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유상록(智異山遊賞錄)」은 김회석(金會錫, 1856~1934)의 『우천집(愚川集)』 권4에 수록된 기행 일기이다. 그는 자가 봉언(奉彦), 호가 우천(愚川), 본관이 일선(一善)이다. 송병선에게 수학하였으며, 그가 사망한 뒤로는 두문불출하였다. 김회석은 출사하지 않고,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정진하였다. 저서로 『우천집』이 있다.
『우천집』은 5권 2책으로 시, 서(書), 기(記), 서(序), 발(跋), 명(銘), 제문, 묘표, 행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주교를 비판하는 「척사설(斥邪說)」과 「신심문답(身心問答)」 등에서 그의 학문적 사상을 살필 수 있다.
그 중 「지리산유상록」은 1902년 2월 3일부터 3월 14일까지 송병순, 정록겸, 유원중 등과 함께 지리산 일대를 유람하고 쓴 기행문이다. 일정은 송병순의 「유방장록(遊方丈錄)」과 대체로 같다. 다만, 화엄사 방문일에 대해서는 「유방장록」에서는 송병순이 3월 2일에, 「지리산유상록」에서는 김회석이 정숙명, 임희서 등과 함께 3월 3일 오후에 방문한 것으로 적혀 있다. 김회석의 화엄사를 전후한 여행 경로는 구례→화엄사→남전 왕사춘의 집이다. 송병순과 김회석이 화엄사를 방문한 날짜는 다르지만, 화엄사를 유람하고 쓴 내용은 크고 웅장한 절의 규모에 대한 감탄, 각황전에 대한 언급, 순후한 대접 등으로 상당히 유사하다. 두 일기 모두 시작 일정에 대한 기록에 모순된 점이 있어 정확한 일정과 경로는 확정하기 어렵다.
지리산권문화연구단이 2016년에 발행한 『지리산권 유산기 선집』에 여행 경로와 원문이 실려 있다.
번역문
3월 3일
오후에 정숙명, 임희서(현주)와 화엄사로 올라갔다. 절이 매우 걸출하였다. 각황전이라는 건물은 2층 누각이다. 승려가 매우 많았다. 대접에 자못 순후한 맛이 있었다.
※번역: 불교학술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