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6년 8월 21일 일기는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의 『산중일기(山中日記)』 권상에 수록되어 있다. 이 날 정시한은 화엄사 스님들과 함께 나한전, 시왕전, 장륙전, 화엄석경, 사사자 삼층 석탑 등을 보았다. 1700년 경 계파 성능(桂坡聖能, 생몰년 미상) 스님이 장육전(즉 각황전)을 중창하기 전 모습을 알 수 있다. ‘법화경판’은 화엄석경의 오기(誤記)이다. 말미에서 ‘화엄’이라는 절의 이름이 경판에서 유래했다는 기록을 고려하면, 정시한은 분명히 ‘화엄석경’이라 인지하고 있었다. 당시 화엄석경은 왜란으로 장육전이 소실되면서 요사채에 보관되고 있었다. 날씨는 흐린 뒤 갰으며, 정시한은 남원읍으로 가 박백운의 집에 머물렀다.
원문
二十一日 或陰晴寺中備朝食 以饋朝食後 與玉哲辯訓三訓及僧數輩 周觀羅漢十王等殿 仍觀丈六 基平正廣闊 石刻法華經板積於後空舍 前面石塔製度異常 又上浮屠菴見所樹浮屠奇妙難狀 蓋此寺烟起祖師所創浮屠卽釋迦舍利所安 故以祖師石象坐於塔前 以女人象塔下正中爲戴立之狀 僧言女人卽一名禪覺祖師母象云 丈六殿爲壬辰倭亂所燒云 寺基之廣大 石砌之高築 石塔之高大 曾所未見 寺之得名華嚴以經板故也 差晩發行行四十里 至南原上東面雲州柱院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불교학술원
번역문
1686년 8월 21일 흐렸다가 갬.
사중(寺中)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였다. 식사 후 옥철(玉哲)·변훈(辯訓)·삼훈(三訓) 스님 및 여러 스님들과 함께 나한전과 시왕전 등을 두루 살펴보았다. 이어서 장육전을 보았는데, 터가 평평하고 바르며 넓다. 석각 법화경판은 뒤쪽 빈 요사에 쌓여 있다. 앞쪽에 있는 석탑은 특이하게 만들어졌다. 또 부도암(浮屠菴)에 올라가 세워진 부도를 보니, (그 모습이) 기묘하여 설명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이 절의 연기(烟起) 조사가 창건한 부도는 바로 석가사리를 봉안한 곳이다. 그러므로 조사의 석상이 탑 앞에 앉은 형태로 있고, 여인상이 탑 아래의 정중앙에서 탑을 머리에 이고 있는 형태이다. 스님들 말로는 여인이 바로 일명 선각조사(禪覺祖師)의 어머니 상이라고 한다. 장육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고 한다. 절터는 넓고 크며 섬돌도 높게 쌓았고 석탑도 높고 크니, 일찍이 보지 못하던 절이다. 절 이름은 화엄경판 때문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다소 늦게 (화엄사를)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남원 상동면 운주원에 이르렀다.…
※번역: 불교학술원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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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석경화엄석경은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경이다. 석경의 모서리에 고정과 연결을 위한 홈이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벽처럼 세워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판의 크기는 세로 52㎝, 가로 65㎝, 두께 2.7~6.4㎝, 폭 3.1~34㎝이다. 글씨 위쪽과 아래쪽에 가로로 그은 선과 세로로 행간을 구분하는 계선을 긋고, 그 안에 경전의 내용을 새겼다. 파편 석경에는 적게는 몇 자에서 많게는 50여 자의 글자가 있으며, 해서체로 쓰였다. 석경은 경문, 변상도, 범어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은 품(品)으로 구분된다. ... -
화엄사 창건 이야기화엄사 창건 설화는 천축국(인도)의 연기조사가 연(鷰)이라는 전설상의 동물을 타고 와 화엄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구술1). 연이라는 동물은 거북이의 몸을 하고 있는데, 화엄사 일주문을 지나 거북이 등 위에 연기조사의 비석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구술3). 한편 김택영(金澤榮, 1850~1927)의 『소호당집(韶濩堂集)』에 수록된 「지리산 화엄사 신라불교조 연기대사갈(智異山華嚴寺。新羅佛敎祖緣起大師碣)」에서 1924년 정월 화엄사 만우(曼宇) 정병헌(鄭秉憲, 1891~1969) 스님이 화엄사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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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조사 설화화엄사 창건 설화는 천축국(인도)의 연기조사가 연(鷰)이라는 전설상의 동물을 타고 와 화엄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다. 연이라는 동물은 거북이의 몸을 하고 있는데, 화엄사 일주문을 지나 거북이 등을 타고 있는 연기조사의 비석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김택영(金澤榮, 1850~1927)의 『소호당집(韶濩堂集)』에 수록된 ‘지리산 화엄사 신라불교조 연기대사갈(智異山華嚴寺新羅佛敎祖緣起大師碣)’에서는 1924년 정월 화엄사 만우 병헌(曼宇秉憲, 1891~1969) 스님이 화엄사 창건주이자 신라불교의 조사이신 연기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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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오층석탑대웅전과 각황전 석축 앞에는 오층석탑 2기가 세워져 있다. 각기 동오층석탑, 서오층석탑이라 하는데 두 석탑의 규모와 형식은 유사하지만, 기단의 높이와 탑신석, 옥개석의 형태 등 세부적인 부분은 차이가 있어 처음부터 쌍탑으로 조성된 것인지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있다. 동오층석탑은 문양이 없는 단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석과 옥개석을 올렸다. 기단부의 네 모서리에는 기둥이 조각되어 있고, 탑신석은 단일부재로 기단석과 마찬가지로 모서리에 기둥이 표현되어 있다. 1층부터 5층까지 모든 탑신석이 높이보다 너비를 크게 하여 안정... -
