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도천 대종사비

도천당 도천 대종사비명(道天堂道川大宗師碑銘)은 2015년 10월 5일 용성(龍城) 문손(門孫) 불국사(佛國寺) 학장(學長) 덕민(德旻) 스님이 찬술하고, 이종선(李鍾宣)이 글씨를 써 다음 해 2016년 9월 23일에 건립한 것이다. 시공과 각자(刻字)는 대한석상조각원 이재순(李在珣)이 맡았다. 이수에는 전액(篆額) ‘도천선사(道川禪師)’가 새겨져 있다. 비신의 전면에는 제명(題名)이 상단에 가로로 ‘도천당 도천 대종사비명(道天堂道川大宗師碑銘)’이 전서체로 새겨져 있고, 우측에 세로로 ‘도천당 도천 대종사비명(道天堂道川大宗師碑銘)’이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전면, 좌측면, 후면에 도천 스님의 행적을 서술하고, 후면에 서술된 행적의 말미에는 명사(銘詞)가 새겨져 있다. 비신의 우측면에는 산중질(山中秩), 종무소질(宗務所秩), 산내 암자질(山內庵子秩), 불사 도감(佛事都監) 명단과 각공(刻工), 건립일 등이 기록되어 있다.
원문
傳佛心印 扶宗樹敎 道天堂道川大宗師碑銘倂序 南嶽에 朝日 돋자 엷은 白雲 사이로 昭昭隱隱(소소은은)하게 드러내는 옆모습은 누구의 모습인가요. 蟾津江 굽이굽이 或隱或現(혹은혹현) 너울거리는 水月은 그 누구의 그림자 인가요. 까만 고무신에 달랑 걸망 매시고 落霞(낙하)를 등지고 산 비탈길을 돌아가는 모습은 멀리서 보면 律師처럼 嚴肅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春風面처럼 따스하고 부드러운 微笑(미소)여. 紺色袈裟(감색가사) 걸치시고 夕陽을 등지고 禪定에 잠긴 老僧의 그림자는 金剛山 石頭가 붉은 袈裟를 입은 듯 닮아 보이고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禪定三昧에 빠져 꾸벅꾸벅 졸고 있는 老僧은 威音那畔(위음나반) 天眞佛의 모습인가요. 頭流山 天王峯이 저토록 푸르름은 아마도 离山 道川 兩祖師의 蕭灑蕩蕩(소쇄탕탕)한 淸淨佛心이 빚어내는 藍靑(남청)의 畵彩(화채)이기 때문이다. 哀哉哀哉여. 두 스승의 出世間의 香花因緣도 生命의 線이 짧고 긴 것이 있는가. 离山禪師는 그 많은 어린 愛弟子들을 無心石佛인 道川禪師에게 맡기고 一九八四年 九月 一九日에 忽然入寂하시니 永遠한 太陽도 떨어지는가 天地도 暗暗하였다. 門徒는 뜻 밖에 父母를 잃은 듯 號哭悲泣(호곡비읍)은 긴歲月에도 稀釋(희석)되고 바래지지 않아 愛隣(애린)의 苦痛을 품고 살아간다. 今年 乙未 早春에 華嚴門丈인 金城堂 明煽禪伯께서 离山 道川 兩禪師의 碑文을 依賴(의뢰)하시면서 父母 같은 두 禪師는 金剛山 表訓寺에서 처음만나 宿歲부터 道伴인줄 깨닫고 同修琢磨(동수탁마)의 香火因緣으로 結義兄弟를 굳게 맺고 앞으로 相資를 받아도 彼此 區分없이 똑같은 한 스님의 相資로 敎育陶冶(교육도야)하여 成佛種字를 심어주자고 佛前에 發願하셨다. 이 내용은 全 門徒가 周知한 바이다. 