ‘칠원의(七元儀)’, ‘칠원성군’이라고도 한다. 이는 이전에 보이지 않는 산신계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 불교계의 문화 변화를 잘 보여준다 할 것이다. ‘원군 탱화’는 현재 원통전 우측에 봉안된 〈칠성도〉로 추정된다. 〈칠성도〉의 조성 시기는 1897년 2월 20일이다.
원문
元君畫幀序 伏聞統萬法明一心。釋迦氏之稱性眞理。滅千災成萬福。熾盛光之隨緣妙方。影落娑婆。應現百億之化用。形分空界。常稱七元之尊號。觀彼諸聖身。何關十善三惡之業。哀此群生界。爰興九辰七曜之名。小扣小鳴。若洪鍾之待鼓。大捨大報。似明鏡之忘疲。實三界之道師。乃四生之慈父。此華嚴寺者。大華嚴之莊嚴樓閣。小江南之鎭南名區。塔舍利高聳庭心。恒光放光之瑞色彌谷。石華嚴錯落殿壁。常說徧說之妙談浮空。洞名三神。必有漢使之通涉。山號方丈。頗見秦童之昇降。恠此幾千年雨花之寶邦。奚闕七元君繪塑之尊像。擊鼓集衆。風馳奉安之論。異口同音。草偃歸依之諾。而然拔毛成毱。必聚條縷之毫。責蚊負山。合募纖芥之力。故將化軸。廣吿檀誠。伏願財是傷命之刀。宜喜捨而延命。信唯護身之符。實銘佩而養身。七曜三台。形分於衆生心水之器。一錢五里。功錄於星君神鑑之篇。則當破軍照臨。必延顏回之命。貪狼降福。可繼伯道之孫。伏祝人在堯庭。永昌五百年之日月。春回舜殿。長淸五千里之江山。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번역문
원군(元君) 탱화 서문 엎드려 듣건대, 만법을 통괄하고 일심을 밝힘은 석가모니의 본성에 맞는 진리이고, 온갖 재앙을 멸하고 복을 이룸은 치성광(熾盛光) 여래의 인연에 따른 묘방(妙方)입니다. 그림자가 사바세계에 떨어지니 수많은 작용(化用)에 응하여 나타나고, 형체가 하늘에서 나뉘니 칠원(七元)이라는 존호를 항상 일컫습니다. 저 신성한 몸을 보건대 어찌 십선(十善) 삼악(三惡)의 업에 관계되겠습니까. 이 중생계를 슬퍼하시니 이에 구진(九辰) 칠요(七曜)의 명칭을 일으켰습니다. 작게 두드리면 작게 울리니 큰 종이 두드리길 기다림 같고, 크게 보시하여 크게 보답하니 밝은 거울이 피로를 잊은 듯합니다. 실로 삼계(三界)의 도사(導師)요 사생(四生)의 자비로운 부친입니다. 이화엄사는 대 화엄의 장엄한 누각으로 작은 강남의 진남(鎭南) 명승지입니다. 사리탑이 뜰 가운데 높이 솟아 있어 항시 펼쳐내는 상서로운 빛이 계곡에 가득하고, 화엄의 돌이 건물 벽에 뒤섞여 상설변설(常說徧說)의 오묘한 말씀이 공중에 떠 있습니다. 삼신 계곡엔 필시 한나라 사신이 왔을 테고, 방장산은 자못 진나라 아이가 오르내림을 보았을 겁니다. 괴이하게도 수천 년 동안 꽃비가 내린 이 보배 지역에 어찌 칠원군(七元君)의 존엄한 회소(繪塑)가 없습니까. 북을 두드려 군중을 모아 봉안하려는 의론을 바람처럼 내달리게 하니, 이구동성으로 귀의한다는 허락이 풀이 눕듯 합니다. 그러나 털을 뽑아 공을 만들려면 필시 털 가락들을 모아야 하고, 모기에게 산을 짊어지라고 하면 마땅히 가느다란 힘들을 모아야 합니다. 그래서 화축(化軸, 즉 권선문)을 가지고 단월(檀越)들의 정성에 널리 고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재물은 목숨을 해치는 칼이니 마땅히 희사(喜捨)하여 목숨을 늘리고, 믿음은 몸을 보호하는 부적이니 실로 새기고 지녀서 몸을 기르소서. 칠요(七曜) 삼태(三台)의 형체는 중생의 마음이 담긴 물그릇에서 나뉘고, 1전(錢) 5리(厘)의 공적이라도 성군(星君)이 살펴보는 책에 기록됩니다. 당연히 파군(破軍)이 보고 임하여 안회(顏回)의 목숨을 연장할 것이요, 탐랑(貪狼)이 복을 내려 백도(伯道)의 후손을 이을 것입니다. 엎드려 축원하오니, 요 임금의 뜰에 머물러 오백 년 일월(日月)이 길이 창성하고, 순 임금의 전각에 봄이 돌아와 5천 리 강산이 길이 맑아지소서.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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