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에서 노닐며」는 금명 보정(錦溟寶鼎, 1861~1930)이 1896년 6월 어느 날 화엄사를 유람하며 쓴 칠언율시 2수로 『다송시고(茶松詩稿)』 권1에 수록되어 있다. 1수는 화엄사로 가는 여정을 기행문처럼 쓴 것이고, 2수는 화엄사에 도착해 바라본 경내의 풍경과 감상에 대해 쓴 것이다. ‘화장세계의 누각’은 보제루를, 높은 불전은 각황전을, 몇 층 사리탑은 사사자 삼층석탑을 가리킨다.
원문
遊華嚴寺(丙申六月日)
炎晨飛錫拜松扄
百里華山坐暮庭
陷身樂欲許多物
依舊行裝略本經
蠟屐半沾三草雨
胷衿將飫百花香
從此掩門長在壑
令人不愧北山靈(一)
樓閣華藏一洞門
崔嵬紺殿似祗園
幾層舍利頻呈瑞
數處烟庵自作村
磵響動雷晴亦雨
山靄噓氣晝猶昏
水雲如舊重來坐
從玆隨緣覺夢魂(二)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교학술원
번역문
遊華嚴寺(丙申六月日) 화엄사에 놀다 (병신년(1896년 고종 건양 원년) 6월 모일)
炎晨飛錫拜松扄 더운 새벽 석장 날려 솔문에 절하고
百里華山坐暮庭 백리 길 화산 저녁 뜰에 앉았네.
陷身樂欲許多物 허다한 욕망의 외물 몸을 망치니
依舊行裝略本經 여전히 행장은 약본 화엄경 하나
蠟屐半沾三草雨 밀랍 신발은 반쯤 삼초우에 젖고
胷衿將飫百花香 흉금은 백화향기에 배가 불렀네.
從此掩門長在壑 이제부터 문 닫고 늘 골짜기에 있어
令人不愧北山靈(一) 북산의 신령에게 부끄럽지 않으리. (1)
樓閣華藏一洞門 화장세계의 누각 동문에 있어
崔嵬紺殿似祗園 높은 불전이 기원정사 같구나.
幾層舍利頻呈瑞 몇 층 사리탑은 자주 서광 나타내고
數處烟庵自作村 몇 곳 안개 낀 암자는 마을 이루었네.
磵響動雷晴亦雨 세찬 시내는 맑을 때도 비 뿌리고
山靄噓氣晝猶昏 산 노을은 기를 뿜어 낮에도 어둡네.
水雲如舊重來坐 변함없는 수운에 다시 와서 앉으니
從玆隨緣覺夢魂(二) 이제부터 인연 따라 몽혼을 깨우리. (2)
※번역: 이재희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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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루 건축보제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5량가 겹처마 맞배집으로 공포는 초익공을 올렸다. 기단은 전면의 경우 천왕문과 같이 자연석 허튼층 쌓기를 하고 면을 곱게 다듬었으며, 상단에 장대석을 갑석으로 올렸고, 후면은 장대석으로 외벌대 기단을 두었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하였고, 기둥은 원기둥을 사용하였는데 하층과 상층이 서로 다른 가공수준을 보여준다. 하층 기둥은 굵은 목재를 별다른 가공 없이 사용하였고, 상층의 기둥은 민흘림으로 깎아 사용하였다. 기둥 위에는 연화(蓮花)와 연봉(蓮峯)으로 조각한 초익공을 구성하였고 보머리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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