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악사는 오악(五嶽)의 하나인 남악(南嶽) 지리산에 있는데, 시대에 따라 그 위치가 이동되었다. 신라시대에는 천왕봉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고려시대에는 노도단으로 이동되었다. 조선시대에는 1456년(세조 2) 노고단의 아래 갈뫼봉 북쪽 내산면 좌사리 당동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광의면 온당리 당동으로 이동하였고, 1908년(순종 2) 일제에 의해 폐사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남악사는 1969년 화엄사 입구, 지장암 옆에 전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재건한 것이다. 남악사에 대한 설화는 이러한 이동 사실을 토대로 전승되었으며, 명당이라는 풍수지리와 결합되기도 한다.
이성계와 산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 재위 1392~1398)는 개국을 준비할 무렵 팔도의 강산을 찾아다니며 산신제를 올렸는데, 남해 금산, 무주 덕유산, 진안 마이산의 산신은 이성계의 개국을 찬성을 하였으나, 지리산 산신은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이성계는 개국 후 노고단에 있던 남악사를 구례 땅으로 옮겨 지리산 산신을 귀양 보냈다는 이야기이다.
남악사와 묘
1908년 남악사가 폐사되자 어떤 사람이 그 터가 풍수지리적으로 뛰어난 명당이라는 말을 듣고는 몰래 묘를 썼는데, 그해 크게 가뭄이 들었다. 주민들은 사당에 묘를 썼기 때문에 가뭄이 들었다고 여겨 다같이 묘를 파냈고, 그러자 주민들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큰 비가 내려 가뭄을 무사히 넘겼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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