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회당(具晦堂) 스님이 어느 해 음력 9월 5일 호은 문성(虎隱文性, 1850~1918) 스님께 보낸 편지이다. 그 내용은 장지연 선생이 귀당(貴堂)에 왕림한 것은 큰 인연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화엄산림(華嚴山林)을 기망한다는 것이다. 구회당 스님은 통도사 스님으로 『매일신보(每日申報)』 1913년 6월 11일자 기사에서 박호은 스님과 함께 진주 호국사 포교당에서 개최한 수륙대회에 참가했음이 확인된다.
원문
久違惠訓 心切依馳 伏承下書 欣仰曷勝 憑審菊令
傳主法體候 吉祥萬福 更伏溸且慰之至 本堂 依舊一樣 伏幸伏幸 張先生主枉駕貴堂 想應廣緣多大矣 此皆傅主大悲能力之所致也 爲之欽祝欽祝이외다 華嚴山林을 可期이오니 伊時上書하겠사오니 幸須枉臨하시옵소서 大忍師난 仍舊하였사오니 幸이외다 今番總會에 善爲條處하시기를 切望切望 餘只祝道軆萬康 不備謝上
舊九月五日 迷佐 具晦堂 上狀
虎鹰大禪師 猊下
※출처: 『韋庵張志淵書簡集3』
※제공: 불교학술원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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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신문자료에 보이는 박호은 스님이 항목은 호은 문성(虎隱文性, 1850~1918) 스님에 대한 자료를 국립중앙도서관 고신문 디지털컬렉션에서 제공하는 일제강점기 발행 신문에서 모은 것이다. 스님은 1913년 진주 호국사 포교당에서 포교사로서 수륙대추도회를 열었고, 1914년 통영의 포교당에서 2월부터 김창흔(金昌炘) 등을 교수로 야학강습을 하도록 하였으며, 1916년에는 진주 호국사 포교당에서 석가탄신일에 법요를 진행하였다. 고신문 자료에서는 1910년대 스님이 포교사로 활동한 모습과 1918년 호은 스님이 입적한 후 박한영(朴漢永, 鼎鎬, 1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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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은 율사 비호은율사비는 2단으로 조성된 승탑원의 북쪽 구역 아랫줄에 위치한다. 비의 주인공인 호은 율사는 호은 문성(虎隱文性, 1850~1918) 스님이다. 비는 1919년 기미년 2월 21일 당시 화엄사 주지 진응 혜찬(震應慧燦, 1873∼1941) 스님이 건립하였다. 호은율사비는 사각형의 비좌(碑座) 위에 몸돌인 비신(碑身)과 지붕 모양 돌인 옥개석(屋蓋石)을 얹은 구성이다. 비의 전체 높이는 224㎝, 비신 너비는 63㎝, 비신 두께는 37㎝, 옥개 높이는 50㎝이다. 비신 전면 상단에 ‘호은대율사비(虎隱大律師碑)’라고 새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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