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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집-장육전 권선문

구례 화엄사의 장륙전과 불상 조성의 권선문(求禮華嚴寺重建丈六殿兼造像勸文)은 『백암집』 권하에 실려 있다. 그 내용은 화엄사 전각과 주변 자연환경의 아름다움, 임진왜란으로 인한 화엄사의 소실, 벽암 각성 대사의 중창, 이후 계파 성능(桂坡聖能) 스님의 장육전 중수와 불상 조상에 대해 서술하고, 말미에서 각황전 중수의 큰 일에 비용이 부족하니 사부대중에게 권선을 바란다는 것이다. 성능스님의 장육전 중수는 1699년에 시작하여 1702년에 완성되었다. 다만 성총 스님의 입적 시기를 고려하면, 이 권선문은 1700년 이전 장육전 중수 초기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백암집(栢庵集)』은 백암 성총(栢庵性聰, 1631~1700) 스님의 문집이다. 문집은 2권 1책으로 권상에 시 285편 328수, 권하에 기(記)ㆍ서(序)ㆍ상량문ㆍ서(書)ㆍ소(疏)ㆍ권선문 등 문(文) 70편, 제(題) 73편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그는 유학에도 능통하여 김수항(金壽恒) 등 사대부들과 나눈 시와 편지글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백암 성총스님은 법휘가 성총, 속성이 이씨(李氏)이고, 남원 사람이다. 13세에 취암사에서 출가해 16세에 법계를 받았다. 18세에는 취미 대사께 9년간 수학하였다. 1681년(숙종 7) 임자도(荏子島)에 큰 배가 표착하였는데, 그 배 안에서 많은 불서(佛書) 표가 발견되었다. 백암 스님은 그 가운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불경을 15년에 걸쳐 5천 여 개의 목판으로 간행하고, 징광사와 쌍계사에 안치하였다. 1700년 7월 25일 밤 쌍계사 신흥암에서 입적하였다.
원문
求禮華嚴寺重建丈六殿兼造像勸 文聞夫佛以大圓覺爲伽藍。寧假宮室之崇也。身則混虗空爲體性。詎雕栴檀之像乎。然而惑業自覉縻。苦海長淪而莫出。無明所暗蔽。昏衢永夜而不晨。肆以匪相好百福之莊嚴。那可得而瞻仰。微締構三休之壯麗。無以示其重威。斯可止哉。不得已也。智異山大華嚴寺者。鰈域千年之裨補。鳳城一縣之襟喉。却倚般若之雄峰。上出玄霄而無極。前臨鴨綠之巨壑。東注滄溟而不休。翠栱朱甍。起虹霓於層閣。金輪玉鏡。環日月於廻廊。地仙獻藥笛聲。聞雲中之雞犬。林禽含異菓香。飄鳥外之樓臺。千竿綠竹猗猗。似入蔣生之徑。一帶靑溪決決。如聞伯牙之絃。天女散華。落曼陀於金地。龍王噴水。飛玉溜於珠盤。紫栢爐香。傃金山而吐霧。靑松談𪊧。昇法座而梳風。關朔眞僧。爭投解虎之錫杖。嶺湖開士。竸擲藏虬之鉢盂。否泰相乘。興廢有數。奄遭島夷兵烽之慘怳。如栢梁煨燼之餘。祗園興版蕩之悲。㝎水穴鯨鯢之浦。區宇積淪胥之痛。慈門伏狐狸之場。釦礎徒存。非復鶯林之樹。苾蒭焉托。空傳鷲嶺之基。白馬悲嘶。蒼牛吼去。岩枝泣露。磵戶摧梁。爰有碧巖大長老。道亞生融。德侔安遠。爲四衆倡。潜圖彼岸之功。結萬人緣。即揆爲山之業。於是披榛薙草。與月殿之全模。累土開林。起珠臺於始簣。毳衲得以安棲。梵鐘以之交響。惟丈六之寶殿。與金𨈬而共灰。兼十萬之偈言。並玉石而俱碎。有耳目君子。莫不興嗟矧居停主人。寧無泚顙。玆有鶴駕道人性能。仙露明珠之朗潤。松風水月之襟胸。汲引四生。津梁三界。如優曇一現。欲創大事之因緣。令佛日再中。要作四軰之歸嚮。度木於山也。取徂松甫栢之良材。擇工於衆焉。召王爾班輸之妙手。萃之以日力。鳩之以歲功。即舊以謀新。其規益壯。塑像而覆閣。其直良多。任重道遠。微蚊負山而難堪。事鉅力綿。寃禽塡海而無路。一毛不拔。雖或有獨善之心。百足不僵。庶可仗相扶之力。玆非小報。未可殫言。擧欣欣然。與之釜與之庾。與之粟九百。是區區者。俾爾昌。俾爾熾。俾爾壽萬千。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번역문
구례 화엄사의 장륙전과 불상 조성의 권선문(求禮華嚴寺重建丈六殿兼造像勸文) 듣자 하니, 부처는 대원각(大圓覺)으로 가람을 삼으니 어찌 궁실의 높은 것을 빌리겠는가. 몸은 허공에 뒤섞인 것을 체성(體性)으로 삼으니 어찌 전단나무의 불상을 조각하겠는가. 그런데도 미혹한 업으로 스스로를 결박하여 고통의 바다에 길이 빠져서는 나오지를 못하니 어리석음으로 지혜가 가리어 어두운 거리에 밤이 계속되고 새벽이 오지 않는 것이다. 백 가지 복으로 장엄한 상호가 아니라면 어찌 우러러 바라볼 수 있겠는가. 삼휴(三休)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결구하여 짜지 않는다면 그 위엄과 무게를 보일 수 없으니 이것을 그칠 수 있겠는가. 