涅槃 後 星霜이 흘러 지금은 相資 數가 繁盛(번성)하여 두 스승의 遺志가 흐려지고 잊혀질까 惶惶恐恐(황황공공)하여 이 次第에 더욱 門徒의 大和合結束과 相互精進을 통하여 道場守護와 愛寺精神을 覺醒發心시키기 爲하여 다시 全門徒 會議를 通하여 道川禪師의 相資 등을 전원 离山禪師 앞으로 建堂시키고 아직 늦게나마 建堂치 않은 相資는 懺悔弟子로 金石에 彫刻하기로 決議했으며 또한 導光禪師의 追慕日인 陰 八月 二十三日字로 道川禪師의 忌日도 함께 合同追慕忌日로 定했으면 이에 兩祖師의 禪風과 頭陀行 禪農一致思想을 後孫에 燈燈繼繼(등등계계)하기를 誓願하면서 今番에 兩禪師의 舍利도 하나로 정성껏 쌓아서 浮屠塔에 함께 奉安하기로 門徒와 結成했으며 또한 全體 門徒秩은 道川스님 비문에는 생략하기로 했다는 等等의 門丈스님의 傳達 말씀 속엔 崇高한 孝心孝行과 愛衆愛本寺의 굳은 信念이 넘쳐흘러서 德旻도 感興을 받아 門丈스님의 緊迫(긴박)하고 切切한 말씀도 碑文에 記載하였다. 回顧하건데, 또한 元來 兩禪師는 同年으로써 導光禪師는 一九二二年 四月 三日(壬戌 陰 三月 七日)生이요 道川禪師는 同年 十一月 二十三日 生이였으나, 六二五 動亂을 當하여 勞務負役 等에 修行의 차질도 있고 生死도 알길 없어 不可避하게 導光禪師보다 十二年을 添加했으나 今番에 元來 同年生으로 바로 잡았으며 本籍도 平安北道 鐵山郡 栢梁面 下端里로 바로 잡았다. 离山堂 導光大宗師 行狀은 海印寺 智冠伽山佛敎院長께서 美麗한 長文으로 二00六年에 詳細하게 著述하여 華嚴道場에 樹碑(수비)를 마친 연고로 여긴 重複을 避해 記錄하지 않고 道川禪師의 行狀만 記述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大禪師는 西紀 一九二二年 陰 十一月 二十三日에 平安北道 鐵山郡 栢梁面 下端里에서 父 諱(휘) 金公 萬吉居士와 母 鄭萬德心 菩薩의 五男二女中 序居于四(서거우사)로 出産하셨다. 一九二九年 四月 十五日 摩訶衍에서 水月禪師 弟子인 黙言스님을 恩師로 得度하여 歡喜踊躍(환희용약)하여 앞마당에 키만큼 자란 無明草를 전부 단숨에 뽑아 前生業草까지 淸淨하게 淸掃하였다. 以後 十餘年간 金剛山에서 住錫하시면서 普門性徹 등과 安居를 함께 했으며, 또한 佛祖에 대한 信心이 頓發(돈발)하여 神溪寺 楡岾寺 表訓寺 長安寺 法王寺 妙香山 上院寺 等의 古刹을 巡禮하면서 行脚하시다가 二十有九歲에 表訓寺에서 처음 導光스님을 보고 前生 道友인 줄을 感得(감득)하시고 다시 世世生生 香花因緣을 굳게 맺었다. 一九四五年 三月 十五日에 梵魚寺에서 東山律師를 戒師로 具足戒와 菩薩戒를 受持하였다. 以後로 金剛山 摩訶衍寺 萬會庵 妙香山 上院寺 海印寺堆雪堂 道峯山望月寺 江華普門寺 安山內院寺 釜山梵魚寺 河東七佛庵 亞字禪房 等에서 一生을 淸淨禪僧으로 安居를 盛滿하였다. 保任修行 餘暇(여가)에 처음으로 大芚山 太古寺 住持로 趣任하시어 重創祖가 되었다. 一九八七年 三月 十五日에 曹溪宗 元老議員에 推戴(추대)되었으며 이어서 一九九六年 五月 三十一日에 泉隱寺 方丈禪院 祖室, 이듬해 緣起庵 禪院 祖室, 二00一년 十一月 二十九日에 泰安寺 圓覺禪院 祖室, 二00四年 十一月 十九日에 華嚴寺 禪燈禪院 祖室로 모셔졌으며, 二00四年 五月 三十一日에는 海印寺에서 大宗師 法階品序에 오르셨다. 西紀 二0一一年 九月 二十八日 午後 한時 十五分頃에 大芚寺 太古寺에서 世緣이 다하심을 아시고 “나는 깨친 것이 없어. 須彌山 주인집에 머슴살러 갈거여!” 라고 臨終에 말씀을 남기시고 儼然入寂(엄연입적)하시니, 歲壽는 九十이요 法臘은 七十有五이다. 華嚴門徒는 兩師父가 차례로 歸寂(귀적)함에 山中이 寂寞하여 歸依處를 잃어버린 듯 洞壑(동학)도 凄凉(처량)하고 煙籮(연라)도 憔悴(초췌)하였다. 