서 오층석탑대웅전과 각황전 석축 앞에는 오층석탑 2기가 세워져 있다. 각기 동오층석탑, 서오층석탑이라 하는데 두 석탑의 규모와 형식은 유사하지만, 기단의 높이와 탑신석, 옥개석의 형태 등 세부적인 부분은 차이가 있어 처음부터 쌍탑으로 조성된 것인지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있다. 서오층석탑은 2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석과 옥개석을 올렸고, 노반석(露盤石) 위에 원뿔 모양 간주(間柱)와 연화문이 새겨진 둥근 보주(寶珠)로 구성된 상륜부(相輪部)가 남아 있다. 이중기단의 상하층 면석에 십이지(十二支)와 팔부중(八部衆)을 조각하였고, 1... -
각황전각황전은 왕실의 지원으로 1702년(숙종 28)에 계파성능(桂波性能)스님이 재건한 불전이다. 이 자리에는 장륙전이라는 이름의 불전이 있었고, 내부에 화엄석경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 건물은 소실되고 화엄석경은 파괴되어 만여 점이 넘는 조각으로만 남아 있다. 전란 이후 벽암 각성스님의 중창 당시 대웅전만 재건되고 장육전은 재건하지 못하였는데, 1699년에 홍각, 등계, 성능스님이 영남 예천 학가산에서 와서 재건의 업적을 이어 2층 7간의 대전을 원통전과 함께 재건하였다. 공사는 1699년(기묘) 봄부터 1702년... -
각황전 건축각황전은 대웅전과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는 화엄사의 두 주불전 중 하나이다. 석축의 조성수법을 보았을 때, 대웅전 영역보다 각황전 영역이 먼저 조성되었고, 후대 사역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대웅전과 다른 건축물이 배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각황전의 왼쪽편에는 영산전으로도 불리는 봉향각이 자리하는데 이 건물이 각황전의 노전이다. 각황전은 전면 7칸, 측면 5칸의 다포를 올린 중층건축물로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이고 지붕가구는 상층지붕 기준으로 1고주 7량이다. 대규모 석축으로 대지를 조성하고 건물의 어칸 중심과 석등, 석축 계단... -
나한전나한전(羅漢殿)은 각황전 북쪽에 위치하며, 좌향이 각황전과 같이 동향을 하고 있다. 1795년(정조 19)에 담인(曇仁)선사가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나한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16명의 아라한(阿羅漢)을 모신 곳으로 응진전(應眞殿)이라고도 한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이익공을 올린 겹처마 맞배지붕 집이다. 지붕 가구는 3량가이다. 자연석 외벌대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웠다.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설치했고, 전면을 제외한 3면에 걸쳐 불단을 두었다. 전면 3칸 중 어칸에는 문을 ... -
명부전명부전은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스님의 재건(1630~4년) 당시 대웅전과 함께 중건된 전각이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출목 이익공을 올린 겹처마 맞배지붕 집이다. 지붕 가구는 5량가이다. 기계로 가공한 화강석 외벌대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세웠다. 기둥 상부에는 출목 이익공형식의 공포대를 구성하고 앞뒤로 대들보를 걸어 내부의 고주는 모두 생략한 반면, 측면에는 어칸의 기둥을 고주로 높이 써서 대들보 없이 툇보와 종보만 두고 있다. 내부에는 전면을 제외한 나머지 3면에 불단을 ... -
사사자 삼층석탑사사자삼층석탑은 화엄사 서북쪽으로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이 언덕을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효대(孝臺)라고 부르고 있다. 일반적인 석탑이 불전 전면에 배치되는 것과 달리 사사자삼층석탑은 불전 후면 높은 언덕에 위치하여 국내에서는 유래를 찾기 어려운 배치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화엄사의 창건주인 연기조사의 효성과 관련되어 효대(孝臺)라 한다고 전한다. 효대란 표현은 의천의 시에서도 나타난다. 탑의 건립연대에 대해서는 『화엄사사적』, 『봉성지』 등의 문헌에 자장대사가 7세기 초에 세웠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학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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