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화엄사 정문의 시에 차운하다」는 칠언율시로 동명 선지(東溟善知, 생몰년 미상)의 『동명유고(東溟遺稿)』에 수록되어 있다. 동명 선지는 일제강점기 전후에 활동한 스님으로 금명 보정 스님과 교우하였다. 화엄사 정문은 보제루이고, 시의 내용은 보제루에서 바라본 자연 흥취를 읊은 것이다.
원문
智異山華嚴寺次正門原韻
尋眞入洞路如年
物外乾坤古蹟傳
雲樹靑靑春去後
瘦笻落落夕陽邊
江山有意鸎猶友
世事無心我亦仙
行樂固知隨處在
松琴澗瑟又風烟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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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중수기 현판「화엄사 중수기」 현판은 1840년(헌종 6) 9월 통훈대부 허무(許茂, 생몰년 미상)가 찬술한 것으로, 화엄사의 내력과 1830년을 전후로 하여 정문, 대로전, 삼전을 중건한 불사의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중수기에는 1827년(도광 7, 정해)에 금봉 우익(錦峰祐益, 생몰년 미상) 스님이 낭규(郞奎), 인윤(寅允)스님과 함께 정문(正門)을 중건하고, 1836년(도광 16, 병신)에는 대로전(大爐殿)을 중건하고, 오환(悟幻), 창수(暢守)스님과는 삼전을 중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우익스님은 1837년(정유)에도 ... -
다송시고-화엄사 정문의 시에 차운하여 짓다「화엄사 정문의 시운을 차하다」는 칠언율시로 금명 보정(錦溟寶鼎, 1861~1930)의 『다송시고(茶松詩稿)』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시의 내용은 보제루에서 바라본 자연 흥취를 읊은 것이다. 시에서의 ‘화엄사 정문’은 보제루이다. 보제루는 1827년(순종 27) 금봉 우익(錦峰祐益), 낭규(郞奎), 인윤(寅允) 스님 등이 중건하였다. 원문 次華嚴寺正門 尋眞入洞日如年 物外乾坤古蹟傳 雲樹靑靑春去後 笻鞵落落夕陽邊 東風有意鶯猶友 世事無心我亦仙 行樂固知隨處在 松琴澗瑟又風烟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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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루보제루는 조계문(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으로 이어지는 산문을 지나 3중으로 구성된 대규모 계단과 석축위에 자리하고 있다. 「화엄사 중수기」 현판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벽암 각성스님이 재건할 당시인 1636년에 중창하였고, 1827년에 금봉 우익스님이 주도하여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 기록에 보제루는 ‘정문(正門)’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많은 기록에서 정문이라 표현한 건축물은 실제 문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경우도 일부 있지만, 다수는 화엄사의 보제루와 같이 불전 전면의 강당형 누각을 지칭하고 있다. 보제루는 사찰의... -
보제루 건축보제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5량가 겹처마 맞배집으로 공포는 초익공을 올렸다. 기단은 전면의 경우 천왕문과 같이 자연석 허튼층 쌓기를 하고 면을 곱게 다듬었으며, 상단에 장대석을 갑석으로 올렸고, 후면은 장대석으로 외벌대 기단을 두었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하였고, 기둥은 원기둥을 사용하였는데 하층과 상층이 서로 다른 가공수준을 보여준다. 하층 기둥은 굵은 목재를 별다른 가공 없이 사용하였고, 상층의 기둥은 민흘림으로 깎아 사용하였다. 기둥 위에는 연화(蓮花)와 연봉(蓮峯)으로 조각한 초익공을 구성하였고 보머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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