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 기행록」은 양경우(梁慶遇, 1568~1638)의 『제호집(霽湖集)』 권11에 수록된 기행 일기이다. 그는 자가 자점(子漸), 호가 제호(霽湖)·점역재(點易齋)·요정(寥汀)·태암(泰巖), 본관이 남원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고, 군량미를 모아 공급하였다. 1597년 문과 별시에 급제하였다. 시문을 잘 지어 사신 접대에 자주 차출되었다. 저서로 『제호집』이 있다.
『제호집』은 원집 11권, 속집 2권으로 시, 시화(詩話), 잡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일기는 그가 장성현감으로 재직할 때 1618년 윤4월 15일부터 5월 18일까지 장성을 출발해 연해의 군현을 돌아보던 중 광양을 지나 12일 두류산에 들어가 쌍계동과 신흥동 일대를 유람하고 쓴 기행문이다. 그는 하동의 삼신동(三神洞)에 이르러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을 만나 절에서 시를 지어 교유하고, 스님들께 불경의 제목을 써주었으며, 홍류교에서 각성 스님과 헤어졌다. 각성 스님은 1615년 은사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15) 스님이 입적하자 지리산 등지에 은거하였다. 양경우의 기행은 이 무렵 각성 스님의 행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원문
十二日己亥。陰晴。早發將向神興洞,老僧追至石門告別。旣出石門,還渡武陵溪,入神興洞,洞天寬敞。白石離列,淸湍激瀉;奇峯翠壁,矗立環擁。劍鍔叢空,玉筍攢穎,眼明神竦,興撥欲狂。川流之北,穹林攸擢,其樹多松楓櫧櫟,餘皆莫識其名。繁枝老蔓,雜於層崖崩石,而轇轕蒙絡之路通其中,仰不覻天。日方亭午,不見纖穿在地,此亦壯觀也。行十餘里至洞口,有立石,刻曰“三神洞”,韻釋覺性出候我行。緇巾稻衲,方立水邊,見余至合掌一笑,勞苦如舊。有洞川自三神洞流出,合於神興之水。澗上橫獨木杠,指之曰“紅流橋”。余問覺師曰:“余聞紅流橋久矣。今無橋而謂之橋,何耶?” 覺師盛稱“平昔跨澗作五間浮樓,金碧交輝,左右闌干,蘸影波心。遊人釋子交相往來,眞奇勝處也。不幸兵燹之後,尙欠重建矣”。余曰:“然則今之所謂紅流橋者,其冒稱類於鐵鑪步也。” 因與一笑。遂相携行一里許至于寺,寺亦亂後新創。僧言“結搆棟樑之制,比前益侈,獨凌波堂未及建耳”。金沙道場,綺搆玲瓏,令人擧足蹜踖,不敢恣意。寺前有樓,與師同上。山中百道之川,合爲一水,至樓下而爲淵,深而黛黑,淺而澄澈。隔水峯巒,皆若拱揖此樓然。是日也曉雨乍來,向晩褰開。方余之至紅流橋而細雨又下,及登樓而半陰半晴,雲霞濃淡,變滅萬狀。忽見大魚撥剌而跳,遠視不能辨其名,而長可尺許。山樹珍禽,百種呼喚;波底潛鱗,亦復踴躍,物雖無情,似能爲我先後也。有年少沙彌輩玉骨氷肌,眉眼如畫,環擁覺師者數十,其餘在廡下庭除者,十百爲群,皆其門徒也。相排競進於余坐之前,各携經卷,請書題目。余謝不能遍,只書若干卷與之。覺師曰“貧道久聞措大名,今焉邂逅,願得一句詩,爲他日面目”,仍出素翁諸公所贈詩,要余和之。余不敢辭,信筆塞之。余欲與覺師同枕一宵,問法論道,緣離官日久,職事淹閼,兼以僕從糧橐告匱,點茶中火後還出寺門。所謂三步回頭五步坐者,古人先獲我心矣。至紅流橋,與師別,夕宿下川 【원주: 花開洞外村名】 村舍。
※출처: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ㆍ조선대학교 고전연구원, 김재희 이덕현 (공역), 2015
※출처: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