그만둘 수 없는 일이다. 지리산 대화엄사는 조선 천 년간의 비보사찰로서 봉성현(鳳城縣)의 요지이다. 반야의 웅장한 봉우리에 의지하여 위로는 어두운 하늘을 벗어나 끝 간 곳이 없고 앞으로는 압록(鴨綠))의 거대한 골짜기에 임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푸른 바다로 물을 대면서 쉬지 않는다. 비취 두공과 붉은 서까래가 겹겹의 누각에 무지개처럼 일어나 있고, 금빛 바퀴와 옥빛 거울은 회랑에 해와 달처럼 둘러 있다. 지선(地仙)이 영약을 바치며 피리를 부는 듯 구름 속에서 닭과 개 소리 들리고, 수풀의 새는 기이한 향의 과일을 머금고 높다란 누대를 스치네. 천 그루 푸른 대나무가 또렷하여 흡사 장생(蔣生)의 오솔길로 들어간 듯하고, 푸른 계곡물 한 줄기기 콸콸 소리 내니 마치 백아(伯牙)의 거문고 소리를 듣는 것 같네. 하늘의 선녀가 꽃을 뿌리는 것처럼 만다라가 절집(金地)에 떨어지고, 용왕이 물을 뿜는 것처럼 구슬 쟁반에는 옥 같은 물방울이 날린다. 자줏빛 잣나무의 향로는 금산(金山)과 같이 안개를 뿜어내고 푸른 소나무는 티끌을 이야기하며 법좌(法座)를 타고 바람을 빗질한다. 변방의 북쪽 진승(眞僧)이 호랑이 화해시킨 지팡이를 다투어 던지고 영호남의 개사(開士)들이 용을 가둔 발우를 다투어 던졌도다. 그러나 비괘(否卦)와 태괘(泰卦)가 서로 타고, 흥함과 폐함에 운수가 있어서, 갑자기 왜구의 참담한 병화를 만나니 백량(栢梁)이 모두 타 버리게 된 것과 같다. 기원(祗園)에는 판탕(版蕩)의 슬픔이 일어났고, 정수(定水)는 고래의 포구가 되었네. 온 천하에는 몰락(淪胥))의 아픔이 쌓였고 자비의 문은 여우와 이리가 숨은 마당이 되었네. 금테 두른 주춧돌만이 한갓 남아 있어서 다시는 꾀꼬리 우는 숲이 아니며, 스님(苾蒭)들이 어찌 의지하리? 부질없이 축령(鷲嶺)의 절터임을 전할 뿐이로다. 백마가 슬프게 울부짖고 푸른 소가 울며 떠나가고 바위의 가지는 이슬에 젖고 계곡 문은 다리가 꺾어졌도다. 이에 벽암(碧巖) 대장로가 있어 도는 생융(生融)에 버금가며 덕은 안원(安遠)과 짝이 되어 사부대중을 창도하여 피안을 도모하는 공을 세우고 만인의 인연을 맺어 즉시 산을 위한 업을 헤아렸다. 이에 가시덤불을 헤치고 잡초들을 제거하며 월전(月殿)의 전모(全模)와 더불어 흙을 쌓고 숲을 열어서 첫 삼태기를 떠서 옥과 같은 누대를 세웠네. 누더기 옷을 입은 중들이 편안히 거처할 수 있게 되었으며 범종이 서로 교차하여 울리네. 오직 장륙보전은 금빛 몸으로 재와 같이 되고 십만의 게송을 겸하나 옥석이 나란히 모두 부서졌으니 눈과 귀가 있는 군자로서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하물며 살면서 머무는 주인이 어찌 식은땀을 흘리지 않겠는가. 이에 학가(鶴駕) 도인 성능(性能)은 신선 이슬의 밝은 구슬처럼 밝고 윤기가 흐르며 솔바람과 물속의 달과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어서 사부대중을 인도하여 삼계의 나루와 다리가 되어 줌이 마치 우담발화가 한 번 나타난 듯 큰일을 시작하고자 하는 인연으로 불일(佛日)이 다시 가운데 있어 요컨대 사부대중이 귀의하도록 하고자 하였다. 산에 큰 소나무와 잣나무의 좋은 재목을 취하고, 무리들 가운데 기술자를 택하여 왕이(王爾)와 반수(班輸)의 묘한 솜씨꾼들을 불렀다. 하루하루의 힘이 쌓이고 일 년의 공업이 모여서 옛것으로 새것을 꾀하니 그 규모가 더욱 장대하였다. 불상을 조각하고 전각을 덮으니 그 가치는 진실로 크도다. 책임은 막중하고 길은 먼데 작은 모기가 산을 짊어졌으니 감당하기 어렵고, 일은 큰데 힘은 약하여 원금(寃禽)이 바다를 메우려 하나 길이 없다. 한 터럭을 뽑지 않았어도 비록 혹시라도 독선의 마음이 있는가. 지네(百足)는 넘어지지 않으니 거의 서로 돕는 힘을 의지할 만하리라. 이에 작게라도 알려서 다 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모두들 기쁘게 부(釜)를 주고 유(庾)를 주고 곡식 구백을 주네. 이렇듯 정성 어린 이들이여, 그대들은 창성하고 그대들은 치성하게 되고 그대들은 천만년 수를 누리리라.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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