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일과(智異山日課)」편 1487년 10월 7일 일기는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의 『추강집(秋江集)』 권4에 수록되어 있다. 당시에는 화엄사를 ‘황둔사(黃芚寺)’라 불렀다. 일기는 화엄사 경내 금당, 탑전(塔殿), 사사자 삼층석탑, 전각 구성, 식수(植樹) 등의 풍경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15세기에도 전승된 되고 있던 화엄사 창건과 사사자 삼층석탑 및 공양상 석등에 얽힌 연기조사의 설화도 확인된다.
원문
癸酉 有首坐道敏者自稱善山金氏 見我絶糧 饋米五升 聞崔忠成弼卿 金鍵子虛等在知及庵 使人寒暄 飯後下觀黃芚寺 寺古名花嚴 名僧緣起所創 寺兩傍皆竹林 寺後有金堂 堂後有塔殿 殿最明漑 茶花 鉅竹 石榴 杮木環繞其傍 俯視大野 長川橫跨其下 爲熊淵 中庭有石塔 塔四隅 有四柱戴塔 又有婦人中立頂戴狀 僧曰 此緣起毋爲尼者也 其前有小塔 塔四隅 亦有四柱戴塔 亦有男子中立頂戴仰向於戴塔婦人狀 此緣起也 緣起者 故新羅人 從其母入此山創寺 率弟子千人 精盡話道 禪林號爲祖師 夕 弼卿 子虛訪余焉 有法主雪凝 引宿其房 饋梨杮 夜半明燈 弼卿等講論小學 近思錄 凝雖佛者 曾向兪提學鎭受中庸章句者 聞余輩語 弗拂於耳 達曙談話
※출처: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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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창건 이야기화엄사 창건 설화는 천축국(인도)의 연기조사가 연(鷰)이라는 전설상의 동물을 타고 와 화엄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구술1). 연이라는 동물은 거북이의 몸을 하고 있는데, 화엄사 일주문을 지나 거북이 등 위에 연기조사의 비석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구술3). 한편 김택영(金澤榮, 1850~1927)의 『소호당집(韶濩堂集)』에 수록된 「지리산 화엄사 신라불교조 연기대사갈(智異山華嚴寺。新羅佛敎祖緣起大師碣)」에서 1924년 정월 화엄사 만우(曼宇) 정병헌(鄭秉憲, 1891~1969) 스님이 화엄사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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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일기-1686년 6월 1일 일기1686년 6월 1일 일기는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의 『산중일기(山中日記)』 권상에 수록되어 있다. 이날 정시한은 함양 금류동암에 머물렀으며, 날씨는 새벽에 비가 많이 왔다가 아침에는 내리거나 그쳤고, 저녁에 다시 비가 왔다. 설종 스님은 함양 금류동암(金流洞庵)에 있는 어린 스님으로 윤4월 19일자에 보인다. 황둔사는 화엄사의 옛 이름으로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의 「지리산일과(智異山日課)」 1487년 10월 7일 자에도 ‘황둔사’로 나온다. 다만 『산중일기』 1686년 7월 2일 자에서는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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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일기-1686년 7월 2일 일기1686년 7월 2일 일기는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의 『산중일기(山中日記)』 권상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금류동암에 머물 때 흐린 뒤 개인 날씨와 당시 화엄사에 주석하던 의현 스님의 방문에 대한 것이다. 의현 스님은 7월 5일자에도 다시 등장한다. 원문 華嚴寺僧義玄 年戊辰生 歷見去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불교학술원 번역문 1686년 7월 2일 화엄사 스님 의현(義玄)은 무진생(1628)으로 (함양 금류동암에) 다녀 갔다. ※번역: 불교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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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자 삼층석탑사사자삼층석탑은 화엄사 서북쪽으로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이 언덕을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효대(孝臺)라고 부르고 있다. 일반적인 석탑이 불전 전면에 배치되는 것과 달리 사사자삼층석탑은 불전 후면 높은 언덕에 위치하여 국내에서는 유래를 찾기 어려운 배치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화엄사의 창건주인 연기조사의 효성과 관련되어 효대(孝臺)라 한다고 전한다. 효대란 표현은 의천의 시에서도 나타난다. 탑의 건립연대에 대해서는 『화엄사사적』, 『봉성지』 등의 문헌에 자장대사가 7세기 초에 세웠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학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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