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황전 중창 설화는 숙종(肅宗, 재위 1674~1720)대 왕실의 지원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다양한 유형으로 전승되고 있다. 기본적인 서사는 각황전 중창 배경, 신이한 화주자 선발, 화주자의 신분, 시주자 선발 조건, 시주자의 신분, 사망과 환생, 환생국의 후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황전 중창 설화는 화엄사 인근의 지리적 요소를 활용하여 사실성을 더한 점이나 공주나 왕자, 황제 등 신분이 높은 사람의 불치병을 고친다는 ‘금척설화’의 소재를 차용한 점, 신이한 현상, 환생 등 불교적 색채가 어우러져 민간으로 전승되며 극적인 서사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먼저 각황전 중창의 배경은 소실이나 조선이라는 대략적인 정보부터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계파 스님이 중창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구체적인 서사도 있다.
화주자 선발은 꿀, 엿, 물 등이 묻은 손에 밀가루를 묻혔을 때 밀가루가 묻어나오지 않는 사람을 고르는 신이한 일로 전승 설화에서 큰 내용 변화는 없다. 다만, 이때 화주자의 신분은 전승에 따라 계파 스님, 주지 스님, 나무꾼, 공양주 처사, 공양주 매월, 울산 신흥사 스님 등으로 다양하다.
시주자 선발 조건은 모두 화주자가 길을 나서고 처음 만난 사람으로 동일하다. 시주자의 신분은 거지 노파, 빨래하는 여인, 공양주, 말 못하는 노인, 가난한 할머니 등으로 금전적 시주를 할 수 없는 신분으로 등장한다. 시주를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시주자는 연못, 늪, 강, 계곡 등 물에 빠져 사망을 하는데, 화엄사 인근 지역의 중소(혹은 용소), 강 등의 실제 지리 환경을 차용하였다.
반면, 사망한 시주자가 환생한 국가와 그 신분은 조선의 공주나 왕자, 중국의 왕자, 황태자, 천자, 구체적으로는 당의 황태자 등으로 전생과 달리 금전적인 시주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특이한 점은 환생자가 말을 하지 못하거나 한 쪽 손을 움켜쥐고 펴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시주자의 사망으로 죄책감을 가지고 떠돌던 화주자를 만나 장애를 극복한다는 것이다. 이때 펼쳐진 손바닥에는 ‘화엄사대시주(華嚴寺大施主)’, ‘장육전(丈六殿)’, ‘왕(王)’, 사찰을 상징하는 문자나 부호가 쓰여 있었고, 이를 근거로 국가의 지원을 받아 각황전을 중창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설화는 구전될 뿐 아니라 『백열록(栢悅錄)』에 수록된 범해 각안(梵海覺岸, 1820~1896)이 쓴 「화엄사기(華嚴寺記)【구례현(求禮縣)】」에서도 확인된다.
각황전 중창 외에 화엄석경에 대한 이야기도 민간에 전승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각황전을 중수할 때 공사 중에 떨어진 인부를 문수보살이 현신하여 지켜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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