또한 道川禪師는 一九五二年에 導光禪師와 함께 潭陽 普光寺를 創建하여 田岡스님을 祖室로 모시고 禪院을 열어 衲子를 提接(제접)하는데 願力이 至大하였으며, 一九六二年에는 六二五動亂으로 全燒된 太古寺 古址(고지)에 五十餘年間 導光禪師와 함께 復元佛事 誓願을 세워 大雄殿 外 十餘棟을 托鉢化主(탁발화주)로 復元回向하여 禪門을 여니 百丈淸規의 禪思想을 繼承한 水月禪師의 化身이라고 僧俗의 稱誦(칭송)이 지금도 口碑(구비)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相資인 正眼和尙도 至極한 孝行과 信心으로 道場을 守護하며 五十餘年 동안 杜門不出 끊임없이 復元佛事 祈禱精進을 이어감도 佛祖의 不思議한 感化를 얻은 回向結果라 感知하면서 正眼和尙의 名字도 새겨둔다. 嗚呼(오호) 華嚴道場이여. 誰持有柯斧(수지유가부)아 誰倚無絃琴(수의무현금)가. 禪師는 少時부터 當代 名刹禪院에서 수많은 高僧大德과 交接하면서 禪問答으로 修禪安居했으며, 晩年엔 祖室法座에 오르시어 本分衲僧을 提接(제접)했기에 一言一句語錄이라도 남겼으리라 짐작은 가지만 一禪句 一經句도 남기지 않아 法席이 덩그렁 비어있어 흰구름만이 徘徊(배회)한다. ‘天何言哉 四時行焉 地何言哉 萬物生焉이라’ 는 孔夫子의 無言無爲를 實踐하신 仁聖이신가. 實相은 無相이라 思慮가 끊어지고 斲彫(착조)가 사라졌기에 言語文字로 法席에 接近해서 照明하기엔 禪問答處가 없다. 그러나, 一日不作一日不食의 千餘年 前 百丈禪苑 淸規 宣布以來로 八十餘年 全身을 自然스럽게 農具로 만들어 法喜禪悅(법희선열)속에 禪農一致를 實踐하신 禪師의 一生行蹟은 古今에 代表的인 百丈淸規의 模楷(모해)이니, 禪農禪僧의 참모습인 自畵像을 後代의 修行家에 남긴 것이다. 禪師의 頭陀行 속에 깊은 沈黙은 神秘스럽고 不可思議하니 누가 입부리를 댈 것인가. 禪敎名稱도 떨어져버려 當體(당체)가 寂滅(적멸)이요 當體(당체)가 花發(화발)이다. 삼가이 살펴보니 离山道川 兩禪師의 號는 周易离卦 坎卦(감괘)에서 따온 것이니, 太陽과 水月의 調和로써 水火日月의 用處와 寒暑晝夜의 運動과 天地調和의 華嚴妙體가 名字속에 凝縮(응축)되어 光明이 빛나고 있으니 그 누구의 宇宙的 創作藝術인가. 獨掌(독장)은 不浪鳴(불량명)이다. 바로 离山禪師의 嚴親이시니, 諱는 金海金公 基春이요 自號는 牛臥居士이시니, 西紀 一八八0年 十月十三日 全南 潭陽郡 金城面 外秋里에서 出生하시여, 一九六二年 三月二十日에 入寂하셨다. 一生을 世間과 出世間을 넘나들면서 牧牛尋牛로 自身의 本來面目을 찾으시다가 淸淨한 三昧에 들어가 生佛俱空 人牛俱忘의 空白圓相의 當處가 寂滅한 消息(소식)을 깨달으시고 自號를 無事牛臥라 銘하시고 入廛垂手(입전수수)하여 利他行을 實踐하시면서 兩禪師의 곁에서 鑑照(감조)와 策鞭(책편)의 끈을 一時도 누추지 않으셨다. 代代 儒士의 家門으로 易의 乾坤坎离(건곤감리) 등 卦에 깊이 通觀했으며 또한 靑塢子(청오자)의 風水地理에도 達觀하시어 龍城老師께도 大家의 認證을 받았다. 佛法에 棟樑人物을 만들기 위해 어린 午南을 이끌고 上京하여 龍城 東山 東軒老師 等을 參謁(참알)시켜 瞻視見聞(첨시견문)을 높이게 하고, 大光明眞言을 晝夜로 念하게 하여 엄지손가락에 혹이 나도록 念珠를 돌려 毘盧頂上光明徧照三昧(비로정상광명변조삼매)에 安住케 했으며 文字貪着으로 見聞覺知가 心中에 쌓일까봐 至極히 警戒했으며 徹骨徹髓(철골철수)의 血脈이 貫通한 實參實悟衲僧의 向上一路로 得入케 朝夕으로 채찍을 篤加(독가)했다. 이와 같은 嚴親 臥牛居士의 諪諪親炙(정정친자)와 大慈大悲의 誓願力이 없었다면 兩祖師와 華嚴兒孫의 存在有無를 論할 수 없었으리라. 