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장록(遊方丈錄)」은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의 『심석재집(心石齋集)』 권12에 수록된 기행 일기이다. 그는 자가 동옥(東玉)·구홍(九洪), 호가 심석재(心石齋), 본관이 은진(恩津)이다. 여러 차례 추천으로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고, 구국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활동하였다.
저서로 『심석재집』, 『독서만집(讀書漫錄)』, 『학문삼요(學問三要)』, 『사례축식(四禮祝式)』, 『용학보의(庸學補疑)』, 『주서선류(朱書選類)』 등이 있다. 『심석재집』은 35권 15책으로 시, 소(疏), 서(書), 서(序), 기(記), 발(跋), 명(銘), 비(碑), 행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방장록」은 송병순과 정록겸, 김우경, 남국경, 이경옥, 이윤경, 이선경 등과 함께 지리산 일대를 유람하고 쓴 기행문이나 날짜별로 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시기 함께 여행하고 「지리산유상록(智異山遊賞錄)」을 남긴 문인 김회석(金會錫, 1856~1934)에 의해 1902년 2월 3일부터 3월 13일까지가 여행 기간임이 확인 된다.
송병순의 여행 경로 중 화엄사 여정은 화엄사를 전후로 화개동→구례 화엄사→박창현의 집→화개동→석주동이다. 『지리산권 유산기 선집』에 여행 경로가 자세히 연구되어 있다. 내용은 정숙명, 임희서와 함께 화엄사에 가서 각황전을 보고, 식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각황전에 대한 감상과 함께 절의 규모가 매우 크고 걸출하며, 지나오며 본 다른 사찰에 비해 순후한 맛이 있다고 감상을 적었다.
원문
與淑明曁林君煕瑞上華嚴寺。是頭流之西麓也。景無奇勝而寺甚宏傑。所謂覺皇殿。卽二層複宇。猶勝於海印之大寂殿。緇徒供饋。比所過諸刹。最有醇厚之味。
※ 출처 :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번역문
정숙명, 임희서와 화엄사로 올라갔다. 화엄사는 두류산 서쪽 기슭에 있다. 경치는 특별히 빼어나지 않지만, 사찰의 (규모는) 매우 걸출하다. 이른바 ‘각황전’은 2층 불우로 오히려 해인사의 대적전보다 빼어나다. 승려들이 식사를 제공해 주었다. (화엄사는) 지나온 모든 사찰에 비해 가장 순후한 맛이 있다.
※번역: 불교학술원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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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전각황전은 왕실의 지원으로 1702년(숙종 28)에 계파성능(桂波性能)스님이 재건한 불전이다. 이 자리에는 장륙전이라는 이름의 불전이 있었고, 내부에 화엄석경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 건물은 소실되고 화엄석경은 파괴되어 만여 점이 넘는 조각으로만 남아 있다. 전란 이후 벽암 각성스님의 중창 당시 대웅전만 재건되고 장육전은 재건하지 못하였는데, 1699년에 홍각, 등계, 성능스님이 영남 예천 학가산에서 와서 재건의 업적을 이어 2층 7간의 대전을 원통전과 함께 재건하였다. 공사는 1699년(기묘) 봄부터 1702년... -
각황전 건축각황전은 대웅전과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는 화엄사의 두 주불전 중 하나이다. 석축의 조성수법을 보았을 때, 대웅전 영역보다 각황전 영역이 먼저 조성되었고, 후대 사역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대웅전과 다른 건축물이 배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각황전의 왼쪽편에는 영산전으로도 불리는 봉향각이 자리하는데 이 건물이 각황전의 노전이다. 각황전은 전면 7칸, 측면 5칸의 다포를 올린 중층건축물로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이고 지붕가구는 상층지붕 기준으로 1고주 7량이다. 대규모 석축으로 대지를 조성하고 건물의 어칸 중심과 석등, 석축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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