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 원기(擎雲元奇, 1852~1936) 스님이 1933년 음력 8월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께 회갑연 축하송을 적어 보낸 편지이다. ‘해동의 강사엔 다시 짝하리 없네’라는 표현에서 진진응 스님이 당시 강백으로 명성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 편지는 한정섭 편저 『近代高僧名人書翰集』(佛敎通信敎育院, 2000)에 수록되어 있다.
번역문
頌陳震應禪師回甲慶醼 진진응 선사 회갑연 축하송
堪駕當年露地牛 당년에 노지(露地) 소수레를 탈만하니
海東講席更無俊 해동의 강백으로도 비길이 없네
龍藏八萬濃皮裏 팔만용장이 그 속에 농후하니
國乘五千彈舌頭 5천의 국승(國乘) 혀끝을 내두르네
法印曾承分座塔 법인(法印)은 일찍이 분좌탑(分座塔)을 계승하고
世齡今續滿觥樓 올해 세수 환갑이라, 연회가 만석이네
追思從我談經事 나를 따라 담소를 나누던 일 생각해보니
雨去風來問幾時 비 그치고 바람 부니, 어느 계절인가.
불기 2960년
계유년(1933) 음력 8월 일
순천군(順天郡) 조계산(曹溪山) 선암사(仙巖寺) 대승암(大椉菴) 82세 사문(沙門)
김경운
※번역: 불교학술원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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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응 혜찬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은 법호가 진응, 법명이 혜찬, 속성이 진씨(陳氏)이다. 15세에 화엄사로 출가하였다. 이후 화엄사, 선암사 등지에서 경론을 수학하다가 24세에 응암 치영(應庵致永) 스님의 법맥을 이었다. 스님은 1910년 박한영(朴漢永)·한용운(韓龍雲) 등과 함께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 종정(宗正) 회광(晦光)의 일본 조동종(曹洞宗) 연합 맹약 체결에 반대해 이를 저지하였다. 1913년 2월 쌍계사에서 호은 문성(虎隱文性) 스님에게 구족계와 대승계를 받았다. 이를 인연으로 진응 스님은 화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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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응종사탑진응종사탑은 2단으로 조성된 승탑원의 북쪽 구역 아랫줄에 위치한다. 탑의 주인공인 진응 종사는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1)스님이다. 스님은 1873년 12월 24일 출생하고, 1941년 법랍 54세, 세수 69세로 입적하셨다. 진응종사탑은 전체 높이 115㎝, 탑신 높이 94㎝, 상륜 높이 14㎝, 기단 폭 75㎝, 탑신 폭 70㎝의 석종형 승탑(石鍾形僧塔)이다. 같은 승탑원에 있는 1660년경 조성된 벽암각성탑 계열을 잇는 종 모양에 충실한 탑이다. 탑은 둥근 기단에 종 모양 탑신과 연화문이 새겨진 둥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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