또한 六二五動亂을 當하여 두 스님의 修行精進에 차질이 있을까 몹시 걱정하시어 故鄕 潭陽에 般若峯이 正面으로 對하는 黃梅山 자락에 普光寺를 點卜創建하시고 內心 앞으로 未來世에 無數한 道人이 이 道場에서 出現할 거라고 豫言하시고 두루막 자락을 般若峯에 걸어두시고 歡喜의 춤을 너울너울 추셨다니, 그때 그 牛臥居士의 禪風律動의 옷자락에서 비로소 華嚴門徒로 이어지는 黃梅會가 胎動되었다. 鳴呼吁噫(명호우희) 裟婆에 오신 願力所任 마치시고 逍遙遊 속에 歲月의 무게를 感知하셨는가. 그렇게 챙기던 南嶽老松에 太陽을 걸어두시고 早春雪寒에 太古寺 水月을 보고싶다고 홀로 지팡이 의지해 오르시다가 가파른 險路에서 雪衣를 입으시고 飄飄(표표)히 소타고 笛(적)불고 反本還元하시니 化身菩薩의 神異蹤跡(신이종적)을 胎然(태연)히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주셨다. 우리 門徒는 자못 記憶속에 희미해져가는 우리의 根源인 祖上을 至誠孝敬으로 尊仰(존앙)하여 朝夕으로 拜謁할 때, 牛臥居士님은 본래가진 誓願力으로 이 道場에 來臨하시어 다시 石經을 復元해 울리시면서 華嚴道場의 守護菩薩로 다시 우리 곁에 化現하실 것이다. 回顧하건대, 近 五十餘年 前 雨龍講伯이 잠시 華嚴法席에 머무를 때, 當時 住持이신 离山禪師를 찾아뵈올 때마다 굳게 德旻(덕민)의 손을 잡으시고 “지금부터 華嚴道場에 華嚴經과 金剛經 禪門拈頌(선문염송)을 硏究하여 傳統講伯을 敎育輩出하여 講讀不絶하여 위로는 華嚴學僧인 緣起祖師에 報應하고 아래로는 碧巖 性聰 震應 等의 禪燈講脈을 連結함이 나의 願力이요, 佛前誓約이니 德旻도 나와 함께 이 큰 敎育佛事에 적극 同參하자”라는 맹세의 말씀은 어린 胸襟(흉금)을 感發(감발)시켰지만 未久에 雨龍講伯이 講席을 떠날 때 禪師의 失望과 悲嘆하신 그 모습은 四十餘年 歲月이 흘러도 懺悔로는 解決지을 수 없는 罪罪悚悚(죄죄송송)의 責任痕迹(책임흔적)으로 지금도 내 등에 짊어져 있다. 우리 門徒들은 兩祖師 涅槃以後로 圓融和合하여 刻苦努力 結果로 海東第一의 淸淨道場을 復元했다. 이 聖스런 佛道場을 兩祖師의 願力이신 普光光明을 縱橫(종횡)으로 꾸미고 메꾸어야 한다. 華嚴經과 禪門拈頌은 宇宙法界의 眞如核心이요 生命의 實相이다. 人人이 莊嚴佛이요 塵塵이 다 華嚴妙體라고 說破(설파)한 空前絶後(공전절후)의 佛祖 敎策이다. 이 無價大寶가 이 道場에 具備되어 있으니 우리는 따로 敎策을 求할 필요가 없다. 修行精進이 徹頭徹尾(철두철미)하지 못하면 宗團이나 門徒는 佛果를 얻기 어렵고 꾸며놓은 道場도 守護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이 佛祖의 敎材로써 門徒의 身心을 한 스승으로 묶어서 契合如一케 하면 成佛作祖와 下化衆生의 모든 답이 廓然(확연)히 獨露된다. 또한 孝心은 百行의 根本이요 人事의 大本이다. 華嚴孝臺에 무릎을 꿇고 萱堂前(훤당전)에 茶供養을 올리는 緣起祖師의 千年孝心은 華嚴實相의 妙體요 自然萬物의 至高至純한 숨결이다. 우리는 이 孝心을 出世間의 禪繩(선승)으로 묶어 우리 門徒를 一以貫之하고 朝朝暮暮(조조모모) 罔極의 孝心을 至極精誠 實行해 報答하면서 더하여 禪燈殿 竹篦소리가 惺惺寂寂 끊어지지 않을 때 兩祖師는 佛祖의 光明으로 門徒 곁에 來臨하시어 靈山風流와 少林曲調를 朝夕으로 演奏하면서 우리 門徒를 證明해 주시리라. 결단코 위의 內容을 실천하지 않는 門徒는 木石과 다를 바가 없으며 또한 兩祖師에게도 큰 罪를 지을 것이다. 銘을 읊으니 黃梅山 깊은 골에 驟雨(취우)가 지나가니 후두둑 落果소리 梅實 벌서 익었나! 