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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집-상원암 선실 설치를 청하는 글

상원암 선실 설치를 청하는 글은 『경허집(鏡虛集)』 서문(序文)편에 수록된 화엄사 관련 산문이다. 내용은 상원암 선실이 화엄사 창건 때부터 있었는데 교화를 주도할 사람이 없어 운영이 중단되었다가 1900년(광무 4) 청하(淸霞) 장로가 선회(禪會)를 다시 개최하였으니, 이후에도 선회를 이어가도록 권한다는 것이다. 화엄사 소속 암자와 선실 운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경허집(鏡虛集)』은 경허 성우(鏡虛惺牛, 1849~1912)스님의 문집이다. 스님은 법호가 경허, 법명이 성우, 속성은 송씨(宋氏),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경기도 광주 청계사(淸溪寺) 계허(桂虛) 선사에게서 출가하였다. 저서로 『경허집(鏡虛集)』이 있다. 제자에는 만공 월면(滿空月面), 혜월 혜명(慧月慧明), 한암 중원(漢岩重遠)스님 등이 있다. 문집은 2권 1책으로 법어(法語), 서문(序文), 기문(記文), 서간문, 행장, 영찬(影讚), 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문
華嚴寺上院庵復設禪室定完規文 夫禪者。其理直截高遠。逈出三乘。故學禪者。悟徹本地風光。則與古佛齊肩。「刀」疑「刁」{編}。其法之要妙也。孰過於是。故達磨大士。入唐土以來。至于我東土。得其道。徑登佛地者。其數無限。至於近世。其道廢而不傳。設有發跡者。初不務決擇其叅究法。竟渾沌於昏掉之中。過了一生。而未能小分覰得其理。故凡他行業者。或外護者。不擇善否。例皆悲嘆。嗚呼。不可以救得也。此蘭若創始華嚴時。早爲禪室。其地靈勝。故得道者亦多。而中間廢絕其業者。非特運之否泰也。亦未有主化之人也。光武四年暮春。淸霞長老來住。設禪會于此。以丈老之淸淨道心。廣大願力。定議於山中僉員而完就者也。而第恐後之住持于此庵者。不念佛化之關重。古人創始之本懷。今丈老復設之勤懇。或從其私欲。或循其便宜。癈乎禪室。不承接其禪者。此是斷佛種人。謗般若人。因果歷然。可不畏哉。儒典云。爾愛其羊。我愛其禮。經云。一念淨心。勝造恒沙寶塔。又云。聞最上乘誹謗。堕三惡道者。勝於供養恒沙佛者。又古人云。聞而不信。尙結佛種之因。學而未成。猶盖人天之福。以於一切道法。般若力爲勝故也。由此觀之。禪人雖沉綿昏掉而未得意者。猶勝於三乘學人善成就道業者也。願諸後之住持斯庵者。三復斯文。繼揚禪化。可也。夫爲佛子而不務行乎佛化。擅用其私。癈其勝會。自有天地神祗之㝠誅顯罰。可不懼哉。夫有如是之可懼也。而不愓然遵奉者。已矣。吾末如之何也已矣。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번역문
화엄사 상원암에 다시 선실을 설치하고 완전한 규례를 정하는 글(華嚴寺上院庵復設禪室定完規文) 대저 선(禪)은 그 이치가 직절(直截)하고 고원하여 삼승(三乘)을 훌쩍 벗어났다. 그러므로 선을 배우는 이가 본지풍광을 깨달아 사무치면 옛 부처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니, 그 법이 요묘(要妙)하기가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으리오. 그러므로 달마 대사가 중국 땅에 들어온 이래 우리 동토에 이르러서도 그 법을 얻어 곧바로 불지(佛地)에 오른 이들이 한량없이 많았다. 그런데 근세에 이르러 그 도가 없어져서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고, 설령 그 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다 하더라도 애초에 참구하는 방법을 결택하는 데 힘쓰지 않아 마침내 혼침과 도거(掉擧, 산란한 마음) 속에 빠져서 한평생을 보내고 조금도 그 이치를 엿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른 행업(行業)을 하는 이들이나 그들을 외호하는 이들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참선하는 사람을 보면 으레 비탄하니, 슬프다! 구제할 수 없도다. 이 난야는 처음 화엄사를 창건할 때부터 이미 선실(禪室)이 있었는데, 터가 신령한 승지(勝地)라 이곳에서 수행하여 도를 얻은 이가 많았다. 그런데 중간에 선방 운영을 그만두고 만 것은 시운이 좋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었고, 교화를 주도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광무(光武) 4년(1900) 늦은 봄에 청하(淸霞) 장로가 이 암자에 와서 주석하면서 선회(禪會)를 열었으니, 장로의 청정한 도심과 광대한 원력으로 산중의 스님들과 의논하여 결정해 성취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훗날 이 암자의 주지로 오는 이들이 불법을 펴는 일의 중대함과 고인이 이 암자를 창시한 본뜻에 따라 지금 장로처럼 선회를 다시 연 간절한 뜻을 생각하지 않고, 혹 사욕을 따르고, 혹 일시적인 편의에 따라 선실을 폐지하여 선객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이는 부처님 종자를 끊는 사람이요, 반야를 비방하는 사람이다. 인과가 분명하니, 두려워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유가 경전에서 “너는 그 양을 아끼느냐? 나는 그 예(禮)를 아끼노라.” 하였다. 경에서는 “한 생각 맑은 마음이 항하사와 같이 많은 보배 탑을 조성하는 것보다 낫다.” 하였고, 또 “최상승 법문을 듣고 비방하여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이 항하사와 같이 많은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하였으며, 또 고인이 “듣고 믿지 않더라도 오히려 성불할 종자를 심는 것이며, 배워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인천(人天)의 복을 덮는다.” 하였으니, 일체 도법(道法) 중에서 반야의 힘이 수승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본다면 참선하는 사람이 비록 혼침과 도거에 빠져서 도를 얻지 못할지라도 도업을 성취한 삼승의 학인보다 낫다. 원컨대 후세에 이 암자의 주지가 된 이는 이 글을 반복해 읽어 보고 선회를 이어 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저 불자로서 부처님 교화를 펴는 데 힘쓰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수승한 선회를 폐지한다면 천지신명이 알게 모르게 벌을 내릴 것이니 두렵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두려운 일이 있는데도 척연(惕然)한 마음으로 이 말을 준봉(遵奉)하지 않는 자는 그만이니, 나도 어찌할 수 없다.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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