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스님이 1912년 12월 17일 부산 범어사에서 구례 화엄사의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께 보낸 편지이다. 편지 속에는 지난 7월 만주에서 육혈포(즉 권총)를 맞아 구사일생으로 귀환한 일과 진진응 스님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있다.
편지의 크기는 가로 8.9㎝, 세로 14.2㎝이다.(※출처: 칸옥션) 봉투에는 왼쪽 상단에 우표와 대정(大正) 1년(1912) 12월 10일자의 날짜도장, 하단에는 대정 1년 12월 22일자의 날짜도장이 찍혀 있다. 이 편지는 칸옥션 경매에 출품되었다.
진진응 스님의 수신 편지로는 1912년 12월 17일 부산 범어사에서 한용운 스님으로부터 받은 1통, 1930년 음력 8월 9일과 1933년 음력 8월에 경운 원기(擎雲元奇, 1852~1936) 스님으로부터 받은 2통, 금명 보정 스님으로부터 받은 1통, 1936년 2월 21일 한암 스님으로부터 받은 1통이 있다. 발신 편지로는 어느해 겨울 황현 문하의 왕수환(王粹煥, 1865~1926)에게 보낸 편지 1통이 있다.
원문
봉투
全南 求禮郡 華嚴寺內
陳震應 專
釜山府 梵魚寺
韓龍雲 十二月 十七日
내용
積年阻候 伏悵曷已 伏未審寒沍
講體萬安 伏溯伏溯 生 布敎次 今七月 往滿洲矣
不幸 而路逢强盜 被六穴砲三發 一生於萬
死之中 而今纔還國 劫後餘毒 尙未快復耳
奈宿障非輕 所志所事 百無一成 動輒得咎
幾無容身之地 且幾死於海外之爆彈 夫人
間 何者非夢 半世夢 夢一何凶也 解夢之訣云凶
則吉 以是自慰 會合何時 臨書增悵
※출처: ‘칸옥션’, 칸옥션
※교열: 불교학술원
번역문
봉투
전남(全南) 구례군(求禮郡) 화엄사내(華嚴寺內)
진진응(陳震應) 전(專)
부산부(釜山府) 범어사(梵魚寺)
한용운(韓龍雲) 12월 17일
내용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으니 그 아쉬움 어찌 한량이 있겠습니까. 추위에 강론 진행하시는 몸은 평안하신지요? 그립고 그립습니다. 소생은 포교차 이번 7월에 만주에 갔었는데 도중에 강도를 만나 육혈포(六穴砲) 세 발을 맞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이제야 겨우 귀국했는데 위협을 당한 뒤의 여독이 아직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묵은 업장이 가볍지 않아 뜻한 바나 하는 일마다 장애가 발생하여 거의 몸 둘 곳이 없는데, 해외에서 폭탄에 거의 죽을 뻔하기까지 했으니... 무릇 인간의 삶에 꿈이 아닌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반생의 삶에서 꾼 꿈이 어찌 이다지도 흉측하단 말입니까. 해몽(解夢) 비결에서, “흉사가 극에 달하면 길하게 된다”고 하니 이것으로 스스로 위로할 뿐입니다. 언제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이 글을 적을 즈음 아쉬움만 쌓입니다.
※출처: ‘칸옥션’, 칸옥션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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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응 혜찬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2) 스님은 법호가 진응, 법명이 혜찬, 속성이 진씨(陳氏)이다. 15세에 화엄사로 출가하였다. 이후 화엄사, 선암사 등지에서 경론을 수학하다가 24세에 응암 치영(應庵致永) 스님의 법맥을 이었다. 스님은 1910년 박한영(朴漢永)·한용운(韓龍雲) 등과 함께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 종정(宗正) 회광(晦光)의 일본 조동종(曹洞宗) 연합 맹약 체결에 반대해 이를 저지하였다. 1913년 2월 쌍계사에서 호은 문성(虎隱文性) 스님에게 구족계와 대승계를 받았다. 이를 인연으로 진응 스님은 화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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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응종사탑진응종사탑은 2단으로 조성된 승탑원의 북쪽 구역 아랫줄에 위치한다. 탑의 주인공인 진응 종사는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1)스님이다. 스님은 1873년 12월 24일 출생하고, 1941년 법랍 54세, 세수 69세로 입적하셨다. 진응종사탑은 전체 높이 115㎝, 탑신 높이 94㎝, 상륜 높이 14㎝, 기단 폭 75㎝, 탑신 폭 70㎝의 석종형 승탑(石鍾形僧塔)이다. 같은 승탑원에 있는 1660년경 조성된 벽암각성탑 계열을 잇는 종 모양에 충실한 탑이다. 탑은 둥근 기단에 종 모양 탑신과 연화문이 새겨진 둥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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