南嶽을 뒤에 두고 험한 太古寺 길 오르는 白髮의 老仙이여 무거운 지팡이 소리 뚝 끊어지니 흰구름 길을 막아 쇠북소리도 못 들었는가! 흘러가는 흰구름도 발을 멈추고 멧새도 찾아와 한없이 울부짖네! 소타고 笛불고 西天으로 가시는 길 孝臺에 흘린 눈물 섬진강이 마를까! 兩祖師시여! 宿世에 심은 善根으로 많은 善知識 拜謁했네. 일찍이 大明呪로 普光光明 三昧를 얻어 綠楊翠竹(녹양취죽)에 大悲를 親見했네! 無說說 不聞聞이여 通身是眼이라 따로이 볼 대상없고 通身是口라 따로이 말할 대상 사라지네! 生平에 無言說로 兒孫을 품에 안고 華嚴道場 莊嚴했네! 주렁주렁 靑梅實 버려둔 채 落照가 西山에 떨어지니 天地도 붉게 물드네! 誰持有柯斧(수지유가부) 誰倚無絃琴(수의무현금) 呼嗟(호차)여! 해지자 東山에 달뜨니 山鳥도 깜짝 놀라 華嚴 시냇가에 시시로 울어댄다. 텅 빈자리 무얼로 메울까! 가래 낫 채워두고 全身이 農具되여 百丈淸規 실천하니 禪農一致로 禪家淸風을 後孫에게 模楷(모해)로 示現했네! 禪師의 沈黙은 神秘스럽고 不思議여. 禪敎名稱도 떨어져 當處가 寂滅이요 當處가 花發이다 우리 華嚴門徒여! 不二一合相 孝心으로 兩祖師를 朝朝暮暮 仰敬하고 華嚴讀誦(화엄독송)소리 禪燈殿 竹篦소리 항상 울리면 兩祖師는 이 道場에 來臨하시여 靈山風流와 少林曲調를 다시 演奏하시면서 우리 兒孫을 保護하시고 이 道場에 靈山會上이 再現될 것을 證明해 주시리라.                     佛紀 二五五九年(二0一五) 十月 五日                       龍城門孫 佛國寺學長 德旻 謹撰                                 李鍾宣 謹書                  이듬해 九月 二十三日 住持 南德 靈觀 세움    山中秩     祖室    慧光宗山 大宗師     門長    金城明煽 大宗師     禪院長       南井眞表     禪德    石潭宗一               銀山宗國           松泉宗烈               愚岩宗乞               愚峰明燮           抱月宗三     講主   草堂宗谷     閑主   金華水領               金老宗杲               規峰宗雪           宗標     爐殿   道月明稍               智利眞肇   宗務所秩    住持   南德靈觀    副住持   慧超    總務   曉光    企劃   愚凡    敎務   曉眞    財務   奉悟    布敎   石典    社會   愚敬    護法   乘法    練修    東虎    院主   奉忍    侍者    奉覺    書記   許權 山內庵子秩    緣起庵     滿海    聽溪庵     宗乞    金井庵     宗㤠    南 庵   宗三    上 庵     明賢    九層庵     德濟    吉祥庵     明坤    鳳泉庵     明完    彌陀庵     慧光    內院庵     智岩    地藏庵     梨正    龍穴庵     智巖    妙香臺     虎林    文殊臺     大禹   佛事都監 聖寶館長  元黙         學藝士  姜先貞 施工 및 刻字    大韓石像彫刻院 李在珣                 佛紀 二五六十年(二0一六) 九月 二十三日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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