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화엄사에 들르다」는 칠언율시로 황현(黃玹, 1855~1910)의 『매천집(梅泉集)』 권4, 시(詩) 편에 수록되어 있다. 시의 내용은 늦은 저녁에 화엄사를 방문한 황현이 바라본 자연풍경과 경내에 대한 묘사이다. 이날 황현은 봉천암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밤이 깊어 승당에서 머물렀다.
원문
暮投華嚴寺
路黑難分百眼泉
樹梢遙見塔燈懸
陰陰溜壁驚飛鼠
戛戛溪林記斷蟬
殿倚晴霄雙角兀
山含滿月半規圓
一程尙遠藤蘿外
且入東寮借榻眠
【원주: 欲向鳳泉而夜深止于僧堂】
※출처: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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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당 중창 상량문「호좌 구례현 화엄사 승당 중창 상량문」은 1798년(가경 3) 3월에 용암 윤성(龍庵胤成, 생몰년 미상) 스님이 작성하였다. 윤성 스님은 행주대첩 당시의 승병장이었던 뇌묵 처영(雷黙處英, 생몰년 미상) 스님의 7대손이다. 내용을 보면 승당은 516년(양 무제 대동12)에 사찰의 창건과 함께 세워졌지만, 이후의 일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이후 1634년(숭정 7, 인조 12) 갑술년에 언신(彦信) 비구가 중창하였지만, 163년이 지난 지금 많이 쇄락하여 다시 중창하게 되었다는 내력과 육위송, 축원문으로... -
봉천암화엄사의 산내암자, 봉천암(鳳泉庵)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당우 1동으로 구층암 위쪽에 자리한다. 전란으로 소실된 후, 1846년(헌종 12)에 후봉선사(嗅峰禪師)가 옛 터에 본존요사와 산왕각(1칸)을 중창하여 봉천암이라고 하였고, 운수납자가 용맹 정진하는 선원(禪院) 도량으로 삼았다. 1999년 당시 화엄사 주지 종걸 스님이 해체보수 하였다. 원래 건물 뒤편에 있던 산왕각은 멸실되었다. 봉천암 법당에는 정면의 중앙에는 ‘봉천암’ 편액이 있고, 그 옆으로 3개의 현판이 나란히 걸린다. ‘봉천암’ 편액은 검은 바탕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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