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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송문고-화엄사 봉천암 중수기

화엄사 봉천암을 중수하는 글은 『다송문고(茶松文稿)』 권1에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먼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물이 마모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며, 부처님 도량으로서의 봉천암의 위상을 언급하고, 이어서 봉천암의 지리적 위치, 봉건암이 경영한 지 오래되어 훼손된 곳이 많으므로 중수하게 되었다는 중수 배경을 설명한 것이다. 봉천암에는 현재 도광 29년(1849) 기유년 2월(중춘(仲春))에 석잠(碩岑)스님이 쓴 해동 봉성현 지리산 화엄사 봉천암 중창기(海東鳳城縣智異山華嚴寺奉天菴重刱記) 현판이 걸려있다. 이 중창기는 금명 보정의 중수문 보다 앞서 작성된 것인데, 봉천암의 연혁을 함께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원문
華嚴寺奉天菴重修文 壞空成住。天地之常。盈虛消長。日月之理。況物於其間者。孰能無空成消長之變也哉。唯玆寺。群玉之府。三神之山。煙霞縹緲。長護一千年。花雨之法場。山水淸秀。闡揚大華嚴。事理之宗脉。上衛三殿寶宮。盡是壽君祝親之紺殿。中護三尊聖相。都爲脫俗出塵之寶邦。潺江浮槎。接河漢而漂沉。幾見漢使之留影。蓬瀛藥草。連方丈而滴翠。難禁秦童之探香。抑復俯壓雲磵。隱几可呼者。鰲背之元曉菴。却猗霞岑。擧手可指者。般若之曼殊窟。釋尊之窣屠波。覺殿之盧舍那。眞是人天福田。釋宗巨刹。就中九層之上。兜率之下。有菴曰奉天。營始旣久。成壞相尋。所以玉樓金面之帶愁。樑棟房壁之傾瘡。非衲子當含默。以騷人亦皆悽悵。玆營修葺。庸慕同志。盖風雨於蓮屋。佛可安而道可修。種桂玉於金田。邦可寧而家可樂。春種秋收。丁寧谷應山鳴。積善餘慶。分明水澄月現云爾。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번역문
화엄사 봉천암(奉天菴)을 중수(重修)하는 글 무너지고 사라지고 이루어지고 머묾은 천지의 이치이며, 차고 비고 줄고 느는 것은 일월의 이치이니, 하물며 그 사이의 물건이야 무엇이 비고 이루어지고 줄고 느는 변화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 사찰은 군옥부(群玉府)와 삼신산(三神山)처럼 안개가 아스라하여 길이 천 년을 이어갈 꽃비가 내리는 법 도량을 보호하고, 산수가 맑고 빼어나 대화엄 사리(事理)의 종맥(宗脈)을 천양합니다. 위로 삼전(三殿) 보궁(寶宮)을 호위하니 임금의 장수를 빌고 어버이를 축원하는 감전(紺殿)이며, 중간에 삼존(三尊) 성상(聖相)을 보호하니 모두 속세 티끌을 벗어난 보배 나라입니다. 잔강(潺江, 즉 섬진강)에 뗏목을 띄워 은하수(河漢)에 이르러 맴돌다 잠기니 한나라 사신의 남은 자취를 보겠고, 봉(蓬)·영(瀛)의 약초가 방장(方丈, 즉 지리산)으로 이어져 푸른빛 짙으니 진나라 아이들이 향기 찾아옴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한편 구름 낀 시내를 굽어보아 궤안에 기대 부를 수 있는 것은 오배(鰲背)의 원효암이요, 아름다운 노을 봉우리에 손으로 가리킬 수 있는 것은 반야(般若)의 만수굴(曼殊窟)입니다. 석존의 솔도파(窣屠波)와 각전(覺殿)의 노사나(盧舍那)는 진정 인천(人天)의 복전(福田)이요 불교(釋宗)의 큰 사찰입니다. 그 가운데 구층암(九層庵) 위 도솔암(兜率庵) 아래 봉천암(奉天菴)이 있는데 경영한 지 오래되어 이루고 무너짐이 이어지니, 옥루(玉樓, 즉 건물)와 금면(金面, 즉 불상)이 근심을 띠고 기둥과 방벽이 기울고 상처 나서, 납자(衲子, 즉 승려)가 침묵할 수 없고 시인들 또한 안타까워합니다. 이에 보수하고자 동지들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사찰(蓮屋)에 비바람을 막아야 부처님이 편안하고 도를 닦을 수 있으며, 황금밭(金田)에 계옥(桂玉)을 심어야 나라가 편안하고 집안이 화락합니다.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 것은 정녕 산이 울면 골짜기가 응답함과 같고, 선을 쌓으면 남은 경사가 있음은 물이 맑으면 달이 드러나는 것처럼 분명합니다.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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